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전국농협노조와 전국축협노조가 최근 통합해 전국협동조합노조로 출범했다. 농·축협노조가 처음으로 통합을 시도한 해가 2000년이었으니, 햇수로만 15년이 걸린 셈이다. 수협노조까지 단일화를 추진했던 2009년 두 번째 통합 실패 이후 삼수 끝에 '협동조합노조'라는 한 지붕 아래 한 가족이 됐다. 동시에 조합원 7천400여명의 거대 조직이 됐다.

농협·축협을 포함해 협동조합법인에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를 아우르는 산별노조를 표방한 만큼 조직확대 가능성도 크다. 통합노조 초대위원장에는 민경신(51·사진) 전 농협노조 위원장이 선출됐다. 민 위원장은 2010~2013년 농협노조 위원장을 거쳐 사무금융연맹 협동조합업종본부장을 지냈다.

지난 19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민 위원장은 "통합 초기인 만큼 농협노조와 축협노조 조합원들의 화학적 결합을 도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깨가 무겁다"면서도 "다시 한 번 열정을 풀어 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서울 서대문구 옛 농협노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협동조합노조는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위치한 옛 축협노조 사무실에 둥지를 틀 예정이다. 사무실 개조공사가 마무리되는 다음달 입주한다.

삼수 끝에 통합한 농협과 축협

- 몇 차례 실패 끝에 농협노조와 축협노조가 통합했다.


"농협노조 역사는 산별노조를 만드는 과정이나 마찬가지였다. 1990년 농협 경기지역노조를 만들었는데, 정부가 노조 설립신고를 안 받아 줬다.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승소했다. 3년 가까이 걸렸다. 힘들게 지역노조를 만들었는데, 정작 정부와 농협중앙회를 상대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전국 단위 노조결성을 시도했다. 이때도 계속 '대표성이 없다'거나 '절차상 하자가 있다'며 설립신고증을 내주지 않았다. 95년·97년 두 차례 실패했는데, 99년 세 번째 시도 끝에 전국농협노조가 만들어졌다. 곧바로 2000년 축협노조와 단일노조를 만들려고 했지만 해당 안건이 농협노조에서 부결됐다. 2009년에는 수협노조까지 함께 통합을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이번이 세 번째 도전이었다."

- 어렵사리 통합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농협노조나 축협노조 모두 단일노조로 가야 한다는 대의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직통합 논의라는 게 아무래도 상층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터라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분분했다. 통합 안건이 번번이 부결된 이유다.

이번에는 통합 논의가 상층 중심으로 흘러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조합원 교육과 토론을 많이 했다. 아래로부터 통합을 추동했기 때문에 조직전환을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민 위원장은 지난 1년 동안 조직통합을 위해 동분서주한 농·축협노조 집행부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지난해 12월 임기를 마치고 올해 6월 정년퇴직을 앞둔 강근제 전 농협노조 위원장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고맙다"고 했다. 그는 "강근제 전 위원장이 통합 과정에서 엄청 고생했다"며 "농협노조 초대위원장이기도 한데, 이번에 결자해지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 농협노조와 축협노조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떤가.

"아직은 낯설어하는 것 같다. 사업을 해 나가면서 천천히 화학적 결합을 도모할 생각이다. 집행부를 바라보는 조합원들의 기대가 클 듯하다. 어떤 사업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 낼까,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우선 조직을 안정화한 뒤 조합원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사업을 배치할 것이다. 대정부·대농협중앙회 투쟁이 중심이 될 것이다."

"지속가능 농업, 협동조합 공공성 회복 주력"

- 통합을 추진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농협과 축협이 흩어져 있다 보니 협동조합 공공성이라는 커다란 그림보다는 지엽적이고 눈앞에 놓인 단편적인 투쟁에 매몰되곤 했다. 단일조직이 되면 협동조합 공공성을 위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함께 투쟁할 수 있지 않겠나."

- 협동조합의 사회적 공공성 회복·강화를 주요하게 내세웠는데.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이 출자해 만든 조직이다. 지역농협은 농민이 출자해 만들었다. 지역농협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단행한 신용사업·경제사업 분리로 농협중앙회가 거대 주식회사가 됐다. 주식회사는 수익을 내야 한다. 수익을 내려면 농민들에게 물건을 비싸게 팔아야 한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 사업을 해야 하는데, 농민 등에 빨대를 꽂아 피를 빨아먹는 조직이 돼 버린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돈을 벌어 지역농협에 환원해 준다고는 하지만 과연 형평성 있게 줄 수 있겠나.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에 지원하는 무이자자금은 농협중앙회장의 통치자금이라는 말까지 있다. 중앙회 회장의 측근들이나 특수관계에 놓인 조합의 경우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런 구조를 깨야 협동조합 공공성을 살릴 수가 있다. 공공성 회복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대안도 만들어야 한다. 농업이 어려워지고 농민이 소득이 없어 못살게 되면 농협의 기반도 흔들린다. 협동조합 노동자들의 생존권에 직결돼 있는 문제다. 식량이 안보가 되고 무기가 되는 시대다.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영국은 식량자급률이 100%가 넘는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농산물 자급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영국은 농업보조금을 50% 이상 주면서 농업을 장려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자유무역협정(FTA) 핑계를 댄다. 농민들과 함께 살려고 하지 않으면 기층 민중들은 모두 죽는다."

"김병원 회장, 인의 장막부터 제거해야"

- 농·축협노조는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장과 대척점에 있었다. 최근 당선된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중앙회장 후보 중 개혁적인 인물에 속한다고 본다. 농민운동가 출신인 김순재 후보가 가장 개혁적이었지만 김병원 회장도 선거운동 당시 매니페스토 운동을 진행한 좋은농협만들기 국민운동본부가 제안한 24개 공약권고안을 전부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대할 만한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병원 회장이 농민을 위해 구상했던 일을 제대로 하려면 인의 장막부터 제거해야 한다. 회장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인의 장막만 없애면 일단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민 위원장은 최원병 전 회장에 대해서는 "감옥을 못 보내 억울하다"며 "정권이 바뀌면 온갖 비리가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고 귀띔했다.

- 통합노조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생각인가.

"열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 앞으로 나가긴 쉽지만 뒤로 가기는 힘들다. 단결해 한 발 나서게 되면 후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단결하고 또 단결해야 한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기층 민중과 연대하고 단결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정세를 뒤엎지 못한다.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도 어렵다. 힘없는 사람일수록 뭉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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