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국회 필리버스터가 세간의 화제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이 필리버스터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문제가 된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테러방지법을 보면 그들이 헌법과 기본권을 얼마나 무시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첫째, 모호하기 그지없는 '테러' 개념 정의에다, 국가정보원이 선전·선동을 했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테러 위험인물'이 돼 각종 정보수집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사상·신념과 노동조합·정당 가입, 정치적 견해, 성생활 등과 같은 민감정보와 개인 위치정보도 그 대상이 된다.

둘째, (의미도 모호한) '테러'에 참가할 목적으로 타국으로 이동을 '시도'하기만 해도 외국인테러 전투원이 된다.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도 포함된다.

셋째, 현행법상 “국가안전보장에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통신제한 조치가 가능한데, 법안에 따르면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경우”에도 통신제한 조치가 가능해진다.

넷째, 테러를 상징하는 표현물은 긴급삭제 요청 대상이 된다.

다섯째, 테러단체에 가입을 권유하기만 해도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벌금형도 없는 죄다.

여섯째, 대테러센터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 구성원이 누구인지 비공개일 뿐 아니라 대테러센터의 조직·정원 및 운영은 모두 대통령령에 위임돼 있다. 현재의 법안보다 더욱 심한 개악이 예상된다.

일곱째, 이러한 무수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제도로 새누리당과 정부는 국가테러대책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산하에 대테러인권보호관을 둔다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미약하기 짝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검찰에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원청 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을 강요·공갈죄로 기소해온 점, 민중총궐기대회를 소위 소요죄로 기소하려고 했던 점을 보면 노동조합과 사회단체들이 국가를 상대로 하는 정당한 요구가 “국가의 권한 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는 테러”에 해당한다면서 각종 제한 조치를 할 가능성이 충분함을 알 수 있다.

헌법 제17조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제18조는 통신 비밀을, 제19조는 양심의 자유를 국민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은 이러한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한다. 이런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의 머릿속에서 헌법은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

한편 지난달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2010년 5월과 6월 기업별 노동조합으로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한 것이 유효한지를 다투는 사건에서 “독자적 교섭능력과 협약 체결능력이 없어 조직형태변경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2심 판결을 파기환송(다수 의견 8명, 소수의견 5명)했다. 그 이유는 근로자 단체로서의 단체성만 있다면 독자적 교섭능력이나 협약 체결능력이 없더라도 조직형태변경 주체가 될 수 있는데, 2심 법원이 독자적 교섭능력이나 협약 체결능력이 없다는 점만을 보고 조직형태변경을 무효로 판시해 심리가 미진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수 의견은 민법적으로 보더라도 부당하다. 민법은 다른 법률의 근거가 없다면 법인이나 비법인사단의 합병·분할·조직형태변경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다수 의견은 애매한 근거로 이를 인정한 것이다. 다수 의견은 노조법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부당하다. 노조법상 조직형태변경 제도는 산별노조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됐는데, 독자적 교섭권과 협약 체결능력이 없어 도저히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는 경우까지도 노조법에서 정한 조직형태변경 제도의 적용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소수의견이 지적했듯이 입법취지와는 정반대로 산별노조 해체를 촉진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노동조합에 대한 사용자의 지배·개입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 김신 대법관이 강조했듯이 노조법상 조직형태변경을 다루는 사건에서 노조법은 간 데 없고 민법 이론만 그것도 무리하게 적용하려 한 것이다. 사법부가 법률을 무시한 셈이다. 헌법을 무시하는 입법부, 법률을 무시하는 사법부는 존재의의가 없다. 입법부와 사법부 스스로 자기 존재의 근거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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