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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면군 죽음 후 우리 사회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은은 ‘좋은 물질’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금술사들은 수은을 활용해 금속물질을 금·은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불로장생을 꿈꾼 중국의 진시황제는 수은을 애용했다. 그의 무덤에는 수은이 흐르는 강과 바다의 모형이 함께 묻혔다는 전설이 떠돌 정도였다. 고대부터 사용된 수은은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각종 제품에 응용됐다. 온도계·혈압계·수은등·형광등·상처 소독제(머큐로크롬)·수은전지 약 300여 가지의 용도로 쓰였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한 수은이 해로운 물질로 판명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1956년 일본 남부의 작은 어촌인 미나마타현에서 집단 발병이 일어났다. 이 지역 인근 바다에서 잡은 어패류를 먹은 주민 2천명이 손발이 저리고, 구토와 발열을 앓았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후인 68년에 일본 정부는 “질소비료 공장에서 배출된 메탈수은이 미나마타병의 원인”이라고 공식 인정했다. 일본 대법원은 2004년 미나마타병과 관련한 정부 책임을 인정했다.

수은은 우리나라 직업병 역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88년 15세 소년 문송면군은 서울 영등포구 소재 온도계 공장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손과 발이 마비되는 수은중독에 걸렸다. 문송면군은 병원을 전전한 지 한 달 만에 서울대병원에서 수은중독을 판정받았으나 노동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이 산재지정병원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가족들의 진정이 잇따르자 산재지정병원인 카톨릭성모병원에서 산재 판정을 받은 문송면군은 이 병원으로 옮긴 지 사흘 만인 7월2일 끝내 숨졌다.

문송면군의 죽음으로 열악한 노동조건과 심각한 직업병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이슈로 떠올랐다. 같은 처지였던 원진레이온 이황화탄소 중독 피해자들의 안타까운 사연도 알려졌고,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직업병 인정과 제도개선을 촉구했다. 진폐증과 난청에 국한됐던 직업병은 수은과 같은 중금속·유기용제 중독으로 확대됐다. 우리나라 직업병 역사의 전환점이 된 셈이다.

미나마타병이 알려지면서 국제 사회는 수은 중독에 대처하고자 국제협약을 마련했다. 2013년 10월 세계 140여 개국 대표들은 수은 생산과 배출을 제한하는 ‘미나마타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2016년에 발효될 예정이며, 우리나라도 지난해 협약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지난달 1일 잔류성유기오염물질 관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간 스톡홀름협약에 따라 다이옥신 등 잔류성 유기오염물질의 생산과 배출을 제한했던 이 법안에 수은을 추가한 것이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미나마타협약에 따라 정부가 관련법 개정에 나선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남영전구 광주공장 수은 집단 중독사태에서 보듯이 정부의 수은 관리 시계는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숨진 27년 전에 멈춰 있다. 수은을 활용한 제조업체와 폐기물 이동 현황에 깜깜했던 환경부, 수은 집단 중독사태를 일으키고도 책임을 회피하는 원청업체에 대해 속수무책인 고용노동부, 유해물질 철거작업을 알리지 않았던 사업주까지.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미나마타 협약에 따라 환경부는 2020년 유엔에 수은 배출 국가현황을 보고해야 한다. 환경부는 앞으로 5년간 수은 배출조사 계획을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환경부의 조사는 석탄화력발전소, 비철금속 제련과 공정, 폐기물소각시설 등에 맞춰져 있다. 생산 공정과 소각시설 그리고 발전소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수은 배출 현황을 조사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남영전구 광주공장과 같이 생산 제조시설의 철거와 폐기 과정에 대해선 방치하고 있다.

국내 형광등·전구 생산시설은 해외로 이전하는 추세인데 이 과정에서 제 2의 남영전구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환경부와 노동부는 남영전구 사태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 향후 수은 생산현황과 배출조사에서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관리법 개정안에 따르면 폐기물 보관시설 및 재활용 시설을 시·도 지사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던 규정이 삭제됐다. 환경부가 규제를 완화한다는 차원에서 개정법안에서 삭제한 것이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선 안 된다. 수은 관련 폐기물 관리시설과 재활용시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국회가 법안 논의과정에서 신중하게 재검토해야 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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