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노동 5대 법안을 임시국회에서 합의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정부·여당의 목표였던 정기국회 처리는 불발에 그쳤지만 이후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그런 가운데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에 서명했던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3일로 나흘째 1인 시위 중이다.“노사정 합의 위반”이라고 외치며 정부·여당의 노동법 입법시도를 비판하고 있다. 반면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일부 산별연맹은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노총에 협조를 요구했다. 한국노총 중앙과 산별조직들은 정부·여당의 노동법 개정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노동입법은 무엇일까.


합의한 것은 합의한 대로, 하지 않은 것은 하지 않은 대로

▲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노동개혁과 입법은 필요하다. 그러나 노사정 합의정신에 따라 비정규직 규모 축소와 차별 해소를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 노사정은 이를 위해 상시지속·생명안전 업무 정규직 고용에 합의했다. 합의는 지켜야 한다.

반면 기간제 사용기간 4년 확대나 용접·금형·열처리 같은 뿌리산업 파견 허용은 합의되지 않았다. 일부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내용을 마치 한국노총이 합의한 것처럼 선전하는 정부·여당의 태도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다른 노동·시민단체에도 한국노총이 합의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 5대 법안은 폐기해야 한다. 비정규직 관련법뿐만 아니라 휴일·연장근로 가산수당 중복지급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고용보험 수급요건을 까다롭게 만든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한국노총 요구는 단순하다. 노사정이 합의한 것은 합의한 대로 입법하고, 합의하지 않은 것은 입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게 노사정 합의정신을 지키는 일이자, 올바른 노동시장 구조개선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노사정 합의정신을 훼손하고 노동시장을 개악하려 하고 있다. 더 이상 한국노총과 국민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은 당장 법안을 폐기해야 하고, 국회는 노사정 합의정신에 따라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줄이고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정부·여당이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입법 강행한다면 파국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건 없다

▲ 류근중 자동차노련 위원장

우리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통해 안전한 노동이 왜 필요한지 처절하게 깨달았다. 하지만 1년6개월이 넘은 지금도 현실은 변하지 않은 채 제자리걸음이다.

우리는 국회에 묻고 싶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안전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제한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생명·안전 업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비정규직 버스운전기사라는 시한폭탄이 거리를, 그것도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돌아다니고 있다. 또다시 대형참사의 아픔을 겪어야 하겠는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양 당이 각각 발의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에는 생명·안전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법안에 담긴 다른 내용이 문제라면 그건 국회에서 협의·개정해야 할 과제다.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하는 건 없다. 생명·안전 업무 비정규직 사용금지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법 개정으로 조속히 이어 가야 한다.

노사정 합의 파기 선언, 더는 주저 말아야

▲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

정부는 한국노총이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 서명했다며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그 합의는 청와대와 정부의 갖은 협박과 압박을 통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자체로 문제가 많다.

현재 양대 노총 제조부문 노동자들은 공동투쟁본부를 꾸려 한국노총에 합의 파기 선언을 촉구하면서 노동개악 입법저지 투쟁을 펼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입법을 강행한다면 제조노동자들은 총파업에 나설 각오까지 하고 있다.

아울러 한국노총에 파기 선언을 요구하고자 한국노총 소속 현장대표자들이 연석회의 모임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약속을 수없이 깨고 있는데 더는 주저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노총은 조속히 합의파기를 선언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이 없는 사회에서 불안정 고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의 노동 5대 법안은 여전히 기업 편향적이다. 비정규직 관련법도 거꾸로 가고 있다. 중요한 건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리는 게 아니라 이들을 최대한 짧은 기간 안에 좋은 일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정말 필요한 입법은 노동개악법이 아니라 경제민주화의 기본과제인 원·하청 불공정거래 근절법이다. 원청과 협력사 간 이익공유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갑의 횡포로 중소기업이 몰락하고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사내하청으로 내몰리는 구조적 문제를 체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노동자·서민을 위한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입법저지 투쟁뿐 아니라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 낙선운동으로 심판에 나설 것이다.

노동 5대 법안은 노사정 합의정신에 어긋나

▲ 김주영 공공노련 위원장

한국노총이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하면서 노동계 안팎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럼에도 합의했던 것은 비정규직 규모 축소와 차별 해소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려던 각종 정책을 노동계와 논의를 통해 하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합의되지 않은, 오히려 합의정신을 위반하는 내용을 노동 5대 법안에 끼워 넣었다. 기간제 사용기간 4년 확대와 뿌리업종 파견 확대 같은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런 내용은 합의정신에 어긋나고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장시간 노동 해소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정부·여당은 휴일·연장근로 가산수당 중복지급을 사실상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놓아 장시간 노동을 부추기려고 한다.

노사정 대화가 성공하고 이어지려면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합의정신을 부정하고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 상생과 공감의 노사관계가 이어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반대로 상시지속·생명안전 업무 정규직 고용은 시급한 과제다. 노사정 합의사항이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노사정이 합의하지 않은 내용이 담긴 법안이 국회에 상정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은행권 기간제 사용기간은 1년, 새누리당 4년 연장법 반대

▲ 허정용 금융노조 부위원장(정책본부장)

정부·여당은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을 정기국회 후 임시국회에서 패키지로 통과시키겠다는 구상인데, 이를 강행해서는 안 된다. 노사정이 어렵게 내놓은 9·15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에서 벗어난 내용을 추진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노사정이 합의한 테두리 안에서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5대 법안 중에서도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기간제법 개정안이 가장 큰 문제다. 금융권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다.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2012년 산별중앙교섭을 통해 기간제 노동자의 무기계약직 전환 기간을 2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기로 합의했다. 비정규직 규모를 줄이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기 위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법으로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면 금융권 노사 합의사항과 충돌한다. 합리적이지 못하다. 또 전문직·고령자·뿌리산업까지 파견을 전면 허용하는 것은 고용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므로 반대한다.

정부·여당이 5대 법안을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해 기간제 사용기간을 4년에서 3년으로 줄이는 조정안을 낼 수도 있다는 소문도 들리는데, 그것도 의미 없긴 마찬가지다.

강행은 안 된다. 시간에 얽매이지 말고 해를 넘겨서라도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해 정치권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노동계도 수긍하고 납득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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