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원그룹 주력 계열사인 남영전구 광주공장 설비 철거작업에 투입된 노동자들이 집단 수은중독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근로자가 한꺼번에 수은에 중독된 사례는 2000년 폐기물처리업체에서 3명의 중독자가 발생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맹독성 물질인 수은에 대한 정부의 관리체계가 너무 허술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1일 <매일노동뉴스>는 광주공장 설비 철거작업에 투입된 김용운(60)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산업재해 신청서를 입수했다. 10년째 철거업무를 한 김씨를 비롯한 노동자 6명은 올해 3월 남영전구 광주공장 설비 철거작업에 투입됐는데 모두 수은에 중독됐다. 이들은 수은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작업을 했고, 원청과 하청 누구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 조명생산업체인 남영전구는 세계 50여개국에 납품하고 있다. 지난해 7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남영전구는 광주공장 형광등 생산공정을 일부 철거한 뒤 물류센터로 이용할 계획이었다. 남영전구는 지하와 지상 1층의 생산공정 철거작업을 우리토건에 맡겼다. 노동자들은 일급 25만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철거작업에 투입됐다. 노동자들은 지상과 지하에서 산소절단기로 생산설비를 자른 뒤 공장 밖으로 옮기는 일을 했다.

김씨는 "설비를 자르고 나면 은색 액체 덩어리가 떨어졌고, 바닥에서 물방울 같은 주먹만 한 액체 덩어리를 수시로 목격했다"며 "은색 액체덩어리는 수은"이라고 증언했다.

실제 조아무개씨 등 노동자 3명은 철거작업을 시작한 지 4일 만에 수은중독으로 의심되는 증상으로 일을 그만뒀다. 김씨와 서아무개씨는 구토·피부발진·손발 저림을 참으며 철거작업을 마무리했다. 그런 뒤 김씨는 원인 모를 통증과 피로를 호소하며 병원을 전전했다. 결국 6월26일 원광대병원에서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통해 수은중독 판정을 받았다.

김씨의 혈액에서는 정상인의 30배를 웃도는 리터당 163마이크로그램(163㎍/ℓ)의 수은이 검출됐다. 김씨와 동료 한 명은 7월 근로복지공단 광산지사에 산재를 신청했다.

원·하청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남영전구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형광등 생산이 3년 전에 중단돼 광주공장에 수은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하청업체인 우리토건 관계자는 "남영전구가 잔류 수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며 "수은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맹독성 물질 집단중독이 일어났는데도 사실관계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산재예방지도과 관계자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수은중독 사건을 몰랐다”며 “근로복지공단이 사건을 알리지 않았고, 사업주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허술한 수은 관리체계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 화학물질 배출·이동량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남영전구의 수은 이동량·대기배출량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02년 근로자 수은중독 사례가 보고된 이후에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 숨은 산재가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정부는 지난해 ‘수은에 관한 미나마타협약’에 서명했다. 내년 국내 발효를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수은 관리체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매년 실태조사만 벌이고 있다. 지난달 11일에야 미나마타협약 내용을 반영하기 위해 잔류성유기오염물질 관리법(잔류성물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되지 않은 상태다. 화학물질관리법상 유독물질인 수은 관리에 허점이 드러난 만큼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집단 수은중독과 관련해 원·하청이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을 위반했는지도 조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미나마타협약]

수은 생산부터 사용·배출·폐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2013년 10월 채택한 협약이다. 미국·우루과이 등 12개국이 비준했고, 한국을 포함한 128개국이 서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