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지난 14일, 민중총궐기라고 이름 붙인 노동자대회 날이었다. 민중총궐기라고 할 순 없었지만 10만명은 넘게 궐기한 집회였다. 서울광장에서 광화문네거리와 종로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의 분노를 경찰차벽 위에 설치된 물대포가 수만 경찰의 선봉에서 진압하고 있었다. 인정사정없는 시위 진압무기였다. 경찰장비규칙에는 ‘발사각도는 15도 이상 유지해야 하고, 20미터 이내 근거리 시위대를 향해 직접 발사하면 안 된다’고 한 물대포 사용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현장 동영상들이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네크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유포됐다. 물대포에는 분사하는 소방관도,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 시위대에 조준된 물대포는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을 쓰러뜨리고 있었다. 거기에서 물대포가 농민 백남기를 쏘았고 그는 쓰러져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날 물대포는 시민에겐 흉기였다. 대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은 살인무기라고 분노했다. 비인간적인 진압장비였다. 차벽너머에서 모니터로 보고 앉아서 시위하는 시민을 조준하고 스위치를 누르면 그만이었다.

2. 이날 노동자대회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개혁에 대한 분노로 대규모로 조직됐다. 많은 노동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노조 깃발을 들고 참석했다. 10만명이 넘는 분노는 서울의 광장과 거리에서 정부의 노동개혁을 노동개악이라고 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 뉴스는 정부의 노동개혁 5대 법안을 상정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의에 착수했다고 보도됐다.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인데, 집권여당은 청년일자리 창출과 경제개혁을 위해 이들 법안의 정기국회 내 처리가 시급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9·15 노사정 합의가 나오자마자 집권 새누리당은 ‘노동시장 선진화 법안’이라며 5대 법률안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의결한 바 있다. 이 5대 법률안에서 기간제법과 파견법이 비정규직법안이다.

3. 그 비정규직법안에는 기간제에 관해 현행 2년인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이 “당사자가 기간제라도 한 사업장에서 계속근로하기를 원하고, 계속 근로시 숙련도 제고로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는 경우에도 2년 기간 종료로 사업장을 떠날 수밖에 없어 고용불안이 야기”된다며 35세 이상 근로자가 신청하는 경우에는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파견제에 관하여는 “고령자의 고용확대를 위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 및 근로자파견 절대금지업무를 제외한 모든 업무에” 고령자 파견을 허용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소득자에 대해서는 관련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며, “뿌리산업 종사업무에 대해” 파견을 허용하는 것이 주된 개정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기간제의 사용기간 연장과 파견 대상업무 확대가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주된 내용이었고, 그동안 한국노총을 포함해서 노동계는 이에 강력히 반발해 왔다. 이러한 새누리당 의총의 결의에 대해 당시 한국노총은 특히 비정규직법안은 노사정 합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9·15 노사정 합의문에는 ‘기간제·파견근로자 등의 고용안정 및 규제 합리화’에 관해 “노사정은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해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은 정기국회 법안의결시 반영하도록”하고, “추가 논의과제”로 “기간제의 사용기간 및 갱신횟수, 파견근로 대상 업무, 생명·안전 분야 핵심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사용제한, 노동조합의 차별신청대리권, 파견과 도급 구분기준의 명확화 방안, 근로소득 상위 10% 근로자에 대한 파견규제 미적용, 퇴직급여 적용문제 등”을 들고 있었다. 분명히 “기간제의 사용기간 및 갱신횟수, 파견근로 대상 업무”는 추가 논의과제로 명시하고 있고, “노사정은 관련 당사자를 참여시켜 공동실태조사,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집중적으로 진행해 대안을 마련하고, 합의사항”에 관해서 정기국회 법안의결에 반영토록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니 한국노총이 비정규직법안이 포함된 5대 법안에 관한 새누리당 의총 결의에 반발하는 것이 납득이 간다.

