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국내 유일의 노동 관련 고등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고려대 노동대학원과 노동대학원의 모태인 노동문제연구소가 지난해 각각 20주년과 50주년을 맞았다. 한국 사회의 노동 아카데미즘 산실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두 기관이 올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 중심에는 지난해 3월 취임한 조대엽(56·사진) 노동대학원장 겸 노동문제연구소장이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노동대학원에서 조대엽 원장을 만났다. 사회학과 교수인 그는 2004년부터 4년간 노동대학원 노동복지정책학과 주임교수를 지낸 바 있다.

- 원장에 취임한 지 1년이 됐다. 소감은.

“노동대학원은 대학 안에서 가장 사회와 밀접히 연관돼 있는 창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과 가깝게 결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노동이라는 구조적인 과제를 고민해야 하는 곳이다. 고려대가 표방한 '개척하는 지성'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노동현장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많이 구상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노동대학원 20년·노동문제연구소 50년

- 가장 주력한 사업은 무엇인가.


“노동대학원 석사학위와 노사정 최고지도자과정을 거쳐 간 사람이 약 2천500명이다. 이 자원을 네트워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우리가 가진 기본적 자원을 엮어 내고 공감대를 넓혀 가고자 했다. 최고지도자과정 중 하나인 노사정 포럼을 학교 안이 아닌 외부에서 진행하면서 노동대학원 브랜드로 전환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초대했다. 노사정 포럼 회원으로서 교우들을 엮어 내고 힘을 만들어 내는 데 중점을 뒀다.”

1995년 3월 개원한 노동대학원은 석사과정으로 노동법학과·노사관계학과·노동경제학과·노동복지정책학과·인력관리학과를 두고 있다. 이 밖에 노사정 최고지도자과정·근로복지정책과정·노사관계전문가과정·근로감독행정전문과정·산업인력정책과정 같은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노동대학원이 20년간 운영되면서 노동전문가를 배출하는 산실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노동대학원은 산업화·민주화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의 연장선에서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문제연구소는 65년 12월 군사독재 시절에 창립했다. 노동자는 그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노동문제를 고민하기 어려웠던 그 시대에 노동문제를 먼저 제기하고 이를 학술적·교육적으로 구축했다. 산업화 시대에 노동문제를 이슈화하고 노동활동가를 훈련하면서 민주주의 과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노동문제연구소와 노동대학원이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노동의 가치를 보편화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 노동대학원의 한계도 지적된다. 비싼 등록금 탓에 노동활동가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데.

“노동활동가들은 (노조나 단체에서) 학비를 지원받기 힘들다. 그럼에도 학생 구성에서 노동 중심성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노동활동가들이 활용 가능한 방법은 장학금이다. 올해부터 장학금 지급 방향을 바꿨다. 성적우수자가 아닌 학비가 정말 필요한 학생에게 주는 방식이다. 자비로 다니는 학생에 한해 장학금을 지원한다. 미국 주요 대학에서도 그렇게 운영한다. 궁극적으로는 노동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확장해야 한다. 노조 상황이 좋아지면 재교육이 가능하다. 반대로 노조가 약화되면 쉽지 않다. 장기적 과제지만 노동자들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노동현장과 함께 해결해 가고 싶다.”

"연구기능 강화해 미래 노동방향 모색"

- 노동대학원 발전방향을 설명한다면.


“노동대학원 석사과정은 매년 평균경쟁률 3대 1로 안정적으로 모집되고 있다. 이제 노동대학원이 해야 할 일은 연구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노동의 위기는 세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보화·자동화 과정에서 노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노동 없는 미래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미래의 노동에 대해 고민하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노동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고 답을 줘야 하는 주체로서 노동대학원 자원을 모으고 네트워킹에 나설 것이다. 다른 한 축에서는 노동문제연구소를 되살리고자 한다.”

노동문제연구소를 모태로 노동대학원이 만들어졌지만 정작 대학원이 성장한 것과 달리 연구소는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진단과 관련해 조 원장은 “노동문제연구소가 한 가장 큰 기여는 노동대학원을 만든 것”이라며 “노동문제연구소 고유의 연구기능을 체계화해 싱크탱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노동문제연구소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연구소 산하에 4개의 연구센터를 만들 것이다. 청년일자리연구센터·감정노동연구센터·노사관계발전연구센터·노동통계조사센터다. 사회경제적 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주제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산별노조운동이 더욱 위기에 처했다. 노동운동은 산별노조운동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누가 고민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연구센터를 구축하려면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일단 프로젝트를 통해 운영하려고 한다. 현재 전임연구교수 2명을 모셨다. 앞으로 10명까지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노동문제연구소가 발간해 온 <노동연구>의 학술등재지 등록도 추진하고 있다.”

조 원장은 통합학문 개념으로 ‘노동학’을 제시했다. 노동문제연구소가 앞장서 새로운 학문개념을 체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지금의 노동문제를 개별화·구획화된 학문 분야로 접근해서는 현실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노동학이라는 새로운 통합학문으로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노동학은 현장과 아카데미즘을 결합한 실용적 학문 분야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 노동학 컬로퀴엄(연구모임)을 대학 안이 아니라 노동현장을 순회하며 개최할 생각이다. 노동현장의 정책적 이슈를 나누고 협력적 과정을 만들고자 한다. 현장과 학문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노동학 정립해 현장 대응력 높일 것"

노동대학원이 노사관계 우수기관 인증제 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눈에 띈다. 이와 관련해 조 원장은 “노사관계의 질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방향을 제시하는 지표를 발굴하겠다”며 “발굴한 지표를 가지고 평가해 일정 수준이 되는 곳은 모두 우수기관으로 인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경쟁구도를 통해 평가하고 상을 주는 개념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노동대학원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한 지표를 개발하기 위해 TF팀을 구성한 상태다. 그는 “노동문제연구소와 노동대학원의 인증을 받아야 사업장다운 사업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노동대학원과 노동문제연구소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인가.

“2013년 옥스퍼드 마틴스쿨은 보고서에서 앞으로 20년 안에 미국에서 47%, 중국에서 77%, 인도에서 60%의 일자리가 소멸될 위기에 있다고 예측했다. 2020년까지 주요 15개국에서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고 했다. 급변하는 시대에 노동이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노동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노동은 어떠한 위상과 미래를 전망해야 하는가. 이런 것을 내다보는 것이 시대적 과제다.

노동은 인간활동의 본원적인 요소다. 인간은 노동으로 자기 가치를 실현한다. 노동이 해체되고 분절화되면서 기계적 노동으로 전락한다면 자기실현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노동을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을 것인가. 노동문제연구소는 노동과 다른 사회영역과의 관계를 고민할 것이다. 예전에 개념이 없었던 감정노동이란 것도 노동경제학·노동사회학·노동심리학이 결합해 탄생한 학문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노동학이 필요하다. 노동대학원은 이런 내용을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유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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