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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노사민정, 국가코포라티즘에서 벗어나야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지역에서 노와 사 그리고 민과 정까지 고용과 노동을 중심으로 한 의제·정책을 함께 다루며 사회통합을 이뤄 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 다 알다시피 ‘지역노사민정협의회’다. 노사협의회가 기업 내에서 근로자들의 고충을 해결하고 경영에의 건강한 참여를 진작시키기 위한 제도라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개별 기업을 넘어 기초단체나 광역단체 수준에서 요구되는 지역노동시장의 다양한 문제들, 노사갈등의 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해 가려는 지향점을 갖는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면서 형성됐고, 성숙해지기 위해 더욱더 장려되고 활성화해야 할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우연한 기회에 지역노사민정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 갈 기회가 생겼다. 각 지역에서 열정을 가지고 활동하는 분들의 성취와 고민, 고충을 생생하게 들었다. 여러 가지 열악한 사정 속에서 작은 성취들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들에 뿌듯함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구동성으로 지적되는 문제는 바로 중앙정부, 즉 고용노동부가 이 제도를 끌고 가는 방식에 대한 문제였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일정하게 법률적 근거를 지니고 있다. 1999년 노사정위원회법에 지역노사정협의회 설치근거가 처음 마련된 후 2008년 종래 노사정위원회가 관장하는 지역노사정협의회 사업을 노동부로 이관하면서 주요 추진주체로 ‘민’을 추가해 지역노사민정협의회로 개칭했다. 2010년 노사관계 발전 지원에 관한 법률(노사관계발전법)을 제정하면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설치 운영근거를 보다 명확히 했다.

이를 통해 지역일자리 창출과 인적자원개발 등 지역 노동시장 활성화에 관한 사항을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심의할 수 있도록 했다.

민이 추가되고 정부가 관장을 하도록 룰을 바꾼지 7~8년이 된 지금, 현장에서 바라보는 협의회는 정체성 혼란에 빠진 듯하다. 핵심적인 문제는 이 제도를 끌고 가는 마인드(mind) 내지 멘탈리티(mentality)의 한계다.

위에서 언급한 자리에서 필자가 들은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정부 돈이 쓰이기 때문에 정부는 일정하게 실적을 요구한다. 단기적인 실적지향적 기준을 가지고 협의회의 지난 활동을 평가하고 자원배분의 근거로 삼는다. 현장에서는 거기에 맞추지 않을 수 없다. 노사 협력선언을 거의 강요에 가깝게 강조하고, 그것의 이행을 강하게 모니터링하려 한다. 요컨대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형식적인 합리성을 갖추는 것에 집착을 하는 관료적인 마인드에 따라 이 기구가 이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양상 속에서 현장 관계자들은 지역노사민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떠한 식으로 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평가와 전망을 내놓았다. "분명 가능성이 있는 제도인데" 하면서 안타까운 의견을 피력했다.

사회적 대화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 코포라티즘(corporatism)이 있다. 그것은 이익단체들이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면서 민주적 협치 이상의 실현에 힘을 보태고 갈등을 줄이며 보다 책임 있는 정책 실현을 도모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코포라티즘 이론에서는 이러한 형태에 두 가지의 이념형(ideal type)이 있다고 알려 준다. 하나는 국가코포라티즘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코포라티즘이다. 전자는 국가가 이익단체들을 포섭하고 견인해서 정부의 입맛대로 정책을 끌고 가기 위해 이용하는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의 코포라티즘이다. 후자는 역량 있는 이익단체들이 중심이 돼 자신들의 조직적 역량을 상호 간 정치적 교환을 통해 공익지향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자발적으로 활용하는 관행과 제도를 말한다.

애초에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이익단체들의 카르텔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고, 코포라티즘 자체를 조직적 특권주의라고 인식하면서 배척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서유럽 노사관계의 경험을 깊게 관찰한 슈티터라고 하는 학자가 그것을 민주적 코포라티즘이라고 이론화하면서 민주주의와 코포라티즘의 공존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됐다.

많은 나라들의 경험은 비단 발전한 서유럽뿐 아니라 경제위기 상태에 빠지거나, 민주화 과정에서의 어려운 정책결정을 위해서도 민주적 코포라티즘적인 관행이 활성화될 여지가 있음을 알려 준다.

하지만 여전히 취약한 이익단체들의 조직역량과 정책역량, 혹은 정치역량의 한계는 그러한 시도들이 민주적 코포라티즘의 이상을 구현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의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민주적 코포라티즘의 이상을 품고 민주화 과정의 한가운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지금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것은 국가코포라티즘으로 퇴행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사회 전반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관료적 효율성주의, 단기적 실적주의가 가치판단의 중요한 잣대로 내세워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 같은 사회적 대화기구, 사회적 협의기구, 노사관계 제도는 긴 시간 동안 신뢰 축적 같은 무형이지만 영양가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효율성만이 아니라 자발성·창의성·책임성·혁신성 등 다양한 가치판단 원리를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국가는 결코 사회혁신의 주체가 되기 어렵다. 지역 고용노동 문제의 혁신적 해결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평가기준을 바꾸면서 우리의 지역노사민정사업이 국가코포라티즘의 경직성에 빠져 그 의미가 소멸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개혁을 해야 할 때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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