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2013년에 발표된 세계은행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 12억명 이상이 아직도 전기 없는 삶을 살고 있고, 28억명이 여전히 조리에 필요한 연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주로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저개발국가에 해당하는 국가적·사회적 차원의 에너지 빈곤 문제다. 이러한 에너지 빈곤 문제는 제3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개도국이나 선진국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연료) 빈곤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영국에서는 적정 냉·난방온도(겨울 18도, 여름 21도)를 유지하기 위해 소득의 10% 이상을 지출하는 가계를 에너지 빈곤 가구로 정의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영국 정부의 공식통계에 의하면 전체 가구의 10.4%에 해당하는 235만가구가 에너지 빈곤가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2012년 겨울에 사망한 3만여명의 영국인 가운데 30~50% 정도가 에너지 빈곤에 의한 것이라고 보도할 만큼 이 문제는 심각하다.

그런데 이 에너지 빈곤 문제가 선진국인 영국에서 국가적·사회적 문제로 심화된 원인은 무엇일까. 2013년 당시 전력노조 위원장이었던 필자는 무분별한 민자발전 확대가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며 국제적인 경험을 공유하고자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공동으로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당시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 전문가로 참석한 영국 하트퍼드셔대학의 훌야 다그데위렌 교수는 영국의 전력산업 민영화 이후 민간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축소되면서 안정적인 에너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전력을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년층의 연료비 부담이 늘어나 ‘연료 빈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민간기업의 수익이 이들에게 돌아가지 않아, 결국 납세자들의 세금으로 지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영화 결과에 대해 ‘민간기업의 이윤추구’에 의한 ‘에너지 빈곤(Energy poverty)’의 지속적 확대로 정리한 것이다. 즉 공공성을 도외시한 민간기업의 이윤추구행동이 국민의 에너지 빈곤을 초래하면서 국민 기본권(생존권)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전력산업 민영화 이후 2002년부터 2013년까지 물가는 27% 상승했지만 전기요금은 무려 137% 이상 상승했다. 효율과 소비자선택권을 빙자한 민영화 정책은 결과적으로 민영화된 전력회사가 폭리를 취하게 했고, 아울러 전력 다소비 기업들도 전력회사와의 교섭력을 이용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반면 전력회사 노동자들은 대량으로 해고됐고 대다수 국민들은 높은 전기요금을 부담하면서도 에너지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심지어 가난한 집에 대해서는 선불계량기(Pre-payment meter)를 통해 전기를 공급함으로써 돈이 없으면 전기 사용조차 못하게 했던 것이다.

에너지 빈곤의 문제는 비단 영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영국에 이어 전력자유화를 가장 광범위하게 추진했던 미국에서도 전체 가구의 15% 정도가 에너지 빈곤가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특히 민영화와 시장경쟁에 기반한 정책들이 에너지 빈곤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데, 미국의 전기회사인 콤에드(ComEd)의 통계에 따르면 실시간 전기요금 정책이 전체적으로 전기요금을 상승시켜서 가난한 사람들의 전기 사용을 줄이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에너지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때문에 에너지는 기본권이며 인권이다. 그럼에도 ‘시장경쟁의 효율’을 내세우며 공공의 자산을 민영화함으로써 국민들의 에너지 사용 권리를 사실상 박탈해 온 결과가 바로 에너지 빈곤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은 민간 발전사의 진입과 발전부문의 경쟁체제 만으로도 전기요금의 변동성을 크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만약 전력산업 전체를 민영화했다면, 나아가 민영화하게 된다면 영국을 비롯한 전력산업 민영화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빈곤 문제가 우리에게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약 160만가구 정도가 에너지 빈곤 문제에 직면해 있고, 정부 또한 이 문제를 정책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에너지 바우처 제도 도입을 비롯한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인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 산업의 공공적 소유와 경영, 그리고 국민의 에너지 기본권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해답일 것이다. 그것이 영국을 비롯한 전력산업 민영화를 추진한 국가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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