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울산지역에서는 사용자들이 성과연봉제·임금피크제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공세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노조가 70일 가깝게 파업을 벌이고 있는 KPX케미칼이 대표적이죠. 정부가 앞장서 임금체계 개편을 독려하면서 사용자들이 너도나도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습니다. 현재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사업장부터 현장투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래야 노동개악 시도를 막아 낼 수 있어요.”

이준희(54·사진) 한국노총 울산지역본부 의장은 지난 16일 오후 울산 남구 본부 의장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박근혜 정권의 반노동자 정책이 기업들로 하여금 공세적인 임금·단체협약 요구안을 내놓도록 만들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KPX케미칼노조 파업은 그런 측면에서 노동계와 정권·자본의 대리전 성격을 띤다”며 “총연맹·산별연맹·지역본부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이 싸움을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KPX케미칼노조가 진다면 울산지역과 석유화학업종에 임금체계 개편 바람이 확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의장은 또 “한국노총이 대의원대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명확한 총선방침을 세우고 일사불란한 정치활동에 나서야 한다”며 “그럴 때 조직혼란도 줄이고 한국노총의 정치적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그는 특히 “한국노총이 논의 중인 반노동자 정당 심판이라는 총선방침은 조직이나 개인의 이해나 지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며 “특정 정당을 반노동자 정당으로 지목하거나 다른 판단이 나오지 않도록 판단기준과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의장은 2011년 3월 울산본부 의장에 취임한 후 2014년 재선해 올해까지 5년간 본부를 이끌고 있다.



- 최근 울산지역 노사관계 흐름은 어떤가.

“울산지역에서는 사용자들이 성과연봉제·임금피크제 같은 임금체계 개편을 공세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노조가 68일째(지난 16일 기준) 파업 중인 KPX케미칼이 대표적이다. 회사측이 신입직원 초봉 10% 삭감과 호봉제 폐지, 성과연봉제·임금피크제 도입이라는 공세적 임금·단체협약 요구안을 들고나오면서 노사갈등이 심해졌다.

노조는 28년 만에 파업에 나섰다. 그러자 사측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일부 공정을 도급화하겠다고 노조를 위협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반노동 정책이 기업들로 하여금 공세적 요구안을 내놓고 밀어붙이도록 만든 것이다. 전통적 노사갈등 이슈였던 임금인상이나 복지 향상 같은 문제가 아닌 정권 차원에서 추진하는 노동정책 이슈로 노사갈등이 불거지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KPX케미칼은 정권·자본과 노동계 대리전



- 울산본부가 KPX케미칼노조 파업 지원에 집중하고 있는데.

“KPX케미칼노조가 이번 싸움에서 진다면 임금체계 개편을 요구하는 경영진 목소리가 울산지역과 석유화학업종 전반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정책인 데다, 관철시킬 수 있다는 학습효과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를 전략적으로 막아 내야 한다. 중앙 차원의 투쟁도 필요하지만 최전선에서 싸우는 현장투쟁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총연맹·산별연맹·지역본부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KPX케미칼노조 승리를 위한 집중투쟁에 나설 것을 요청한다. 이번 싸움은 정권과 자본, 노동계의 대리전 성격을 띠고 있다.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 현장에서부터 임금체계 개편과 노동개악 시도를 막아야 한다.”



- 박근혜 정부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일반해고 지침(공정해고 지침)은 저성과자 퇴출과 쉬운 해고를 불러오는 제도다. 해고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하는데, 정부는 새로운 해고제도를 만들어 쉬운 해고를 조장하고 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역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저하를 손쉽게 하려는 제도에 불과하다.

성과연봉제나 임금피크제 같은 임금체계 개편은 사업장 상황이나 현실에 맞게 노사가 자율적으로 논의해 도입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정부가 마치 모든 사업장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해야 하는 것처럼 신호를 주면서 사용자들이 너도나도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깨진 것은 어떻게 보나.

“노사정 협상과 사회적 대화는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는 유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 인내를 가지고 협상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대화를 이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정 누군가의 이해만을 반영하려 하니 대화가 깨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닌가. 지역 차원의 노사민정 대화를 활성화해 신뢰의 토대를 쌓아야 한다. 지역 동반성장을 논의하는 자리로 노사민정협의회를 활용한다면 지역 현안을 해결하면서 사회적 대화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정부가 2대 지침을 비롯한 노동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

“노사정 합의 파기 이후 한국노총의 후속대책이 뚜렷하지 않았던 한계가 있었다. 예컨대 노동법 개악이 중단되거나 마무리될 때까지 지역별로 새누리당사 앞에서 수요집회(정기집회)를 하는 등 지속가능한 투쟁전략을 세우고 실천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노사정 합의가 깨졌다고 노동개악 국면이 중단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총연맹이 투쟁방침이든 정치방침이든 전략을 세우고 일관된 지침을 산하조직에 내려보내야 한다. 산하조직은 이를 철저하게 준수하면서 총연맹에 다시 힘을 모아 줘야 한다. 그래야 한국노총에 힘이 실리고 노동개악도 막아 낼 수 있다.”



“4·13 총선방침 심도 있게 논의해야”



- 한국노총이 24일 대의원대회에서 총선방침을 정한다.

“주요 내용은 4·13 총선에서 반노동자 정당 심판운동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침은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조직이나 개인의 정치적 이해나 지향·판단에 따라 반노동자 정당을 다르게 규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단이 다르면 행동이 같을 수 없다. 조직별로 다른 행동에 나선다면 혼란은 가중되고 한국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은 축소된다. 조직의 방침이라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알기 쉽고 명확해야 한다. 총연맹 차원에서 반노동자 정당을 특정하거나 최소한 누구나 다르게 판단하지 않도록 판단기준과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대의원대회에서 이와 관련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명확한 정치방침이 서야만 조직 혼란을 줄이면서 일사불란한 행동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글·사진=김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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