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선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제주지역본부 법률원 준비위원회)

대학 새내기 시절 선배들의 손을 잡고 처음 구로공단에 갔다. 그때까지 서울에 살면서 구로공단역(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뀌었다)에서 내려 본 적도 없었던 나는 꽤 많이 긴장했던 것 같다.

내가 간 사업장은 구로공단에 위치한 금속사업장이었는데 두 사업장이 임금·단체협상 공동투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업장 중 한 사업장은 2015년 현재까지도 투쟁 중이다. 바로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 이야기다.

전국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하이텍알씨디코리아분회는 1988년 노동조합을 세우고 90년 전노협 출범을 함께한 구로지역에 하나 남은 전노협 사업장이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는 모형 비행기 리모컨을 생산하는 사업장으로 대부분 여성노동자로 이뤄져 있다. 회사는 96년 필리핀에 해외공장을 설립하면서 국내 생산직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를 추진해 왔다. 97년 이후 신규채용을 전혀 하지 않았고 98년부터 매년 흑자를 낼 정도로 성장했음에도 회사는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이 과정에서 68명이던 조합원은 46명으로 줄었다. 노조탄압이 계속되면서 정리해고 투쟁을 시작한 2002년 조합원 13명이었던 분회는 현재 7명의 노동자가 남아 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월드컵의 열기로 온 나라가 들떠 있었던 2002년 분회는 단식투쟁과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회사는 돈이 수억원이 들더라도 반드시 노동조합을 없애겠다고 하면서 조합원 감시용 CCTV 설치, 직장폐쇄, 용역 고용, 무기한 휴업, 부당해고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노조를 탄압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생소했던 ‘노무사’가 회사의 노조탄압을 조언해 주고 있었다(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노무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게 된 계기다).

분회와 조합원들은 수차례 단식농성을 비롯해 2005년 CCTV 등 감시장비로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는 회사에 맞서 집단정신질환 산재신청과 근로복지공단 농성투쟁, 2008년 한강시민공원 송전탑 고공농성과 오창 본사 앞 농성투쟁을 진행했다.

내가 대학 3학년에 시작된 하이텍 투쟁은 대학을 졸업하고 노무사로 합격한 후에도 계속됐고, 졸업 후 이 핑계 저 핑계로 투쟁에 함께하지 않은 채 간간이 들려오는 투쟁 소식을 접하다가 2011년 드디어 조합원들의 원직복직과 임단협이 체결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됐다.

투쟁 10년 만의 일이다.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없어지지 않았지만 다행이라 생각했다. 분회 조합원들이 일상의 행복을 느끼시길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2014년 회사는 아예 조합원들이 근무하는 구로공장 부지를 매각한 뒤 생산공장을 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실제 2015년 9월 회사는 구로공장 부지를 매각했다. 분회 조합원들에게는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라고 지시했다.

2007년 새로운 회사를 만들어 비조합원들을 전적시키고 1년 후 전원 정리해고를 했던 전력이 있는 회사의 지시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분회는 다시금 공장 내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그러자 회사는 분회에 2015년 12월10일자로 구로공장에서 나가라고 통보했다. 분회는 이를 거절했다. 분회장과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장은 구로공장 옥상 위에 철탑을 세우고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노조를 지키고 평생 일한 일터를 지키는 매우 정당하고 타당한 일들이 왜 노동자 건강을 해치고 목숨을 걸면서밖에 할 수 없는지 나는 아직 충분히 이해하고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번 하이텍 투쟁이 지난 10년의 투쟁처럼 길고 지난한 투쟁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고 있다. 하이텍 노동자들이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몸은 멀리 있지만 온 마음을 다해 고공농성 중인 두 분이 건강히 땅을 밟게 되시기를 바란다. 민주노조와 생존권을 지키는 하이텍 투쟁의 승리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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