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대법원 2012다96120 총회의결무효 등

1. 개요

2월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기업별노조인 발레오전장 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 변경 결의를 한 사건에서, 이를 무효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다수의견 8인, 소수의견 5인) 다수의견의 취지는 산별노조 하부 조직이 ①독자적 규약과 집행기관을 가지고 독립한 단체로서 활동해 비법인 사단인 근로자단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거나 ②독자적으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능력을 보유해 기업별노조에 준하는 경우에는 조직형태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②번의 경우에 해당하지 않음은 맞으나 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원심 판결의 심리가 미진하다고 보아 이를 더 심리하라고 파기환송했다. 이에 대해 대법관 5인의 소수의견은 노조법은 노동조합이 주체가 된 조직형태 변경을 허용할 뿐이므로 위 ②의 경우에만 조직형태 변경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뿐만 아니라 다수 의견의 논지에 따르더라도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는 근로자단체에 준하는 지위(위 ①)를 가질 수 없다고 봤다. 이하에서는 대법원 판결(즉, 다수의견)의 부당성에 대해 살펴본다. 대법원 판결의 부당성(예를 들어 조직형태변경 제도 취지 몰각, 부당노동행위 우려 등)은 대체로 알려져 있다고 보이므로 본 기고글에서는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던 쟁점을 위주로 다룬다.

2. 민법상 비법인 사단론을 “이상하게” 끌어들인 정체불명의 판결

법인이나 비법인 사단의 조직형태 변경은 이를 허용하는 법률 규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 사건 조직형태 변경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규정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아니라면 조직형태 변경은 불가능하다. 대법원은 이러한 당연한 법리를 비켜 가기 위해 민법상 일반적 개념인 비법인 사단을 “이상하게” 끌어들이고 있다. 즉, 기존에 대법원은 사단법인의 하부 조직이라도 사단으로서 실질을 갖추고 있으면 이를 별개의 독립된 비법인 사단으로 인정해 왔다. 그리고 대법원은 교회 분열에 관한 전원합의체 사건(대법원 2006.4.20 선고 2004다37775 사건)에서 비법인 사단성을 갖춘 지교회가 (사단법인 정관 변경 요건인) 교인 3분의 2 이상 찬성을 통해 소속 교단에서 탈퇴 내지 변경이 가능하고 이 경우 종전 지교회의 실체는 새로운 교회로 존속하고 또한 종전 지교회 재산은 새로운 교회 소속 교인들의 총유로 귀속된다고 밝힌 바 있다. 언뜻 보면 이번 대법원 판결이 이와 같은 민법상 법리에 따라 판단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의 분열 사건에 관한 대법원 판결은 기존 판결들이 실질적인 분쟁해결 능력이 없다는 비판(즉 교회 분열을 긍정하고 분열 당시 교인들의 총유를 인정하면서 혼란만 가중)에 대해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한 측면이 컸고, 무엇보다도 교회 분열은 법률상 근거가 없는 것이므로 위 대법원 판결에서도 교회 분열을 부정했다. 다만, 교회 운영과 재산관계에 있어 민법상 사단법인의 정관 변경의 요건인 3분의 2 이상 찬성을 충족하면 교단을 탈퇴 내지 변경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그런데 발레오만도지회 사건은 ①1·2심 판결과 같은 논리가 오히려 분쟁해결 능력이 큰 경우이며 ②무엇보다 노조법 제16조라는 명확한 근거 규정이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른 사건이다. 노조법에 명확한 규정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사단법인의 정관 변경에 관한 요건을 적용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백번 양보해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기껏해야 정관 변경에 준하는 효과만을 얻을 수 있을 뿐, 조직형태 변경의 효과를 얻을 수는 없다(물론 효과뿐 아니라 요건도 다르다). 대법원 소수의견도 “법인이나 법인 아닌 사단의 경우도 정관 변경의 우회적 방식을 통해 조직변경과 유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으나, 그 경우에는 그 형식에 따른 법률 효과만 발생할 뿐 조직 변경의 법률상 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며 다수의견을 비판하고 있듯이 이번 대법원 판결은 민법상 비법인 사단론을 “이상하게” 끌어들인 정체불명의 판결이다.

