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지난 14일 민중총궐기 직후 “복면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황당 발언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회부의장인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25일 집회·시위에서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을 IS(이슬람국가)에 비유하면서 단호한 어조로 "복면시위는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변한 지 단 하루 만의 일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으로 복면을 착용하면 안 된다고 한다. 집회복장을 법으로 규제하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추진했는데, 당시 국가인권위원회는 "집회의 자유를 심각하게 저해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2003년에는 “집회의 자유에는 복장자유도 포함된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은 여당 대표와 대통령의 발언에 힘입은 듯 복면금지법을 밀어붙일 태세다. 복면금지법의 타깃이 될 노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억지 주장에 겁먹지 말아야

▲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

정갑윤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을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너무나 문제가 많은 주장이어서 대꾸할 가치도 없다. 그들의 주장대로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마스크를 쓸지 말지는 온전히 개인의 선택 문제다. 반면 경찰은 온갖 집회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채증을 하고 있다. 초상권 침해 문제가 불거진 지 오래지만 개선책을 마련할 기미도 없다. 규제를 철폐하자고 외치는 정권이 집회·시위에 관해서라면 필요도 없는 규제를 만들려고 한다.

개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기도 어렵겠지만 설사 통과되더라도 곧바로 위헌 논란에 빠질 것이다. 이들은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주장과 개정안을 내놨을까. 정당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고 위축시켜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확산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노동자·민중이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에 대응할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저들의 의도에 말려들지 말고, 위축되지 않고 겁먹지 말아야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온전히 누려야 한다.


‘복면’이란 단어에 집착하는 정부·여당

▲ 박상준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

우리나라 헌법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가 어떤 복장을 하든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집시법으로 시위 참가자들의 복면착용을 금지하겠다는 정부·여당의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집회 참가자들이 얼굴을 가리려는 이유가 뭔가. 바로 경찰의 과잉수사 때문이다. 경찰의 무분별한 채증, 불법적으로 수집된 채증자료를 근거로 한 무차별적인 소환장 발부가 원인이다. 경찰은 이미 신고를 마친 합법적인 집회현장에서도 불법채증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시위 참가자들이 안전하게 시위를 마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은 방기한 채 채증에만 몰두한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은 집회 참가자들을 무장 테러집단인 IS(이슬람국가)에 비교했다. 자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모는 대통령은 과연 제정신인가. 또 정부·여당이 마스크나 머플러·목도리 같은 표현을 두고 굳이 ‘복면’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통상적으로 복면이라는 단어는 ‘복면강도’처럼 부정적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와 여당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에 따라 거리로 나선 노동자와 농민·빈민·서민들에게 ‘복면강도’ 같은 범죄자 이미지를 덧칠하고 싶은 것인가.


청와대로 가는 길을 터라

▲ 전종덕 금속노련 노사대책실장

이달 14일 광화문으로 향하던 시위대를 막아선 건 경찰의 차벽이었다. 길을 터 달라는 요구에 공권력은 물대포로 응사했다. 마치 온라인 공간에서 게임이라도 하듯, 세찬 물줄기가 가해졌다. 부상자에게도, 부상자를 구호하던 이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그날 모두가 목격한 진실이다.

경찰의 불법폭력으로 백남기 선생님이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반성과 사과는 오간 데 없고 여론몰이와 공안탄압만이 활개치고 있다. 대통령이 발언하자마자 새누리당은 복면금지법을 발의했다.

헌법상 보장된 집회·시위를 교통방해라며 불허하고, 평화로운 행진을 차벽과 물대포로 막아선 정권과 집권여당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민중총궐기를 불법폭력 집회라며 사실을 호도하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집회 참가자가 복면을 쓰건, 마스크를 착용하든 자유다. 자연스런 시위 문화다.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를 금지하는 정권은 불신과 불복종만 키울 뿐이다. 평화롭게 걸어서 청와대로 갈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라면 누구나 요구하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로 가는 길을 터야 한다.


복면금지법 파기하기 위해 집회할 것

▲ 현석호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

국민이 무엇을 입든 얼굴을 가리든 복면을 쓰든 국가가 나서 규제할 문제가 아니다. 이전 정권에서도 한 차례 복면금지법을 제정하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법안의 실익이 없고 국민 기본권이 침해되기 때문이다.

건설노조 조합원인 건설노동자들은 분진이 많이 날리는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마스크를 항상 소지하고 있다. 건설노동자들은 집회에 갈 때 작업복을 착용하고 간다. 집회가 과열돼 경찰이 최루액을 뿌리거나 물대포를 쏘면 집회 참여자인 건설노동자들도 방어적 차원에서 마스크를 착용한다.

집회가 보장된다면 마스크를 쓸 일도 없을뿐더러 얼굴을 가릴 이유도 없다. 정부와 여당에 되묻고 싶다. 집회 참여자들이 왜 복면이나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는지.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평화적으로 해산하면 된다. 차벽을 쌓아 이동을 막은 건 정부와 경찰이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침해하는 것도 모자라 복면을 착용할 경우 처벌한다고 하니 소가 웃을 노릇이다. 복면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건설노조는 복면금지법을 파기하기 위해 집회를 할 것이다. 12월5일 2차 민중총궐기에도 참여한다.


복면 없이 집회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야

▲ 권영국 변호사

정부·여당이 시위에서 일어나는 약간의 일탈행위를 테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헌법상 기본권리인 집회·시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범죄시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도하고 정당성도 없다.

집회·시위의 자유란 국가기관의 감시·통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시민들이 익명으로 집회나 시위에 참여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본권으로서 보장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복면금지법은 헌법상 기본권을 범죄시하고, 모든 국민을 국가의 감시망과 통제 속에 두겠다는 것이다. 의도 자체가 매우 불온하고 헌법정신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집회에서 복면을 쓰냐 안 쓰냐는 집회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느냐에 달렸다. 시민들이 얼굴을 감추려는 건 국가권력이 집회·시위를 적대시하고 탄압하기 때문이다. 복면금지법을 만든다고 시민들이 자신들을 숨기려는 현상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해 줘야 시민들이 아무런 부담이나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집회 현장에 무장경찰이 아닌 질서안내 경찰들 정도만 나와 있었다. 충돌할 대상이 없다면 매우 평화적인 시위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경찰이 시민들을 통제·억압하고, 마치 사병들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불만이나 반감으로 저항이 세게 일어나고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마치 시민들이 원래 폭력적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 건 본말을 전도하고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시민들이 복면 없이도 자유롭게 집회·시위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부터 만들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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