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재석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는 광복 70돌 분단 70돌을 맞아 민족의 맏아들 격인 노동자가 앞장서 단절된 남북관계를 다시 이어 내자는 희망과 의지에서 시작됐다. 역사적으로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는 상당히 큰 결실을 거뒀다. 1999년 평양축구대회 1년 뒤인 2000년 6·15 공동선언이 발표됐고, 2007년 창원축구대회 후에는 10·4 선언이 발표됐다.

남북관계는 2008년부터 교착상태에 빠졌고 이를 복원하기 위해 통일축구대회를 개최하자는 논의가 이어졌다. 지난해 10월 양대 노총이 먼저 대회 개최를 결의했고 같은해 12월 남북노동자 3단체가 올해 5·1절 개최에 합의했다.

남북관계 복원 앞장섰던 통일축구대회

양대 노총은 올해 2~3월 지역별 예선전을, 4월19일에는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결승전을 치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남북당국 간 관계가 나빠지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올해 내 개최 가능성조차 타진하기 어려웠지만 남북 8·25 합의를 통해 다시금 기회가 열렸다.

이산가족 상봉이 준비되던 무렵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에서 통일축구대회 관련 실무협의를 개성에서 열자는 의견을 보내왔다. 이후 남북노동자 3단체는 두 차례 협의를 거쳐 10월28일부터 31일까지 평양에서 대회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남측 노동자 대표단 160명이 지난달 28일 오후 2시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8년 만에 만난 북녘 동포들은 평양 순안공항에서부터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줬다. 설렘 반 긴장 반의 마음으로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순간 고운 한복을 차려 입고 우리를 향해 손 흔드는 북녘 노동자와 동포들이 나타났다. 어색하던 기분도 잠시, 참가단 전원은 서로 손을 흔들고 인사를 나눴다.

북녘 노동자와 동포들의 인사는 우리가 도착했던 그때부터 떠나던 마지막 순간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계속 이어졌다. 평양제사공장 노동자는 물론 아동병원 직원들, 옥류관 식당 봉사원들까지 추운 날씨에도 고운 한복 차림으로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그들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남측 참가단에 대한 성대한 환영은 통일축구대회가 개최된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1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능라도 5·1경기장에는 이미 10만명의 관중이 가득 차 있었다. 남측 참가단이 입장하는 순간 모든 관중은 기꺼이 일어나 우레와 같은 환영과 연대의 박수를 보냈다. 경기 내내 관중들은 남북 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를 응원했으며 경기장에는 "우리 민족끼리" "조국 통일"이라는 구호가 멈추지 않았다.

남측 선수단이 공 잡으면 "한 골만, 한 골만" 연호

북측 선수팀에 비해 열세였던 남측 선수팀이 안타까웠는지, 북측 선수가 공을 가로채면 "좀 놔둬라~"고 외치는가 하면 모두가 함께 "한 골만~" 하고 함께 연호하기도 했다. 축구대회는 그야말로 하나가 되는, 하나가 되기 위한 남북 노동자의 마음을 모아 낸 단결의 장이었다.

오랜만에 방문한 평양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차량 통행량이 매우 늘었고 평양 시민의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 있었다. 미래과학자 거리를 비롯해 수많은 시설이 새로 생겨났다. 우리가 방문했던 아동병원·보육원·애육원·평양제사공장·능라곱등어관(돌고래수족관) 등 다양한 복지시설과 일터들이 새 단장을 마친 상태였다.

새 단장을 마친 평양 거리와 여전히 친근하고 소박한 사람들. 그들에게 내년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하고 돌아왔다. 그토록 우리를 환대해 줬던 평양시민의 정성을 잊지 않고, 그 마음 그대로 서울 통일축구대회를 정성껏 준비하고자 한다. 남측 노동자는 물론이요, 온 겨레가 함께하는 축제의 장을 열어 내고 싶다.

내친김에 남북 노동자가 함께 부산~서울~평양~신의주를 잇는 통일고속도로까지 뚫어 볼까 하는 꿈까지 생겼다.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가 일궈 낸 꿈이다. 만나야 통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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