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균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노무사가 된 지 1년의 시간이 흘렀다. 1년 동안 많은 일을 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남아 있는 기억 중에 답답했던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은 내 입에서 “억울한 건 이해되지만, 법적으로 어떻게 해 볼 만한 여지가 별로 없네요”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때다. 무언가를 해 보고 싶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이런 순간, 나는 답답함을 느낀다. 최근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답답한 순간은 추석을 며칠 앞둔 어느날 찾아왔다.

“9월까지만 출근하고, 10월부터는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는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였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로 일하는 아버지는 “근로계약 기간이 9월 말일부로 만료되고, 이제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니 10월부터 출근하지 말라”는 용역회사의 요구가 있었다고 한다. 머릿속에는 ‘계약기간 만료는 원칙적으로 해고 아님’이랄지, ‘계약기간이 형식에 불과’, ‘갱신기대권’ 같은 단어들이 떠올랐다. 일단 알았다고 대답한 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자고 하며 근로계약서를 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으나 “작성은 했는데,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근로계약서 서면교부 의무’ 같은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근로계약서를 직접 구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아버지의 말에 용역회사 이사의 연락처를 받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메모지에 적었고, 전화를 걸었다. 용역회사 이사는 능청스럽게 전화를 받으며, 근로계약서는 모두 교부했고, 원하면 팩스로 보내 준다고 대답했다. 사무실 팩스로 받은 근로계약서를 읽는데, 머릿속에서 ‘갱신기대권’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근로계약서에는 3개월의 수습기간을 포함한 9개월의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었고, 별도의 재계약 요구가 없을시 계약은 당연 종료된다고 적혀 있었다. 올해 초 위탁운영에서 용역으로 전환되면서, 용역회사에 고용된 기간은 9개월이었다. ‘경비’와 ‘갱신기대권’이란 키워드로 찾아 본 판례는 갱신기대권이 어렵다고들 말하고 있었다. 갱신기대권을 다투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근로계약서상 다른 근로조건을 살폈다. 휴일과 연차휴가에 관해서는 취업규칙에 따른다고 적혀 있기에, 다시 용역회사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해당 취업규칙 부분을 요구했다. 용역회사 이사는 나를 ‘노무사님’이라 부르며 ‘인간적으로’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문제만 제기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아들로서의 도리’를 말했다. 받아 본 취업규칙을 확인하니, 근로조건은 간결했고, 임금은 정확히 최저임금 경계 바로 위였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아들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추석 당일, 계약기간이 만료된 경비노동자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막상 날이 잡히고부터 부담감에 마음이 답답했다. 추석 당일 근무를 하는 아버지와 경비노동자들은 점심자리에서 계약기간에 대한 얘기를 했다. 용역회사는 올해 1월1일자로 노동자들과 3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쓰고 3개월이 지난 뒤 6개월 계약기간을 갱신하면서 앞서 작성한 3개월 근로계약서를 파기하고, 다시 올해 1월1일자로 도합 9개월짜리 계약서를 새로 작성했다고 한다. 이번에 재계약이 된 노동자들에게서도 앞서 작성한 9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파기하고, 새로 올해 1월1일이 적힌 12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작성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혹여나 발생할 수도 있는 갱신기대권에 따른 분쟁을 막기 위해서 이런 방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갱신거부 사유는 만료를 통보받은 지 며칠이 지나서야 확인됐다. 아파트 동대표들은 근무태도가 불량하다고 평가한 뒤 계약해지를 요구했다고 한다. 나는 ‘노무사’로서, “억울한 것이 사실이지만,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실업급여 수급대상이니 실업급여 꼭 받으시고, 건강보험이 직장에서 지역으로 전환될 것이니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신청하시라"는 가볍디 가벼운 조언을 마지막으로 짧은 점심식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아버지와 아저씨들은 빠른 걸음으로 다시 아파트 경비실로 돌아갔고, 나도 ‘아들’로서 집으로 돌아갔다.

억울함을 이해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답답함을 느끼는 이런 순간은 앞으로도 더 많이 올 것 같다. 그럼에도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고 더 긴 시간이 지나면 나는 ‘노무사’로서 억울한 노동자에게 다른 말을 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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