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예상은 했지만 내용이 아주 엉망이다. 법과 판례를 자의적으로 늘어놓은 개설서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가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발표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 인력운영 가이드북'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 개정안' 말이다.

노동부는 지난 29일 저녁 보도자료를 통해 관련 내용을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전문가 의견수렴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앞으로 시행할 ‘지침’을 일방적으로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공청회’ 혹은 ‘의견수렴 절차’를 내걸었지만 정작 그 자리에는 직접적인 이해관계 당사자인 노사는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전문가’가 과연 누구인지, 어떤 의견이 수렴됐는지 알 길이 없다. 행정공개의 원칙을 지키고 무엇보다 노동현장의 관심을 생각한다면 이번 의견수렴 절차는 그 자체로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당사자를 무시하는 노동부의 고자세는 우리 통치체제의 후진성 탓이 크다.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행정부가 여타 국가기관에 비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입법이나 사법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행정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균형이 이뤄질 때에나 오늘과 같은 촌극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위법한 행정에 대해 국회는 입법으로, 법원은 판결로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 상식이 될 날을 기다릴 뿐이다.

이번 지침을 두고 “지침은 노동부 내 노동행정 집행을 위한 규정일 뿐 대외적인 효력이 없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매뉴얼(통상임금·타임오프·복수노조)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각종 제도가 노동현장에서는 헌법이나 법률보다 위에 있었고 법원의 판결보다 우선하지 않았나.

노동부가 공개한 지침은 9·15 노사정 합의 위반이다. 합의문에는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히 협의를 거친다”고 명시돼 있다.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고 발표하는 지침은 그 자체로 합의 위반인 것이다.

보도자료에서 드러난 지침 내용은 관련 법률에 반하고, 인용된 판례 또한 지극히 자의적이다. 근로기준법을 포함한 그 어떤 법률에도 ‘통상해고’는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행정부(노동부)가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통상해고를 언급하는 자체가 위법이다. 지침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이 인용한 이른바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사례(판례)는 근기법에서 정한 징계해고의 예일 뿐이다.

취업규칙 지침에 대한 부분은 문제가 훨씬 크다. 근기법(제94조)에서는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기 위해서는 집단적 동의를 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요건은 그 어디에도 없다. 판례가 간혹 차용한 법리다. 최근에는 이러한 법리를 적용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을 유효하다고 판단한 사건을 찾기도 쉽지 않다. 법률 문언에 반하고 극히 일부 예외인 법리를 일반적인 법원인 양 설명하는 것은 난센스 중의 난센스다.

소문에 따르면 노동부는 내년 1월 중 지침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장의 혼란을 상상해 보라. 많은 사용자는 노동부 행정지도를 믿고 신뢰할 것이다. 아니 사용자를 상대로 노동부가 지침을 따르라며 지도(사용자 입장에서는 강요라고 받아들일 것이다)할 것이다.

바라건대 그런 상황이 닥치더라도 노동부 지도를 따르지 않기를 조언한다. 아직도 진행 중인 통상임금 사건들을 보라. 따지고 보면 사용자들은 노동부 지도·지침을 따른 잘못밖에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혼란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사용자 혼자 감당하고 있지 않는가.

2015년을 보내는 마지막날이다. 모든 것이, 특히 노동행정이 제자리로 돌아오길 희망한다. 병신년에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부로 거듭나길 기도한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