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라는 이유로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면책하는 건 명백한 잘못이다.”

마르틴 메이어(62·사진 왼쪽) 전 영국 서비스노조 버스산업 교섭대표는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불법행위를 한 기업가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는 한국 사법부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기업인을 봐주는 나라는 외부충격에 경제가 흔들리고, 재해사고에 취약해 오히려 위험에 처한다”며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시민과 기업이 서로를 신뢰하고,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노동당 중앙집행위원이기도 한 메이어씨는 지난해 교섭대표 임기를 마치고 은퇴한 상태다. <매일노동뉴스>가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메이어씨와 마이클 케인(46·사진 오른쪽) 호주 운수노조 사무부총장을 만났다.

이들은 이날 4.16연대 안전사회위원회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연대가 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방한 기간에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법률(기업살인법) 제정을 촉구하는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영국과 호주는 각각 2007년과 2003년 기업살인법을 도입했다. 이전에도 산업안전보건법 등을 통해 산재 사고 발생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었지만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사고 책임이 있는 원청 사업주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케인 사무부총장은 “기업살인법으로 사업주는 최대 20년까지 징역형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산업현장의 안전문화가 이전에 비해 크게 바뀌었다”며 “산재 사고에 원청 책임을 분명하게 명시한 점이 안전문화를 바꿀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안전 안 지키는 사업주 처벌에 오히려 기업이 환영

- 기업살인법을 도입하면서 재계에서 반대여론이 심했을 것 같다.

메이어 전 교섭대표 : 법 제정을 반대하는 기업의 로비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반대여론도 없었다. 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기업들은 기업살인법을 지지하기도 했다. 법을 제정해 안전관리의 사각지대에 있는 기업을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당시 노동계는 대기업의 핵심 간부들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수준의 법을 요구했는데 노동당에서 이 내용을 삭제했다. 수위를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가 치열하게 싸웠다.

케인 사무부총장 : 2002년부터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1주일에 한명씩 건설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정말 끔찍한 일이었는데, 호주 건설노조와 시민사회가 대규모 집회를 했다. 당시 산재 사고를 일으킨 기업가를 처벌하자는 내용의 캠페인이 확산됐다. 이 과정을 거쳐서 기업살인법이 제정됐다. 수차례 하도급 과정을 거쳐도 원청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고 기업의 최고 임원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업주 처벌할 수 있어야 산재 예방 실효성 생겨

- 원·하청 관계가 복잡할 경우 책임 소지는 어떻게 가리나.

메이어 전 교섭대표 : 다단계 방식의 하도급구조 자체가 안전을 위협하는 건 분명하다. 영국에서도 사고가 났을 때 원청 책임을 어디까지 부과할지는 여전히 쟁점이다. 그럼에도 기업살인법 제정 이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문제가 원·하청 경영자들에게 주요 이슈가 됐다. 기업살인법 도입 이후 여러 건의 산재 사고 재판이 있었는데 결과가 좋았다.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점도 있다. 기업살인법은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아직도 문제를 제기할 부분이 많다.

영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산재 사망자가 10만명 당 0.6명으로 가장 적은 수준이다. 이에 메이어 전 교섭대표는 “기업살인법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케인 사무부총장 : 정부와 기업은 알아서 바뀌지 않는다. 산재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걱정을 해야 안전관리 의무를 열심히 이행한다. 유통업체 화물기사가 운행 중 사고를 당했다고 가정하자. 호주에서는 고용관계는 없어도 유통업체가 사고 원인을 제공했다면 처벌받는다. 기업살인법이 중요한 건 정부·기업과 시민·노동자 간 힘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