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노동자 보호입법 해체를 의미하는 ‘노동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노동자 권리보장 강화 입법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해고 없는 일터 만들기, 사용자 전횡을 막기 위한 입법대안 국회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고용은 ‘조정’의 대상이 아니라 ‘안정’의 대상”이라며 “고용관계법의 기조가 ‘좋은 일자리 창출’로 전환돼야 한다”고 운을 뗐다.

◇고용은 '안정'의 대상=고용정책 기본법은 국가고용정책의 목적을 “근로자의 고용안정, 기업의 일자리 창출과 원활한 인력 확보를 지원하고 노동시장의 효율성과 인력 수급의 균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의 삶과 질 향상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및 고용을 통한 사회통합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안정보다는 기업의 인력확보에, 삶의 질 향상보다는 노동시장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권 변호사는 “헌법상 근로의 권리는 단순히 일하게 해 주면 족한 것이 아니라 일을 통해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삶을 정상화하도록 하는 목적을 가지고 설계돼야 한다”며 “고용안정과 고용평등의 구체적 가치와 고용정책적 방향을 선명하게 보여 줄 수 있는 정의개념을 담고, 고용기본계획 수립에 관한 정부와 지자체의 책무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직장내 괴롭힘과 학대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근로기준법에 관련 조항을 신설해 “사용자는 노동자의 권리와 존엄을 침해하거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훼손하거나, 직업적 장래를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넣고 금지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직장내 괴롭힘에 의한 정신적·신체적 질병 또는 사고를 업무상재해로 본다”는 내용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권 변호사는 “근로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근로자들은 근로계약의 상대방인 사용자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에 걸맞은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해고로 통용되는 경영상해고에 대한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법원은 사용자가 ‘장래에 올 수도 있는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진행한 정리해고에 대해서도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권 변호사는 “도산·위기 상황이 아닌데도 기술도입·산업구조 변화·유동성 위기 등 경영합리화 명목으로 이뤄지는 정리해고의 경우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부정함으로써 근로자들을 계속 보호하는 방향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조건은 노사가 함께 정하는 것"=노동관계법상 고용은 ‘고용과 사용이 분리되지 않은’ 직접고용이 원칙이다. 하지만 간접고용이 남용되면서 △노동법상 사용자책임 회피 △간접고용 노동자 노동 3권 제한 △차별과 해고 남용 같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관련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시·지속업무에 정규직 직접고용 원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권 변호사는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폐지하거나, 근기법에 ‘중간착취 배제’를 규정한 조항을 신설해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 상시적 업무에 대해서는 도급·위탁·용역 등 명칭을 불문하고 제3자를 매개로 한 간접고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법에서 금지한 간접고용을 행한 사용자에 대해서는 직접고용 간주조항(고용의제)을 적용해 해당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 변호사는 특히 "근로조건은 노사합의로 정해져야 한다는 점을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근기법 제4조는 “근로조건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며 ‘근로조건 대등 결정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대표체인 노동조합의 규모가 커지고 기능이 강화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은 모두 10% 내외에 마물러 있다. 이런 상태에서 취업규칙이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보다 중요한 사업장 규율로 작동하는 실정이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취업규칙은 ‘근로조건 대등 결정의 원칙’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내놓은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한 내용이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되는 경우 근로자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다”고 해석함으로써 사용자의 근로조건 결정 권한을 대폭 늘렸다.

권 변호사는 “취업규칙 제·개정시 유불리 여부를 불문하고 집단적 동의를 요하도록 근기법을 개정함으로써 근로조건 대등 결정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해야 한다”며 “법적 구속력이 없는 행정지침을 통해 국민 권익을 침해하고, 민주주의·법치주의와 권력분립 관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를 야기하는 정부의 월권적 행정입법권을 통제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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