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이 대통령과 만났다. 단독면담에 이어 노동부장관, 노사정위원장, 복지노동수석과 함께 노동정책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나름대로 격식을 갖춘 면담인 만큼 한국노총과 정부와의 관계개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과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나 한국노총에서는 정부와의 정치적 협상력이 리더십의 한 축을 형성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이번 만남이 이남순 위원장의 12일간의 단식투쟁의 결과라는 사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만큼 이번 이남순 위원장과 대통령과의 만남은 어떤 형식으로든 한국노총과 정부와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남순 위원장과 DJ는 무슨 얘기를 한 것일까. 한국노총과 청와대측은 모두 구체적인 얘기는 조심스러워 하고 있어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이남순 위원장은 최근 시국에 대한 노동계의 상황인식을 전달하며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 구속노동자 석방,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보호, 노사정위원회 위상 강화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은 간접화법으로 응답을 한 것 같다. 대통령의 답변 중에 눈길을 끄는 것은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구조조정시에 노사관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여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나갈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한 점이다. 이것은 그동안 노동계의 목소리를 우회적인 형식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통령은 면담과정에서 비정규직 문제에 상당한 관심을 표하면서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특위구성 등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현재 노사정위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정규직 특위 구성논의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노총 위원장과 대통령의 공식면담이라는 격식은 갖췄지만 가시적이면서도 비중있는 큰 ‘선물’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 이남순 위원장과 DJ의 만남이 노정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먼저 한국노총과 정부간에 노정대화국면이 형성돼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정부여당으로서는 한국노총과의 대화채널을 다시 복원함으로써 노정갈등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한국노총으로서는 정부와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앞으로 노정 대화를 통한 실리를 얻으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노총 이남순 위원장으로서는 이번 면담을 조직내 지도력을 다시 추스르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 같다. 이남순 위원장은 단식투쟁까지 해가며 대통령과의 만남을 쟁취했고, 정부 정책 책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노총의 정치적 위상을 다시한번 확인한 만큼 이를 한국노총의 활동범위를 넓히는 계기로 삼기위해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면담을 가시적인 성과로 연결시키지 못할 경우 이번 면담이 일과성 이벤트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마도 이것은 이남순 위원장의 과제가 될 것 같다.

이번 면담결과로 노사정위의 활동이 눈길을 끌 가능성도 있다. 비정규직 특위 구성 등이 가시화 될 수 있다면 그만큼 노사정위로서는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면담 결과는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노총과 정부간의 노정관계 구도의 복원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아직 민주노총은 장외투쟁을 하고 있고, 이런 구도는 별로 변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점에서 기존의 노사정관계의 구도는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클 것 같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