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환 공인노무사(한국민주제약노조 정책실장)

올해 4월부터 한국민주제약노조라는 소산별노조에서 정책실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책실장에게 맡겨지는 여러 업무 중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은 각 지부 단체교섭에 참여하는 일이다. 사용자단체가 구성돼 있지 않아 대각선교섭으로 단체교섭을 진행하다 보니 지부별로 매번 다른 사측 교섭위원을 상대하게 된다. 그런데 교섭이 진행될수록 각기 다른 사측 교섭위원들이 공통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으로 느꼈던 것은 그들이 평등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합원은 조합비 납부부터 각종 노조활동에 대한 참여까지 물질적·정신적 희생을 통해 노조를 강화시켜 나가고, 노조는 이러한 조합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교섭력을 높여 조합원 근로조건에 관한 부분부터 노조에 관한 부분까지 다양한 내용의 단체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따라서 단체협약의 내용은 당연히 조합원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체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사측 교섭위원들)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평등을 주장하며 노조 요구를 마치 조합원과 비조합원 간에 차별을 조장하는 것처럼 매도한다. 평등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와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운 자 사이에는 당연히 차이가 존재한다. 그 차이는 차별이 아닌 정당한 노력의 대가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희생하고 싸운다는 사실은 외면한 채 실질적 평등이 아닌 형식적인 평등만을 강조하며 노동자 간 갈등을 조장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와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하는 자 사이에는 실질적인 평등이 주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깨우쳐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그들이 노동자 권리에 대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조 요구를 수용해 단협을 체결하면 자신들이 양보와 선의로 노조에 큰 혜택을 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조의 주된 요구안을 살펴보면 노동자 권리와 인권을 되찾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특히 헬조선이라고 지칭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안정이라는 일자리 보장조차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만큼 노조 요구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 확보에 주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얼마 전 교섭이 진행 중이던 한 지부에 신임 사장이 부임했다. 신임 사장이 유럽인이라는 소식을 듣고 ‘국내와는 달리 정규교육 과정에서 노동에 관해 배웠던 사람이니 말이 어느 정도 통하고 교섭이 원활히 진행되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하지만 교섭을 마치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배운 놈도 똑같네. 아니, 배운 놈이 더한다’였다. 인종차별 소지가 있는 발언은 차치하더라도 그는 노동자 권리를 거래 수단으로만 바라봤고 노동자를 하나의 소모품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천민자본주의적인 생각으로 노동자들을 기계같이 취급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올바로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노조 요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며, 직원들은 기계와 같은 소모품이 아닌 인간이라는 것을 깨우쳐야 한다.

세 번째는 노조에 대한 인식이 매우 형편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새롭게 조직된 지부가 속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흡수합병했다. 다행히 해당 회사에는 30년 정도 된 노조가 조직돼 있었고, 국내 법인은 다르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연대투쟁할 수 있는 노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러한 연대투쟁을 우려했는지 “30년 된 노조는 그동안 많은 투쟁을 거치면서 다양한 권리를 적립해 왔기 때문에 신생노조인 우리 지부에게는 그들과 같은 혜택을 줄 수 없다”는 주장을 하면서 노노 간 불화를 조장했다.

물론 새롭게 조직된 노조가 30년 된 노조의 경험과 조직력·단결력 등을 한순간에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30년 전에 비해 지금 세상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다. 현 정권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비롯해 유신시대로 회귀하는 모습들로 인해 과거보다 현재가 더 어렵다는 말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건 노동운동 선배들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인해 우리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의식은 현저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높은 의식을 지닌 노동자들이 단결한다면 신생노조가 30년 된 노조의 조직력과 단결력 등을 따라잡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고, 동일한 수준의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못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는 착취당하고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노조 활동기간을 운운하며 노노 간 갈등을 조장하는 그들의 행위는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인식이 매우 형편없다는 방증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착각에서 벗어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주체적인 의식 수준과 헬조선을 살아가고 있는 노동자들의 삶이 어떠한지 냉철히 파악해야 한다.

이외에도 교섭 과정에서 그들의 수많은 착각을 볼 때마다 분노와 억울함이 치솟는다. 가슴 한편에서는 우리와 같이 한낱 월급쟁이에 불과함에도 현실을 올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그들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가장 큰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바로 그들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헛된 착각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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