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예상과는 달리 노사정 합의와 관련한 내용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통상 보게 되는 담화와는 달랐다. 국회 통과를 원하는 법률과 그 취지까지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연이어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한국노총이 노사정 합의를 파기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안타까움과 아쉬움은 여전하다. 먼저 노사정 합의 내용이 무엇이며 누가 합의를 위반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어 보였다. 노사정 합의문 어디에도 새누리당과 정부가 일방적으로 입법 발의하더라도 노사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없다. 국회에 상정된 노동 5법은 노사 어느 쪽도 동의해 준 적이 없다. 내용 면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기간제 노동자 사용기간을 연장하거나 파견노동자 사용을 확대하는 내용의 합의는 노사정 합의문 어디에도 없다.

합의 당사자인 정부의 위반 행태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달 고용노동부는 노사 의견도 구하지 않고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초안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개정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의견수렴 과정”이라고 변명하지만 현장 모든 노동자들은 정부 발표대로 저성과자 해고제도가 도입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사용자 뜻에 따라 이뤄질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담화문과 기자회견 답변을 봐서는 대통령이 이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이러한 인식을 보이는 원인이 대통령에게 있을까. 정부와 청와대가 그동안 진행된 노사정 합의와 현재 파탄에 이른 상황을 왜곡해 보고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부의 직무유기다.

청년노동자들의 고용 문제 해소를 위한 방안도 노동현장 요구와 커다란 격차가 있다. 조직화된 노조를 기득권으로 보고 청년노동자들의 신규고용을 가로막고 있다고 봤다. 공무원노조를 포함해도 10%도 되지 않는 조직률에다, 담화문에서 밝혔듯이 지난해 정부 산하 모든 공공기관과 상당수 대기업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오히려 “기득권을 지키는 노조”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누리고 있는 기득권이 무엇인지 먼저 공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 아닐까.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을 각각 "비정규직 고용안정법"과 "중장년 일자리법"이라 이름 짓는 것은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비정규 노동자 사용을 늘리는 법에 '고용안정'과 '일자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색하지 않는가.

담화문에서 밝힌 대책으로는 청년노동자 일자리 늘리기라는 원래 목적에 걸맞은 '노동개혁'을 이룰 수 없다. 이제라도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솔직히 현재와 같은 정부 태도로는 담화문에서 공언한 나머지 노사정 합의 사항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다. 정부 정책이 노동자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노동자를 위한 정부가 사라진 지 오래되지 않았나. 중앙 단위에서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있는 법이라도 제대로 지켜 노동자 보호를 위한 노동행정을 충실히 쌓아야 한다. 건강한 몸이 큰 수술을 견디는 법이다.

최근 대구지검이 보여 주는 일련의 노동관계법 집행은 이런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상습적인 노동관계법 위반 사업자를 구속기소하는 등 엄히 처벌해 해당 지역 노동자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른바 어용노조를 만들어 기존 노동조합의 활동을 무력화하고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것은 물론 이와 같은 불법을 자신의 사업장에 그치지 않고 동종업계 사용자에게도 부당노동행위를 종용한 대구시내 한 택시회사 사용자를 1년이 넘는 수사를 거쳐 구속했다. 이에 앞서 청소년 임금 5천400여만원을 체불한 PC방 업주를 근로기준법·최저임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노동관계법 위반은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매우 심각한 범죄임에도 법 집행은 솜방망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런 법 집행 현실에서 노동자들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고 따르겠는가. 현재 있는 제도만이라도 제대로 집행하라. 그것이 노동개혁이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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