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종식 공인노무사(의연협동노동센터장)

노동자협동조합은 우리 사회 산업구조와 노동현실에서 특별하면서도 한편으로 낯선 존재다. 사회적 경제에 대해 희망과 의구심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노동자협동조합을 바라보는 시선도 정반대 흐름이 교차한다. 노동자협동조합의 국제연맹인 국제노동자협동조합연맹(CICOPA)이 정의한 노동자협동조합의 목적은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 조합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부를 생산하는 것, 인간노동을 품위 있게 하는 것, 노동자들의 민주적인 자가경영을 가능하게 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목적이 말해 주듯 노동자협동조합은 일하는 사람들의 꿈과 좌절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비즈니스와 운동을 조화롭게 ‘함께’ 해야 한다. 노동자협동조합 하면 ‘비즈니스’와 ‘운동’ 이미지가 모두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국 맨체스터는 산업혁명 당시 중요한 면직물 공업도시였지만 1840년대 불황기에 노동자들은 겨울철에 덮을 모포가 없을 정도로 참상을 겪었다. 이런 운명을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은 1844년 최초의 근대적 협동조합인 생활협동조합 로치데일 공정선구자조합을 설립했다. 로치데일과 로버트 오웬의 숨결이 남아 있는 맨체스터에 수마(SUMA)라는 노동자협동조합이 있다.

SUMA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한 노동자협동조합이다. 유기농 및 채식주의 식품유통업을 한다. 직무순환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이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시급을 받고 있다. 150여명의 노동자 조합원이 별도의 경영진이 없이 총회 등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식명칭은 'Triangle Wholefoods Collective'다. SUMA는 브랜드다. SUMA의 미션은 “좋은 먹거리를 팔고 노동자들에게 협동조합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로 요약된다. 구체적으로 “채식주의 식단을 더 많이 팔고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더 많이 고용하고 더 많은 월급을 주는 것”이 SUMA의 존재이유다.

2015년 영국의 법정 최저임금은 시간당 6.5파운드(약 1만1천원)다. 최저임금을 받는 영국 노동자는 전체 노동인구의 약 5%인 120만명이다. 유통업과 접객업에서는 전체 사업장 노동자의 약 30%가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다. 유통업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주로 최저임금을 받는 6~18개월 파견계약직이다. 반면 SUMA는 최저임금의 두 배인 시간당 13파운드(약 2만2천원)를 지급하고 있다. 예비조합원을 제외하고는 전원 정규직이다.

같은 시장, 같은 업종에서 유독 SUMA가 안정적인 일자리와 두 배의 임금을 지급할 수 있는 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식품유통업 노동은 수천 가지 식자재 품목을 수령해 분류·패킹한 뒤 적재·배송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전산화와 기계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람이 노동 과정에서 정교하게 맞추고 실수를 줄이는 것이 생산성 향상의 핵심 요소다. 다른 곳처럼 최저임금에 6개월 비정규직을 사용하면 실수가 잦고, 운송기사들은 책임지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SUMA는 개별노동과 협동노동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소비자에게 밀착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생산성 향상만으로 두 배의 임금을 주는 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두 번째 배경, 즉 ‘일’을 정의하는 방식이 힘을 발휘한다. SUMA의 리더들은 “일에는 경영참여가 포함돼 있다. 높은 임금을 받는 경영진이 없으니 모든 사람들의 임금이 높아질 수 있다”며 “대신 그만큼 책임을 나눠야 하고, 그걸 안 하겠다면 일을 덜 하는 것이므로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없음은 물론 함께 일하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노동자 조합원들은 동일노동에 필요한 세 가지 업무능력을 갖춰야 한다. 첫 번째는 “아주 일상적인 업무, 머리 안 쓰고 할 수 있는 일”이고, 두 번째는 “조직하는 일로 고객의 주문을 받아 정리를 한다든지, 창고정리를 한다든지 머리를 써서 해야 하는 일”이며, 세 번째는 “일을 개선하고 향상시키는 일, 업무프로세스를 바꾸는 창조적인 일”이다. 예비조합원 기간 동안 “스스로의 책임에서 세 가지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일을 만들어 가는 방식”으로 훈련이 실시된다.

SUMA의 사례는 노동자협동조합의 목적이 현실에서 실현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 사회에서도 10년 넘게 노동자들이 경영하고 있는 노동자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 주식회사에서 노동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해피브릿지협동조합, 사납금 없는 한국택시협동조합이 화제가 되고 있다. ‘노동이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노동운동과 노동자협동조합운동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때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