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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인터뷰-'노동 호민관'을 만나다] "내가 진짜 야권 후보 … 청년고용 세액공제 법제화하겠다"곽태원 국민의당 후보(서울 용산)
▲ 곽태원 후보 선거사무소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회의원선거는 더욱 그렇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자들을 대변하겠다고 나선 친노동 후보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졌다. <매일노동뉴스>가 '노동 호민관'을 자처하는 후보자들을 만나 그들의 고민과 비전, 포부를 들었다.<편집자>

곽태원(59·사진) 국민의당 후보(서울 용산)의 원래 꿈은 학자였다. 행정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해고가 그의 삶을 바꿔 놓았다. 미래가 두려워 노조설립에 관심을 가졌다. 어쩌다 초대 위원장이 됐다. 1987년 뜨거운 시기를 통과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노동운동가로 변해 있었다. 곽 후보는 민주노총 출범에 앞서 진행된 상급단체 탈퇴운동에 뛰어들었다.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으로 산별노조 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제 노동자 편에 선 정치인을 꿈꾼다. 그는 “목적이나 의식을 갖고 운동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며 “주변을 살피고 역사 흐름 속에서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곽 후보가 정치로 만들려는 사회는 “따뜻하고, 함께 누리는 곳”이다. 그는 자신을 “진짜 야권 후보”라고 소개하며 “깜짝 놀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터뷰는 지난 29일 오전 서울 한강대로에 있는 곽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했다.

"정치는 산별노조운동의 종착지"

- 어떤 계기로 노동운동을 시작했나.


“대학에 다닐 때 운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이렇게 오래 노동계와 인연을 맺게 될지 나도 몰랐다(웃음). 원래 꿈은 공부를 계속해서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생계와 공부를 병행하기 위해 83년 현대해상화재보험에 입사했다. 2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내가 따랐던 선배가 해고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성실하고 유능한 선배였다. 나와 10년 차이가 났다. 동기가 33명이었는데, 선배의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동기들과 손잡고 노조를 결성했다. 초대 위원장이 됐다. 임기 2년이 끝나면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임기 막바지였던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이 이어졌다. 당시 넥타이부대도 주력이지 않았나. 그렇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오늘까지 왔다.”

노동자 대투쟁이 한창이던 87년 7월 30여개 노조가 주축이 돼 노동조합민주화실천위원회를 발족했다. 곽 후보는 홍보국장을 맡았다. 이에 앞서 85년 현대화재해상보험에 최초로 보험업종 노조가 결성되자, LG·쌍용을 비롯한 다른 기업에도 노조설립이 이어졌다. 이들과 제2금융권 노조들은 87년 11월 집단으로 한국노총을 탈퇴해 한국자유금융노조연맹을 조직했다. 당시만 해도 노조의 상급단체 가입은 법적 의무사항이었다. 곽 후보는 자유금융노조연맹에서 활동하면서 노동부를 상대로 9개월간 합법성 쟁취 싸움을 벌였고, 끝내 이겼다. 그렇게 사무금융연맹이 탄생했다. 이후 다른 업종에서도 상급단체 탈퇴가 붐을 이뤘다. 이는 민주노총이 출범(95년) 계기로 작용했다.

- 정치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사무금융연맹 위원장이던 2004년 11월 25일간 단식투쟁을 한 적이 있다. 고용이 안정되려면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 그때 단식투쟁 구호가 '금융산업 민주화'와 '업종 균형발전'이었다. 노동계가 개별적 노사관계나 단위 사업장 문제를 뛰어넘어 실력을 갖추고 산업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산별노조운동이었다. 성과가 적지 않았지만 한계도 컸다. 사용자에 앞서 정부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이 의무가 되지 않는 한 사용자는 눈을 감으면 그만이다. 노조조직률이 10% 안팎인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힘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다. 일하는 노동자가 정치에 나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한 용산 만들 것"

- 19대 총선에선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였고, 이번엔 국민의당 후보인데.


