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달 24일 경향신문이 한국노동법학회의 협조를 얻어 실시한 정부 노동법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전국 법학전문대학원·법학과 등에서 노동법을 강의하는 교수 62명 중에서 33명이 답한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몇 가지 점에서 매우 놀라웠다.

우선 정부 안대로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할 경우 “대다수 근로자가 기간제 근로자로 고착화돼 기존 정규직 일자리마저 기간제로 대체될 것”이라는 응답이 70%를 차지했다. 지난해 말 공개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이른바 ‘전문가그룹’은 “당사자의 의사가 명백할 경우 예외적으로 사용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라고 했으나, 사용기간 연장에 찬성하는 노동법 교수는 9%에 불과했다.

사실 기간제 사용기간에 관한 설문조사는 조사를 기획하는 곳에서 질문을 어떻게 던지는가에 따라 정반대 결과가 나오게 돼 있다. 지난해 말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공익위원인 금재호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가 한국노동경제학회의 이름을 빌려 발표했다가 물의를 빚은 ‘기간제 근로에 대한 인식조사’에서는 “기간제 근로자로 2년 근무 후 근로자 본인이 원할 경우에는 최대 2년까지 같은 직장에서 더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방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고 기간제 노동자의 70% 이상이 이에 찬성했다고 발표했다.

말하자면 금재호 교수의 설문조사는 ‘현행법상 기간제 노동자를 2년 이상 사용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지만,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으면 계약만료로 실직한다’는 점을 전제로 두고서 “계약만료로 인한 실직과 계약기간 연장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를 질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규직 전환과 계약만료 통보, 그리고 계약기간 연장 모두 사용자의 일방적 결정에 달려 있는 현실에서, 기간제 노동자가 실직을 피하기 위해 계약기간 연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굳이 설문조사를 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노동법학회는 설문조사에서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이 ‘상시·지속적 업무에 정규직 고용’ 원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리라 예상하는가를 질문했다. 즉 기간제 근로계약 체결과 계약기간 만료 통보, 재계약 여부를 사용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기간이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되는 것이 노동법의 해고보호 원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노동법 교수들에게 질문한 것이다.

이 지면을 통해서도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주장이 감추고 있는 핵심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해고를 당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기간을 연장하는 데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은 근로계약서에 계약기간이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해고(계약해지)당할 수 있다. 이렇게 해고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통계청 통계로만 봐도 전체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정부가 공개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 안에 따르면 업무능력 결여, 근무성적 부진을 이유로 정규직 노동자라 하더라도 손쉽게 해고할 수 있게 된다. 직무능력과 성과를 평가하는 것도 사용자의 일방적 권한에 속하는 것이 현실이니 결국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등을 하지 못한다”는 노동법의 원칙이 적용되는 노동자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노동법에서 해고로부터의 보호 원칙이 무너진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용자가 생사여탈권을 쥔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 아니 그 이상의 불법과 모욕과 학대마저도 감내하려 들 수밖에 없다. 노동법이 정한 근로조건도, 노조로 단결해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싸울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 그렇게 간도 쓸개도, 감정도 영혼도 다 없애 버려도 돌아오는 것은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없거나 직무능력과 성과가 부족해서 잘린 무능한 내 탓이 돼 버린다. 지금 노동개악법이 노리는 것은 인간다운 노동의 권리 그 자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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