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관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헌법 제27조4항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이라도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죄가 없는 자로 다뤄져야 하며 어떠한 불이익도 입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불이익’은 형사절차뿐만 아니라 기본권 제한과 같은 일체의 영역에서 금지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헌법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인정되지 않는 곳이 있다. ‘대한민국의 관문’이라 불리는 인천국제공항이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보안검색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30일 인천국제공항 여객터미널에서 약 1시간 동안 선전전을 수행했다. 선전전을 주도한 보안검색지회의 지회장은 인천국제공항에서 15년째 특수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신입사원이었다. 경력 15년의 신입사원이라니….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특수경비원들이 소속된 용역업체와의 도급계약을 3년마다 해지하고 업체를 변경하는 바람에 특수경비원들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계속해서 수행하면서도 3년마다 다른 업체와 신규채용 형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특수경비원들은 3년마다 신입사원이 돼야만 했던 것이고, 특수경비원들이 이전 용역업체와 체결한 단체협약은 새로운 용역업체에게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참다못한 조합원들이 실질적 사용자인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부당한 상황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선전전을 하게 됐다. 공항 이용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합원 사이에 30~40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벽이나 기둥, 사용하지 않는 문 앞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채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 방식으로 선전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이마저 못마땅했는지 건장한 체격의 경비원까지 동원해 조합원들에게 선전전 중단과 퇴거를 강요했고 급기야 지회장을 포함한 조합원 10명을 퇴거불응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1심 법원은 지회장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나머지 9명의 조합원에게는 벌금형을 선고했다. 유사한 방법으로 선전전을 수행한 사건들에서 형의 선고를 유예한 다수의 판결이 있었기 때문에 지회장은 물론 조합원들도 1심 판결의 부당함을 다투기 위해 항소하려고 했는데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보안검색업무를 하는 조합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의 보호구역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인천국제공항공사로부터 ‘보호구역 출입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인천국제공항 보호구역 출입증규정’이 ‘재판이 진행 중인 자’에 대해서는 출입증 발급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1심 법원의 판단이 부당하다는 점이 명백하지만, 항소를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가 되면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없게 되는 구조다. 사정이 어찌 됐든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없는 특수경비원과 근로계약을 유지하려는 사장이 과연 있을까. 조합원들의 고민은 길어졌고, 결국 지회장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의 조합원들은 월급의 두 배에 가까운 벌금형을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항소를 한 지회장의 출입증은 효력이 정지됐고,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의해 회수됐다. 헌법 제27조4항은 적어도 인천국제공항에서 근무하는 특수경비원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재판이 진행 중인 자에 대해 보호구역 출입증 발급을 제한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 보호구역 출입증규정은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의해 제정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형 법무법인으로부터 법률자문을 받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고등학생도 알고 있는 헌법 조항의 존재를 몰랐을까. 몰랐다면 무능에 실망이고, 알았다면 악의적 의도에 경악할 일이다.

2013년 12월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의 파업 당시 탑승교지회 소속 조합원들은 필수유지율을 지켜 가며 파업에 참여했음에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고소로 기소됐다.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인천국제공항공사는 현재 보호구역 출입증 갱신을 위해 탑승교지회 소속 조합원을 비롯한 직원들의 신원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1·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탑승교지회 소속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출입증의 효력을 정지시키고 재발급을 거부할까.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무능이냐 악의적 의도냐, 조만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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