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을씨년스럽다. 예수 탄생일(크리스마스)이 얼마 남지 않은 이맘때에는 거리엔 캐럴이 흘러나오면서 들뜨는데 그렇지 않다. 거리엔 사람이 줄었고, 분위기는 착 가라앉은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경제성장률은 2%대로 꺾인 데다 가계대출은 1천200조원으로 폭증했다는 우울한 소식만 들리기 때문이다. 지갑이 얇아지고, 빚만 늘어나니 국민들이 움츠러드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어려워진 경제사정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경제주체들의 심리상태에 따라 소비가 좌우된다고 하는데 들리는 얘기는 죄다 ‘위기’니 ‘비상사태’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연일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쟁점법안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압박하기 위해 거친 말들을 쏟아 내고 있다.

박 대통령과 정부가 경제위기라고 규정하니 대규모 감원에 나선 기업들은 거리낌이 없다. 최근 두산인프라코어는 23세의 신입사원까지 희망퇴직을 종용했다고 한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약 3천명을 감원한다는 목표 아래 희망퇴직을 추진하고 있다. 신입사원까지 감원대상에 포함시켜 구조조정을 추진하니 여론은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신입사원을 희망퇴직에서 배제했다고 발표했지만 파문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에서 부는 감원 칼바람은 옷깃을 아무리 여미어도 산업계 전반으로 파고들고 있다. 여기에는 흑자경영 상태의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미명 아래 정리해고가 횡행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에 대한 체감온도가 낮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대규모 감원 칼바람 탓에 움츠러든 노동자·서민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대안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16일 경제장관회의에서 확정한 내년 경제정책방향은 그야말로 희망고문에 불과했다. 적어도 구조조정과 해고의 위기에 처한 노동자에게 정부 대책은 ‘썩은 동아줄’에 불과했다. 정부가 발표한 ‘경영상 해고절차’와 관련된 것이 대표적이다.

근로기준법 24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해고를 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이 규정을 구체화했다. 사용자의 해고회피 노력 사항은 근로시간단축·업무조정·전환배치·휴직·전직 지원훈련으로 명문화한 것이다. 해고를 통지하거나 재고용 사유 발생 시 서면통지도 의무화하기로 했다. 정부가 경영상 해고시 사용자의 회피노력을 구체화한 것은 바람직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과 노사정 합의사항을 이행한 것을 고려할 때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정작 중요한 사항은 빼먹었다. 게다가 최악의 부대조건을 달았다. 경영상 해고의 전제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의 요건은 구체화하지 않았고, 구조조정 실시여부는 단체교섭과 쟁의행위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간 긴박한 경영의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 보니, 기업은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일쑤였다. 하이디스테크놀로지의 경우 지난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으나 올해 들어 생산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공장을 폐쇄했고,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로 생산인력을 정리했다. 하이디스가 보유한 기술사용료를 모회사인 대만 이잉크사로 가져가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유명 악기회사인 콜텍의 경우 흑자상태임에도 미래의 경영상 위기가 예상된다며 정리해고가 정당화되기도 했다. 정리해고 요건을 폭넓게 인정해 준 법원의 보수적 판결 탓이다.

지금은 괜찮은데 앞으로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정리해고를 인정한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겠는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정리해고 사업장과 대상인원이 줄었다는 분석이다.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에서 강행된 정리해고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격화돼 기업주들이 이를 회피하려 한 탓이다. 대신 기업들이 선택한 방안은 희망퇴직이다. 그런데 구조조정 실시여부에 대한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을 봉쇄한다면 기업주의 전횡만 폭주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피해만 속출할 수 있다. 흑자기업의 정리해고를 막으려면 노조의 교섭권과 쟁의권은 반드시 유지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생존권을 위협하는 정리해고는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리해고 요건을 합리화하고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정리해고 요건 강화는 제대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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