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금융노조

"퇴직한 사용자는 로그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씨티그룹캐피탈 직원들이 한국씨티그룹 업무 관련 통합전자승인시스템인 '스마트시티'에 접속할 때면 보게 되는 공지문이다.

"어젯밤(24일)까지 접속이 됐는데 오늘 아침부터 딱 차단됐네요."

25일 오전 서울 중구 다동 씨티은행 앞 천막농성장 인근에서 만난 한주명(43·사진) 사무금융노조 씨티그룹캐피탈지부장은 "예상은 했다"고 말하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씨티그룹캐피탈은 지난 21일자로 아프로서비스그룹에 완전 매각됐다. 씨티그룹이 캐피탈 직원들의 내부 전자시스템 접근을 차단한 것도 '당신들은 더 이상 씨티그룹 직원이 아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지부는 "씨티은행이 결자해지하라"며 이날로 27일째 전면파업을 이어 가고 있다. 파업이 계속되면서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업무 인수인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씨티그룹캐피탈의 껍데기만 인수한 셈이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인수자산 연체율 증가와 자산가치 감소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주명 지부장은 "조합원들도 하루빨리 새로운 회사의 기업가치와 기업문화를 받아들이고 업무에 집중하고 싶어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모기업인 씨티은행이 엉킨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협 놓고 씨티-아프로서비스 '핑퐁게임'

한 지부장에 따르면 지부와 씨티은행은 거의 매일 교섭을 하고 있지만 의견접근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프로서비스그룹으로 옮겨 가려는 직원들은 고용보장을 위한 단체협약 갱신을, 퇴직을 원하는 직원들은 업계 평균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요. 수십 년 동안 이뤄 놓은 수익(장기경영성과)에 대한 정당한 보상도 이뤄져야죠. 그런데 씨티은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부는 인수자가 결정되기 전부터 단협 갱신을 요구했다. 그러자 씨티은행은 "새로운 인수자와 단협을 체결하라"며 버텼다. 인수자로 아프로서비스그룹이 확정된 뒤에도 아프로서비스그룹과 단협을 체결하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계열사에 노조가 없는 아프로서비스그룹은 단협 체결에 부정적이다.

한 지부장은 "기업이 인수합병을 하면 피합병회사 직원들이 가진 권리까지 가져가야 하는데도 두 회사 모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씨티은행과 단협 갱신을 못하고, 아프로서비스그룹과도 새로운 단협을 체결하지 못할 경우 6개월 뒤엔 결국 무단협 사업장이 된다"고 우려했다. 조합원들의 고용보장을 담보할 장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는 "아프로서비스그룹을 상대로 투쟁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매각 초반에는 일본계 대부업체라는 이미지 때문에 거부감이 커서 아프로서비스그룹을 반대했지만 매각 과정을 지켜보면서 오히려 씨티은행의 부도덕함에 질릴 대로 질렸다"고 했다. 주주이익 극대화에 혈안이 돼 수십년간 일한 직원들을 내팽개치는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 지부장은 "장기 경영성과를 독식하겠다는 씨티자본의 탐욕이 파업 장기화의 주된 요인"이라며 "씨티은행이 성실히 교섭에 나서면 하루빨리 투쟁을 마무리 지은 뒤 아프로서비스그룹과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싶다"고 말했다.

"캐피탈, 씨티은행 구조조정 시험지"

한 지부장은 특히 "씨티그룹캐피탈 매각을 기점으로 씨티그룹이 한국에서 소매금융을 철수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씨티은행의 점포운영 전략이 2011년부터 진행된 씨티그룹캐피탈 영업점 개편 과정과 유사하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2011~2012년 씨티캐피탈은 89개였던 영업점을 15개로 대폭 줄이고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씨티은행도 몇 년간 꾸준히 점포를 줄이고 인력을 감축하면서 몸집을 줄여 왔다.

한 지부장은 "2014년 씨티그룹이 일본에서 소매금융을 철수하면서 2015년에는 한국 차례라는 얘기가 돌았다"며 "씨티은행의 부분적인 사업 철수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캐피탈을 시험 삼아 주주이익에 최적화된 구조조정 모델을 만들어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200여명이 당했지만 앞으로 은행을 포함해 수천명이 길거리로 내쫓길 수밖에 없다"며 "씨티자본의 부도덕함을 끝까지 알려야 하는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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