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청년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가가 집필하는 국정교과서로 발행하기로 했다. 야당과 시민·사회·학부모단체는 물론이고 역사학계조차 "집권세력이 영구집권을 위해 아이들의 역사인식을 지배하려 한다"고 반발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두고 사회적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현행 검정에서 국정으로 전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했다"고 밝혔다.

국정교과서는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10월 유신 이후 오랜 기간 국정으로 발행되다 김대중 정부 들어 검정제로 전환했다. 학생들에게 획일적 시각을 주입한다는 비판을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2011년에는 완전 검정 체제로 환원됐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 2017년부터 수업

정부는 국정 한국사 교과서를 '올바른 역사교과서'라고 이름 지었다.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역사왜곡 교과서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무마하려는 방편으로 풀이된다.

황우여 부총리는 "역사교과서 검정제가 건전한 국가관과 균형 있는 역사인식을 기르는 데 기여하지 못한 채 이념논쟁과 편향성 논란을 일으켜 왔다"며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룩하고 과학·문화·예술 각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달성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공정하고 균형 있게 기술하겠다"고 밝혔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 제작은 국사편찬위원회가 맡는다. 국사편찬위는 집필진을 꾸려 올해 11월부터 내년 11월까지 1년 동안 교과서를 집필한다. 교과서가 만들어지면 2017년부터 전국 중·고등학생들은 역사·한국사를 국정교과서로 배우게 된다.

정부, 산업화·근대화 재조명 추진할 듯

야당과 시민·사회·교육계는 교과서 국정화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국정 한국사 교과서에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벌써부터 교과서 집필을 맡은 국사편찬위에 대한 중립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은 5공화국 시절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가 주도한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미화한 국정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질 때 국사편찬위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논란이 불거졌을 때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국교직원노조 관계자는 "정권 입맛에 맞지 않으면 좌편향으로 내몰리는 마당에 학자적 양심을 가진 이들이 국사편찬위 집필진으로 나설 리가 없다"며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던 우편향 인사 주도로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가득한 교과서가 탄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황 부총리가 산업화·근대화 재조명을 언급한 만큼 국정교과서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하는 내용이 대거 담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정교과서 발행까지 사회적 갈등 잇따를 듯

야당은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을 "역사 쿠데타"로 규정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교과서 추진계획은 친일을 근대화로 미화하는 친일교과서, 독재를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찬양하는 유신교과서, 정권 입맛에 맞는 정권맞춤형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표를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이날 정오께 광화문광장에서 국정교과서 발행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당 차원에서 국정화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촛불집회를 개최하는 등 원내외 투쟁을 병행할 방침이다.

정의당은 국정교과서 도입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은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반역사적·반민주적·반민생적 폭거"라며 "역사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범야권·시민사회·국민과 함께 반드시 국정교과서를 저지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친자본 극우세력들은 노동개악으로 시민들의 노동력을 지배하려는 시도에 더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로 역사의식까지 지배하려 한다"며 "민주노총은 독재교과서 도입과 노동개악을 시민들과 연대해 반드시 막아 낼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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