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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의 나라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헬조선. 이 나라가 지옥이라는 말이다. 도대체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저 조선이라 칭하는 나라가 아니라 이 나라를 두고서 하는 말이었다. 열정페이·무급인턴·비정규직·취업난 등 오늘 청년들이 이 대한민국을 ‘지옥’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이다. 88만원세대·민달팽이세대·삼포세대·N포세대 등으로 불려 왔던 청년이 이제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는 말로 부르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청년들은 자신들에게 이 나라는 절망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야 나는 이 말을 알았다. 하긴 나 말고도 모르는 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국정감사에서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는 질의에 “들어본 적이 없다”고 대답을 했다니 말이다. 뭐 들어본 적이 없어도 이 나라가 청년에게 절망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 절망을 말하고 있는 청년에게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권력과 자본이 이 나라를 헬조선으로 몰아넣었다고 해도 노동운동은 청년에게 희망을 말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2. 그렇다고 권력이 헬조선이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나라를 지옥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이 나라를 통치하는 권력이 제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집권여당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헬조선을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배워서 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지나친 비관과 비난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던 것이리라. 근래 부쩍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동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이를 위한 국회 입법과 고용노동부 지침을 서둘러야 한다고 박근혜 정부의 선전홍보가 뉴스와 광고를 장식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추진돼야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열씨미’ 요란하다. 분명히 이 나라의 현실이 청년에게 헬조선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아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청년들만큼이나 이 나라가 청년에게 절망이라는 걸 알고서 권력은 오늘도 노동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이런 권력의 선전을 듣고 있노라면 노동 관련 5대 법안을 입법해 주지 않고 있는 국회, 그중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의 행태는 청년의 절망을 외면하고서 정쟁이나 일삼고 있는 짓이라고 생각이 들고, 저성과자 일반해고, 임금피크제 등 노동부 가이드북 마련에 반발해서 노사정합의의 파기니 노사정위의 참여 자체를 거부하거나 탈퇴 운운하고 있는 한국노총·민주노총 등의 행동은 조합원의 기득권 보호, 정규직 이기주의에 사로 잡혀 청년의 처지는 안중에 없는 짓이라고 착각이 든다. 그래서였나. 최근 정부가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노동개혁이 신속히 추진돼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3. 널리 알려진 대로 이 나라에서 청년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굳이 청년의 취업률이니 실업률이니 통계자료를 인용해 말하지 않더라도 심각하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대학 진학률이 높고, 전공이 취업률이 높은 이공계가 아니라서 인력에 대한 기업의 수요와의 미스매치가 문제라고 했다는 어느 전문가의 진단조차도 엉터리로 만들 정도로 고액 연봉의 사무관리직이 아닌 직장에 취업하기도 어렵다. 그저 비정규직이 아니라서 고용이 안정되고 최저임금이 아니라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직장을 구하기도 이 나라 청년에게는 어렵다. 실업만이 아니다. 취업한 청년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이거나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수준의 보수를 지급받는다. 뭐 비교적 높은 임금의 정규직이라도 법정근로시간이 법이 정한 대로 지켜지지 않으니 ‘칼퇴근’, ‘저녁이 있는 삶’은 꿈일 뿐이다.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근로가 이 나라의 취업 노동자의 숙명이다. 분명히 근로기준법은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하면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건만(제110조제1호·제50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장 노동시간의 나라였고, 지금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수준 노동시간의 나라인데도 이 나라 권력에겐 법정근로시간은 집행해야 할 법이 아니다. 노동부에게 근로기준법 제50조의 법정근로시간은 법이 정한 최장의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단체협약이든 취업규칙이든 뭐든 당사자 간 합의가 있기만 하면 이를 1주간에 12시간 연장해 근로할 수 있고, 거기다 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주 5일제 사업장에서는 휴일근로로 토요일·일요일 근로까지 16시간 더 근로자를 근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니 도대체가 권력에겐 이 나라는 법정근로시간의 노동제는 없다.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한 장시간 근로의 굴레를 노동자는 법으로는 벗어날 수가 없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는 법은 법일 뿐이고 법 위반의 현실은 엄연한 현실이다. 사업장에서 자신을 대표할 자도 없다. 기껏해야 사용자 앞에서 무기력한 노동조합이 있거나 그마저도 없는 게 태반이다. 그러니 노사협의회로 노동자권리를 삭감하기 일쑤다. 아무리 ‘노오력’한다고 해도 이런 노동자의 운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신의 근속과 나이는 노동자를 배신하기 일쑤다. 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할 수 없다고, 사용자의 사정이 어려워도 긴박한 경영상 필요 등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정리해고할 수 없다고 해고를 제한하고 있지만(근로기준법 제23조·제24조) 해고를 협박하는 사용자 앞에 희망퇴직·명예퇴직 등으로 정년을 채우기도 훨씬 전에 사업장에서 쫓겨나야 한다. 기간의 정함이 없이 근로한다는 정규직에게는 정년을 보장한다며 임금피크제니 뭐니 임금을 삭감하는 걸 감수하도록 하고서도 이 나라 노동자에게 정년은 언젠가 올 내일이 아니라 꿈이다. 그리고 노년, 이 나라에선 빈곤이라 말한다.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업해 봐야 비정규직이고, 그야말로 최저임금이 고작이다.

이렇게 청년은 실업, 장년은 장시간 근로에 정년은 꿈이고, 노년은 빈곤이다. 그러니 이 나라는 세대가 다르다고 차별대우도 없다. 비정규직과 저임금이 늙은 노동자라고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취업 조건이다. 그런데 헬조선은 유독 청년에게서 나오고 있다. 장년·노년 노동자는 이 나라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인가.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불안해도, 최저임금을 겨우 웃도는 저임금에도 지옥의 나라라는 비난의 말도 없다. 오히려 비정규직에 저임금이라도 사용자들이 맘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노동개혁 입법이 그들의 고용대책이다. 그래도 누구도, 그들 자신까지도 심각하게 비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정년에 다다른 노동자는 임금을 삭감해야 한다고 정부가 앞장서 사업장마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지원해 왔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아니라고 노동부는 지침을 마련해서 발표하겠다고 밀어붙이고 있다. 고용과 임금이 경직돼 있다고 완화해야 한다고 정부는 노동개혁을 추진해 왔다. 정규직의 고용보장과 고임금이 문제라고 노동개혁을 추진해 왔다.

4. 법이 선언한 노동자권리는 세대를 모른다. 특별히 고령자를 보호하겠다는 법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비정규직의 사용 기간과 대상을 확대하면 청년의 비정규직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면 결국 청년노동자도 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헬조선은 노동자의 고용과 임금에 관한 권리가 낮은 나라를 말한다. 최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없다고 청년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이라서 차별하는 나라였다면 나이를 먹으면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 테니 ‘시간이 금’이라며 참아 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대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들은 이 나라를 지옥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에게만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절망인 나라라서 이 나라는 헬조선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권력은 노동자의 희망의 빛조차 꺼 버리겠다고 오늘 노동개혁을 말하고 있다. 영원히 헬조선이면 지옥에서 벗어날 희망조차 품지 않을 거라고 보고 있는 것인가. 사용기간을 연장하고 사용대상 업종을 늘려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비정규직 관련법, 저성과자를 해고할 수 있다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 임금을 삭감할 수 있다는 임금피크제 지침을 두고서 이 나라는 청년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헬조선, 비정규직에 저임금에 장시간 근로의 나라를 두고서 하는 청년의 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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