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경제와 노동의 만남

경기회복의 조짐이 감지된다고는 하지만 한국경제의 중장기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유사이래 가장 폭넓고 심도깊은 세계화의 물살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는데도 한국경제는 이에 호흡을 맞출 정도로 체질개선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방파제를 허용하지 않는 세계화의 파고는 여과없이 한국경제를 강타하고있다. 미국 주식시장의 부침에 작게 웃고 크게 우는 국내 주식시장을 보듯, 대외교란요인은 앞으로도 계속 한국경제를 압박할 것이 틀림없다.

한국경제의 전도에 불확실성을 던져주고 있는 것은 비단 대외적 변수만은 아니다. 물론 외적 요인과도 관련되어 있지만, 대내적 불안요인은 여전히 산재해있다. 여기에는 그 동안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도 있지만 그`때문에' 증폭되고 있는 것도 있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까다로운 문제인데, 후자 가운데서도 노사관계를 제쳐놓은 듯한 노정관계의 불안정 내지는 불안요인에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하여 경제와 노동이 만나기보다는 어긋나고있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본디 경제는 노동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경제와 노동이 `딴 나라'처럼 비쳐지고 있다. 게다가 `경제 살리기'는 곧 `노동 죽이기'이고 `노동 살리기'는 곧 `경제 망치기'인 양, 적대관계로까지 인식하는`근원적인' 잘못이 도그마가 되어 횡행하고 있다. 물론 이 도그마에 출생의 연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 동안의 구조조정이 경제의 활로를 열기 위한 것이라며 노동을 배제해 온 데에 그 원인이 있다. 이에 노동이 반발하고 이것이 경제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경제와 노동이 점점 더 어긋나게 된것이다.

오늘의 현실은 바로 이 연장선상에 있다. 정부는 구조조정의 지속적 추진을 통한 `경제 살리기'를 연일 강조하고 있는데 반해 노동계는 이제 `구조조정저지'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이에서 더 나아가, 노동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경제 살리기'는 곧 `노동자 죽이기'라며 정권퇴진으로까지 수위를 높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또 그 일각에서는 단식투쟁을 통해 대통령과 담판을 요구하는 등, 후진적이면서도 과도한 정치화 현상이 우리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정치판을 빼닮은`너 죽고 나 살기'가 “혼자 죽을 수는 없다”로 악화되어, 결국 `같이 죽기'의 외길로 몰리게 될 위험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하기 힘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파고 앞에서 이는 결코 기우가 아니며 한가한 상상은 더더욱 아니다. 경제와 노동의 가당찮은 적대관계를 해소하여 그 어긋남을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와 노동의 만남을 일상화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 따로, 노동 따로'가 아닌 `경제와 노동이 함께하는' 각급의 회의체를 구성·운영하는 것이 그 기초가 될 수 있다. 우선 정부의노동부처가 경제부처를 뒤치닥거리하는 데서 탈피하여 처음부터 같이하는 구도로전환이 필요하다. 경제부처는 재계와 협의하고 노동부처는 노동계와 협의하는`따로'로 끝낼 것이 아니라 이 모두가 `함께' 하는 협의를 통해 의미있는 경제와노동의 만남을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최근에 가진 여·야·정경제협의를 노동부문으로까지 확대하여 함께 하는 회의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서 더 나아가, 헌법기관인 국민경제자문회의를 경제와 노동이 만나는 최고의 기구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노사정위원회가 실질화되는 효과도 충분히 기대된다. 경제와 노동의 `과도한 정치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이는 진지하게 고려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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