3. 독자적 단체협약체결 능력이 없는 근로자단체가 조직형태 변경을 거치면 독자적 협약 능력이 생긴다는 기이한 논리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기존에 논의되던 조직형태 변경의 효과(구성원·재산관계·단체협약의 승계)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조직형태 변경의 효과 3가지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단체협약 당사자 지위 유지 및 단체협약의 승계(협약 당사자 지위 유지)다. 즉 구성원·재산관계 부분은 산별노조 지회가 자체적으로 정한 다른 방식(개별 탈퇴 후 노동조합 신설, 재산 분배 후 다시 조합비 징수)을 통해 조직형태 변경과 유사한 효과를 달성할 수 있지만, 협약 당사자 지위 유지는 오직 조직형태 변경을 통해서만 가능한 제도 고유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회사가 피고 보조참가를 한 이유도 단체협약의 효력 때문이었고, 실제로 조직형태 변경 관련 소송의 절대 다수가 단체협약에 관한 문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협약 당사자 지위는 조직형태 변경 주체 요건 판단시에도 핵심적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법원의 결론은 협약 능력이 없는 근로자 단체가 조직형태 변경을 거치면 협약 능력이 생긴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협약 능력이 없는 단체가 조직형태 변경을 통해 협약 당사자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또 하나의 기이한 논리를 만들었다. 즉 “①산별노조 지회 등이 독자적 협약 능력이 없더라도 근로자단체로서의 독립성이 인정되면 ②고유한 사항에 대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③의사결정 능력을 갖춘 이상 규약 개정 등을 통해 단체의 목적에 근로조건 등의 유지 등을 추가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실체를 가지고 활동할 수 있다”고 봤다. 이는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체결권은 사단성을 갖춘 근로자단체라면 규약 등에서 이를 정하지 않았더라도 내재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권리로 의제(擬制)한 것으로 보인다. 민법상으로도 법인의 권리능력은 정관에서 정한 목적범위 내(內)에서 인정되는 것이므로 이는 결론에 짜 맞춘 억지 논리다.

4. 조직형태 변경으로 산별노조에 편입한 경우를 달리 볼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이를 특별히 취급한 것은 부당

대법원은 산별노조 하부조직 중에서 “기업별노조가 조직형태 변경 절차를 통해 산별노조 하부조직으로 편입된 경우”에는 비법인 사단성이 인정될 여지가 더 큰 것처럼 판시했다. 일부 대법관은 아예 조직형태 변경 방식으로 편입됐다면 같은 방식으로 탈퇴할 수도 있다는 취지로 판시하기도 했다. 이 쟁점은 금속노조 설립 초기에 논란이 됐던 것이기도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근거가 없다고 봐야 한다. 즉 위와 같은 주장은 조직형태 변경은 “실질적 동일성”이 유지됨을 전제로 하므로 조직형태 변경 방식으로 산별노조에 편입한 경우에는 “실질적 동일성”이 유지되고 있으므로 같은 방식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 동일성이란 조직형태 변경 결의 당시에 유지되면 족하다. 그 이후(以後) 사정변경(예를 들어 산별노조가 단체협약 체결의 주체가 됨으로써 단체협약 당사자 지위 변경 등)이 발생해 실질적 동일성이 상실됐다고 하더라도 소급(遡及)해서 조직형태 변경이 무효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편입됐으면 같은 방식으로 나갈 수 있다”는 주장은 조직형태 변경 제도를 마치 연합단체 가입과 같은 것으로 바꿔 버리는 것으로서 법률적 근거가 없는 수사학(修辭學)에 불과하다.

5. 소결 : 노동 3권에서 단결권을 분리시킴으로써 노동 3권 자체를 무너뜨린 판결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노동 3권 중 단결권을 일반적인 결사의 자유의 문제로 치환해 버림으로써 노동 3권을 일체로서 파악해야 한다는 당연한 헌법적 요청을 몰각한 판결이다. (물론 결사의 자유 측면에서도 부당하다.) 그 결과 노동조합의 집단적 단결권 자체가 침해됨은 물론이고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까지 위협받게 됐고, 이는 다시 노동자 개인들의 단결권 침해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개별적 단결권, 집단적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 유기적으로 일체를 이루도록 한 헌법 체계를 무너뜨린 것이다.

6. 파기환송심

위와 같이 부당한 점이 매우 많은 판결이지만, 이 사건만을 놓고 보면 다수의견이 발레오만도 지회의 비법인 사단성에 대해 추가로 심리하라고 한 것일 뿐 비법인 사단성이 인정된다고 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사용자의 극심한 지배개입으로 이뤄진 이 사건 총회는 그간 가장 첫 번째 주장(조직형태 변경의 주체 요건 결격)이 계속 받아들여져서 나머지 쟁점이 부각되지 않았을 뿐 여전히 총회가 무효라고 볼 근거가 많이 있다. 이러한 점을 적극 주장해 파기환송심에서 동일한 결론(총회 무효)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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