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자본주의는 역사적으로 대개 시장전제주의(market despotdeism)에서 시작했다가, 점차 그것이 인간이 살아가는 체제가 될 것을 희망하며 몸부림치는 노동자들이 조직화돼 가면서, 그 성격이 변모해 갔다. 자본주의 역사는 자본주의 극복을 위한 노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 궤적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노동운동이다.

민주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운동은 사회적 실체로 물질화·제도화돼 있다. 그것은 물론 오랜 시간 동안 전개된 무수한 인정투쟁(Anerkennungskampf)의 산물이다. 그렇게 형성된 한 나라 노동운동의 선택은 그 나라 노동시장과 산업경제를 이끌고 나아감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동운동은 보통 평등한 노동시장을 추구한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의 분화와 파편화는 노동운동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단결의 조건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적은 불평등이다. 노동운동의 일차적인 목표가 자본과 노동 간의 불평등 해소 내지 완화에 있다면, 일차 못지않게 중요한 이차 목표는 노동과 노동 간의 불평등과 격차 해소에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노동시장의 바닥을 최대한 높이는 것, 최상층의 높이는 가급적 낮추는 것, 중간의 여러 단계도 최대한 복잡하지 않고 심플하게 하는 것, 그리고 중간의 수평적인 분화도 최대한 자제하고 통합화시키는 것을 지향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평등은 신뢰와 효율을 낳는다. 저사람과 내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에 선다면, 적대감이나 의심보다 신뢰(trust)를 촉진시킬 개연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각종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줄어들고 결국 사회 전반적으로 효율(efficiency)이 증대할 수 있다. 평등은 획일과 다르다. 평등은 정당한 차이를 인정하지만, 그것이 전체의 하모니를 깨뜨리는 쪽으로 치우쳐 가지는 않도록 제어하는 메커니즘을 추구한다. 노동운동이 사회적 순기능을 하는 이유는 바로 노동운동이 추구하는 평등이라고 하는 가치가 한 사회에서 이러한 긍정적 효과를 낳을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노조조직률이 80%를 넘어서며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원론적 지향성에 비춰 봤을 때 한국의 노동조합주의 즉 유니어니즘(unionism)은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을까. 흔히들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갖는 지배적인 특성을 ‘경제적 실리주의’ 내지 ‘전투적 경제주의’라고 표현한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다양한 정치투쟁도 전개해 왔으나,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제도화된 기구의 일상활동에서 최고의 주안점은 어떻게 하면 매년 반복되는 임금협상에서 정규직 조합원들의 임금·복지 증대를 가장 크게 이뤄 낼 것인가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향을 갖는 노동조합의 행위공간은 기업(enterprise)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한 기업을 단위로 해서 노동운동이 전개하는 전투적 실리주의 지향성은 기업 내에서 일정하게 효과를 거둘지언정 그것의 사회적 파급효과 측면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다 같이 가난하던 시절, 우리 사회의 산업기반이 취약하던 시절, 일부 대기업의 선도투쟁이 다른 영역 노동자들을 각성시키고 운동 확산을 초래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런 초창기 노동운동의 효과는 지금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심하게 벌어져 있고, 노동자들의 고용형태도 이질적(heterogenous)으로 돼 버렸다. 원청과 정규직 노동운동은 하청과 비정규직에게 희망이 되지 못한다. 청년들은 높은 진입장벽 앞에서 좌절해 있고, 간신히 비정규직의 쪽문을 뚫고 그 안에 발을 담그더라도 중심부로의 진입은 또 다른 요원한 과제다.

이러한 노동시장 전반의 문제들이 산적한 속에서 우리 사회의 작은 권력자로서 노동운동은 무엇을 해야 할까. 당장 현재의 제도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조직적 기반인 특정 기업 조합원들의 물질적 이해와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실천은 무시하지 못할 중요한 목표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현재와 같은 조건에서 노동운동이 기업 내 노자 간 분배정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것에 안주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의무 방기이자,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 확산자로 역기능을 하는 것이다. 보다 넓은 시각에서 우리 사회 노동시장 전반을 바라봐야 하며, 거기에서 평등의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가를 중심에 두고 고민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평등을 놓아 버린다면, 그것은 연대가 아닌 소외를 낳고, 자기 존립의 기본적인 정당성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자기업의 성과에 취해 곧 돌아올 눈앞의 현금을 세고 있는가, 아니면 비정규직과 하청계열사,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내 문제처럼 생각하고 무언가 작은 연대적 실천이라도 모색하고 있는가. 사회적 시민권의 바닥을 올리고 평등적 가치 확산과 실현을 위한 새로운 조직과 교섭 틀을 구현하기 위해, 현재 누리는 작은 기득권을 과감히 청산할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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