그런데 9·15 노사정 합의 이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전문가그룹은 비정규직 쟁점에 관해 검토해서 그 의견을 제출했다. 여기서 공익전문가들은 “현 일자리에서 오래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당사자의 의사가 명백할 경우, 예외적으로 사용기간을 연장(예 : 최대 2년)하는 방안은 합리적 대안”이라 보고, “대신 사용자의 연장신청 강요, 기간제 남용 등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근로자의 신청 외에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 방안을 제시”했고, “대상을 35~54세로 한정하는 것은 34세 이하 근로자에 대한 차별 및 위헌 소지 논란, 통계적 입증곤란 등의 문제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기간제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근로자의 신청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과 새누리당 법안이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전문가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35세 이상으로 소심했던 새누리당 보다는 34세 이하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대담한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고령자의 경우 새로운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파견직을 통해서 취업기회를 확대”할 수 있고,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업무수요 변화가 있음에도 고임금 전문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데 따른 부담을 완화할 수 있고 전문직 근로자도 새로운 일자리를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돼 파견 대상 업무로 하고, 열악한 근로조건 현실과 인력난에 시달리는 제조업의 뿌리산업 분야에 “파견을 허용하여 인력난 완화 및 일자리 기회 확대를 도모할 필요”가 인정된다며 파견대상업무로 허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의견을 제시했다. 파견법에 있어서도 고령자·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파견을 허용하고, 제조업 뿌리산업 등을 파견 대상 업무로 하는 새누리당의 파견법안과 차이가 없는 전문가의 의견인 것이다.

4. 노사정위의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의 전문가그룹에 누가 전문가로 참여하고 있는지 그들의 의견은 그동안 고용노동부가 발표해 온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위와 같은 전문가그룹 논의결과가 게시된 노사정위 자료집에는 노동제도 간사로 박지순 교수가, 노동시장·노사관계 간사로 권순원 교수가 맡았다고 첫 면에 쓰여 있는 것만 확인했다. 노동부가 발주한 교수의 용역보고서를 바탕으로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안 내지 노동시장 구조개혁방안이 마련된 것인지, 교수의 연구 결과가 정부의 방안이 합리적이라고 검토돼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가 어떤 전문가라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비정규직법안이 합리적이라는 그들의 의견에는 반대한다. 노동문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기구려면 노사정위는 노·사·정이 합의로 운영돼야 한다. 노동자 대표가 합의하지 않은 사항이 노사정위의 전문가 의견으로 국회 입법과정에 제시될 일도 아니다.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비정규직법이 노동자 대표가 반대하는데도 제정되고 개정될 일은 아니다. 기간의 정함이 없이 사용하고, 중간착취 없이 사용하는 것이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이상하게도 아니다. 지난 12일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기간제 근로자 근무 2년 제한이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힘들게 한다”며 호소했다고 보도됐다. 기간제법을 제정하면서 임시적 업무로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고 2년으로 기간을 제한해서 초래된 노동현실을 두고서 노동자가 신청하면 기간을 연장하도록 해서 비정규직으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것이라고 장관은 호소하고 노사정위 전문가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은 떳떳하다. 비정규 노동자가 연장을 원해서 신청하는 것이니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는 합리적인 법이라고 떳떳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근로계약은 노동자가 원해서 합의로 체결한다. 비정규직 계약도, 용역계약도, 파견계약도, 그 밖에 이 세상에서 모든 차별의 근로계약도 노동자가 원해서 사용자와 합의로 체결한다. 계약 자유의 세상이다. 2년 계약기간이 도과되기 직전에 ‘계약기간 도과로 일자리를 잃을 것이냐, 비정규직으로 일자리를 유지할 것이냐’라는 선택지가 기간제 노동자에게 주어질 것이고, 노동자는 원해서 후자를 신청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이 아니다. 차라리 경제를 위해서, 노동유연화를 위해서, 사용자를 위해서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라. 그러면 괜히 취지를 의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견대상업무를 확대해서 고령자의 취업을 늘리겠다는 취지는 차라리 솔직하다. 사용자들은 고령자를 정규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비정규직으로 사용하는 걸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악한 근로조건의 제조업 뿌리산업의 인력난을 해소하겠다고 파견대상업무로 허용하겠다니 도대체가 비정규직으로 더 열악한 고용조건에서 어떻게 인력난을 해소할 것이라는 것인지 사용자를 위한 취지라는 것 말고 당최 이해되지 않는다. 물대포는 노동자대회의 날에 서울의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권리 보호를 말하면서 노동자(대표)의 반대에도 추진하는 이 나라에서 권력의 비정규직법안에도 있다. 거기서는 전문가도 정부도 노동자의 고용 보호를 무너뜨리는 것을 노동자보호를 위해 합리적이라며 제멋대로 노동자를 조준해서 법을 만들라 하고 있다. 함부로 누른 스위치에 노동자가 죽을 수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