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9·15 노사정 합의 파탄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2014년 9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협상 시작 후 1년4개월 동안 노사정은 핵심 쟁점인 비정규직과 일반해고·취업규칙 문제에서 한 번도 합의점을 찾은 적이 없었다. 결국 이 문제에 관한 노사정 의견 차이가 노사정 합의문마저 휴지 조각이 되게 했다.

◇31차례 합의위반 경고, 정부·여당 외면=한국노총은 11일 노사정 합의가 파탄났음을 확인하면서 그 이유로 정부·여당의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 추진과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 발표를 꼽았다. 한국노총은 “정부·여당이 노사정 합의를 위반하고 노동법·노동정책 개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이미 합의가 깨진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노사정이 지난해 9월 노동시장 구조개선 합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비정규직 문제와 2대 지침 사안 모두를 후속 과제로 밀어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두 사안에 대한 합의 없이 노사정 합의를 한 셈이다.

균열은 곧바로 일었다. 새누리당은 노사정 대표자들이 합의문에 서명한 이튿날인 지난해 9월16일 기간제 및 단기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을 포함한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당론 발의했다.

한국노총은 당일 성명을 내고 “정부·여당이 내놓은 법안은 비정규직 확산법으로 합의 내용과 전혀 다르다”며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를 파기한 행위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해 11월30일부터 이달 8일까지 국회 정문 앞에서 28회에 걸쳐 ‘노사정 합의 위반, 노동법 개악 시도 중단’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0일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일반해고 가이드북)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 개정안(취업규칙 지침) 내용을 공개한 것은 노사정 합의 파기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청년실업 해결과 비정규직 감축이라는 대의를 위해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했으나 정부·여당이 오히려 합의 정신을 어겼다”며 “지난 4개월 동안 합의 위반을 줄곧 지적하고 합의가 깨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으나 정부·여당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급기야 두 지침까지 일방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극한으로 치닫는 노정 갈등=한국노총은 합의가 파탄났음을 확인했음에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탈퇴를 포함한 구체적인 투쟁계획은 1주일 뒤인 이달 19일 김동만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하기로 했다. 한국노총 한 중집위원은 “파탄났음을 확인했다는 것은 사실상 합의가 파기됐다는 의미”라며 “공식 발표를 1주일 미룬 것은 정부에 마지막 태도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여당의 입장 변화가 없을 경우 한국노총은 노동법 개악 저지와 반노동자 정권·정당 심판 투쟁에 나선다. 이달 중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거나 지역별 새누리당사 앞 항의집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다음달 24일 열릴 대의원대회에서 4월 총선 반노동자 정당 심판 투쟁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노동부는 “노사정 합의는 국민과의 약속으로서 어느 한 주체가 파기할 수 없다”며 “노사정 합의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면서 노동개혁 5대 법안 입법과 2대 지침 시행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정부는 양대 노총 외에 다른 노동조직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2대 지침 시행 명분을 쌓아 나갈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동계와 충분히 협의한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양대 노총뿐만 아니라 여기에 속해 있지 않은 중간노조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의견도 소중히 경청하겠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