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별교섭이 위협받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최근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금속노조를 탈퇴할 수 있다고 판결한 뒤 산별노조 지위도 흔들리고 있다. 30일 국책금융기관들이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산별노조의 카운터파트인 사용자협의회는 그야말로 모래알이다. 탈퇴를 막을 방법은 없다.

경기침체로 인한 고용불안, 심화되는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유효한 방안으로 산별교섭이 주목받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마침 양대 노총 주요 산별노조들과 사용자단체·정부·전문가가 산별교섭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개선·교섭구조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고려대 노동대학원·노동문제연구소가 이날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국제관에서 연 산별노조 및 노사정 대표 초청 대토론회 '산별교섭 어디로 가나'가 그것이다. 이날 토론회는 양대 노총·산별노조 연석회의가 주관했다.

"대산별 통합부터 시작하자"

발제를 맡은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은 "2016~2017년에 초기업교섭을 제도화한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노동계가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좋은 보건의료일자리 창출과 인력확충을 통한 조합원의 노동조건 개선을 산별교섭 의제로 내놓은 상태다. 이주호 단장은 "노조가 노동조건 개선과 산업정책개입·사회의제를 함께 실현하려면 기업별 노사관계를 넘어선 산별 노사관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장은 산별교섭 과제로 △비슷한 업종을 대산별연맹으로 통합하고 그 안에 중소산별노조 건설을 유도하는 방식의 산별노조 조직체계 정비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한 단계적 법·제도 개선 △노동재단 설립 같은 초기업 노사관계 정착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제시했다.

금속노조는 올해 현대기아차그룹사 공동교섭·공동투쟁을 통해 산별교섭 활성화를 모색한다는 방침이다. 박정미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발레오만도·유성기업같이 산별중앙교섭에서 핵심 역할을 한 노조들이 정부와 자본의 합작에 의해 집중적으로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박정미 정책실장은 "정부와 자본의 반산별노조 방침, 10% 수준의 낮은 산별중앙협약 적용률 같은 현실적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주요 부품사들을 총괄하면서도 산별교섭에 나오지 않는 대공장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발전 미래전략위원회 구성과 재벌의 사회적 책임 강화, 통상임금 정상화 같은 요구를 공동교섭 목표로 내걸고 단계적인 산별교섭 강화를 이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용자단체 구성 법으로 강제해야"

산별교섭을 법적으로 보장하거나 사용자의 산별교섭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승철 민주노총 사무부총장은 "사용자단체에 산별교섭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단체 범위를 확대하고, 단체협약 효력 확장을 확장하는 식의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은 "총선 이후 양대 노총이 함께 산별노조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산별교섭이 사용자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필요하다면 양대 노총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 업종별 소산별교섭 활성화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산별교섭이 필요하다"며 "사용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포함한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전략, 저성장 시대에 대응할 수 있는 산업·일자리전략을 산별노조가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사용자단체나 정부쪽 토론자는 산별교섭 법제화보다는 노조의 태도변화를 주문했다. 신쌍식 금속산업 사용자협의회 회장은 "현행 산별교섭체계의 중복교섭, 되풀이되는 노조의 파업, 사측의 인사경영권에 개입하는 식의 과도한 교섭의제 설정 같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사용자 참여를 이끌어 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양정열 고용노동부 노사관계지원과장은 "우리나라 법체계상 개별기업의 의사에 반해 교섭방식을 강제할 수는 없다"며 "산별노조에 기업별노조와 다른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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