“노조간부로 민주노동당 창당에 앞장섰다.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얻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그런데 진보정당운동이 점점 한계에 봉착하기 시작했다. 19대 총선에서는 구심점이 없었다. 적어도 정권을 잡는 것이 가능한 야당에서 정치를 하면서 노동의 문제,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국민의당으로 출마한 것을 설명하려면 19대 국회 평가부터 해야 한다. 여대야소 구도라고 하지만 제1 야당이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았나. 지루한 정쟁과 내부 정파싸움 탓에 지난 4년간 뭐 하나 변한 게 없다. 민주노총 출신 전현직 간부가 참여한 노동정치연대포럼이라는 단체가 있다. 2012년 오랜 토론을 거쳐 당시 대선에 출마한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의 진심캠프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노동이 있는 민주주의’를 구현할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 용산을 출마지로 삼은 이유는.

“2012년 총선 경선에서 패하고, 용산 후암동으로 이사를 왔다. 오기 전엔 몰랐는데 쪽방촌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는 주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쪽방촌 주민을 위한 봉사단체인 동자동사랑방과 지역 협동조합에 가입해 그분들을 돕는 일을 했다. 그러면서 지역사회 현실에 눈을 떴다. 용산은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넘치는 곳이다. 동서로 철로가 놓여 국토 균형발전이 이슈다. 또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뉴타운 졸속개발 때문에 주민 주거환경이 엉망진창이다. 노인인구 비중이 아주 높아 복지 수요 역시 늘고 있는 지역이다. 용산 미군기지 이전도 주요 현안이다. 그런데 17대부터 연달아 보수정당이 집권하면서 제대로 한 일이 없다. 지역사회 현실을 보며 내가 해야겠구나 싶었다.”

- 지역주민을 위한 공약을 소개한다면.

“미군기지가 이전한 뒤 생기는 부지를 효과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2017년 이전이 완료되면 108만평이 생긴다. 기업회의(Meeting)·포상관광(Incentive trip)·컨벤션(Convention)·전시(Exhibition)의 앞 글자를 딴 MICE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 비즈니스와 관광의 결합이 용산의 미래 성장동력이다.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고, 중앙도서관·체육시설을 유치할 것이다. 관내 유휴시설을 활용해 공동 보육·교육·육아 시스템도 마련하겠다. 용산을 엄마와 아이가 행복한 동네로 만들겠다. 선거 캐치프레이즈가 ‘함께 누리는 용산, 따뜻하게 풍요롭게’다. 용산은 서울의 다른 지역보다 빈부격차가 심하다. 용산을 부자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도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야권연대? 여권연대가 어울린다"

용산 선거구도는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새누리당은 용산에 황춘자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 갈등관리위원을 공천했다. 17대부터 내리 세 차례 당선된 진영 의원을 탈락시켰다. 그러자 진 의원은 탈당 후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뒤 4선 도전장을 내밀었다. 곽 후보는 “차라리 여권연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기호 1·2번은 정체성이 같다. 두 사람이 연대해야 한다. 내가 진짜 야권 후보다. 진 후보는 12년 동안 새누리당에 소속돼 용산을 서울의 낙후지역으로 만들었다. 용산 주민들이 오랫동안 1번만 찍었다.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2번을 찍었는데, 후보와 더불어민주당의 정체성을 감안했을 때 또 그럴까 싶다. 45%가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무당층이다. 주민들에게 용산의 변화를 설득하고 있다. 많이 공감한다. 투표함을 열면 깜짝 놀랄 결과가 나올 것이다.”

- 정부 노동정책에 대한 의견은 어떤가. 의정활동 목표가 있다면.

“노동개악이다. 제1 야당의 힘이 약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법이 통과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법들이 국회를 위협한 것 자체가 문제다. 내가 당선돼야 하는 이유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운동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를 위한 법을 만들고 악법은 저지하겠다. 제3 당이 국회에서 자리 잡도록 하는 역할도 하고 싶다. 대선 선거운동을 하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노숙농성장과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들의 철탑농성장을 찾은 후보는 안철수 상임공동대표가 유일하다. 국민의당이 노동자 편에 서고,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정당이 되도록 당내에서 역할을 하겠다.

청년실업이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법을 만들고 싶다.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라는 제도가 있다. 조세특례제한법이 근거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청년을 고용해 지급한 급여만큼 세액공제를 해 준다면 청년채용이 활발해질 수밖에 없다. 재원은 법인세 원상회복과 고수익 자영업자 증세로 마련하면 된다. 임기를 마칠 때 '국회를 민생을 위해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곽태원 후보는

- 1957년 부산 초량동 출생
- 연세대 행정학과 졸업
- 전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 현 안철수 국회의원 정책특보
- 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상임부회장
- 현 한국노동경제연구원 원장


양우람  against@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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