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치용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강원지사)

저는 강원도 원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10년을 넘게 서울생활을 하다 원주에서 공인노무사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제 겨우 5년차 노무사지만, 그동안 경험한 바에 따르면 서울 같은 대도시와 지방 중소도시 내지 시골의 노동관계에서 나타나는 분쟁 양상은 사뭇 다른 경향이 있습니다.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지역사회 규모가 작을수록 노동분쟁은 한 노동자의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작은 단위 사회일수록 인간관계가 서로 얽혀 있다 보니 직장 안에서의 갈등이 직장 밖의 삶에 영향을 미치거나, 직장 밖에서의 갈등이 고용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꽤나 자주 봅니다.

그리고 갈등이 확장될 때 나타나는 모습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최근 직장내 괴롭힘이라는 문제가 이야기되고 있는데요. 제가 접한 상당수 사례들은 직장을 넘어 노동자의 모든 삶의 단위에서의 괴롭힘으로 나타납니다.

사적으로는 친구 아들이나 조카 친구 혹은 동네 이웃으로 지내면서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친밀한 관계가 대부분인데, 보통 사업주는 나이가 많거나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입니다. 이러다 보니 당사자 간 갈등이 일어나면 고용관계에서 사업주 힘을 과시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둘을 둘러싼 사회의 인적관계를 동원한 괴롭힘이 일어납니다.

직장 밖 사회에서 형성된 관계가 없다면 쉽게 해결될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노동자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망신당했다’고 느끼고 ‘너도 당해 봐라. 하다못해 귀찮게라도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싸움에 나섭니다. 그리고 싸움에 나서는 것으로 노동자의 사회관계망은 더 많은 부분이 무너집니다.

의뢰인의 지인이었다면 “억울한 거 다 안다. 어쩌겠냐. 그냥 네가 참아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만한 그런 사건이 반은 될 것 같습니다.

5년 전 사업주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열변을 토한 누군가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사장이 아버지 친구고, 삼촌 같은 사람이라서"라고 말하면서 "그냥 조용히 퇴직금 이야기나 해 보고 안 주면 그냥 포기해야겠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상담 과정에서 눈물을 보이시는 분이 많습니다. 대부분 사업주와의 갈등으로 주변 다른 인간관계까지 문제가 생긴 분들입니다. 노동문제는 단순히 직장내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부에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조금씩 더 깊게 느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갈수록 사건은 더 무겁게 느껴지고, 사건 대리인 역할을 하는 것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저는 의뢰인들에게 "오래 싸우려면 사건을 건조하게 대하셔야 합니다. 마음 많이 쓰시면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곤 합니다. 어쩌면 사건이 주는 무게감을 조금이라도 덜어 보기 위해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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