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인 한가위가 바로 앞에 다가왔다. 추수의 계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그야말로 호시절이다. 곡식 지을 땅 한 뙈기 없는 노동자들도 등 비빌 가족 품을 찾지만 그마저도 어려운 이들도 있다. 2015년 한국은 취직 못하고, 해고되고, 하루살이 목숨으로 사는 노동자들로 넘쳐 난다. 명절에 더 바쁜 노동자도 있다. 노동자들의 추석 얘기를 들었다.


또 다른 가족들 있는 일터로 돌아가고파  

▲ 김영(대학생)

추석이라고 하면 가족이라는 말이 많이 생각난다. 고향이 전주고 열아홉 살부터 독립해서 그 말이 남다르다. 나는 2013년 12월부터 롯데호텔 뷔페식당에서 일하다 지난해 3월 해고됐다. 롯데는 매일 일용직 근로계약을 다시 쓰게 했고 해고통보는 당일 전화로 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가족보다 직장 동료들을 더 많이 봤고, 그만큼 정도 많이 쌓였다. 이런 게 또 다른 가족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일터에서 내쫓긴다는 게 너무 마음 아팠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을 때, 롯데측이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소송을 취하하고 언론에 고발하지 말고 복직을 포기하면 3천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거절했다. 복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청년들이 어처구니없이 하루아침에 내쫓기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다.

그 후 롯데측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져 서울고등법원에 항소를 했는데 걱정이 많이 된다. 당장 공부하면서 생계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긴 재판을 진행한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대기업이 청년들을 일용직으로 쓰다 바로 해고하는 게 정당성을 인정받는 선례로 남는다.

이번 추석연휴에도 고향에 못 내려가고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내가 일했던 식당도 연휴에 일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가족은 못 보고 다른 사람들의 가족에게 열심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 사람들이 더는 쉽게 해고되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자들이 꿈과 희망 가질 수 있어야 

▲ 배삼영 사무연대노조 농협중앙회지부장

지난 1989년 NH농협중앙회 정규직으로 입사해 근무하다 IMF 외환위기 때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2008년 해고됐다가 복직했고, 2010년에 두 번째 해고된 후 지금까지 6년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매일 서대문구 농협중앙회로 나와서 투쟁하고 있다. 회사는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다. 최근에는 회사가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해 조사도 받았다.

복직투쟁 처음 2~3년은 이런저런 생각도 들었는데 6년차로 접어드니 때로는 멍하기도 하고, 때로는 투쟁을 계속해야 하나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몇 년씩 장기투쟁하는 게 고착화되고, 직업처럼 여겨지는 지경에까지 왔다. 힘들고 외롭다. 사용자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얼마 못 버티겠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상황을 감추거나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다. 투쟁은 빨리 끝내야 한다.

2000년대 비정규직이라는 게 만들어지면서 비정규직 보호대책도 나왔다. 10여년이 흐른 지금, 비정규직 보호라는 단어조차 없어지고 정규직마저 위협받는 시대가 됐다. 이 땅의 노동자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될지, 걱정스럽다.

정치권과 자본이 바뀌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은 노예시장과 같이 노동자들이 설 수 없는 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노동자들이 꿈과 희망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노동에 투쟁에, 우리도 쉬고 싶다 

▲ 김진숙 홈플러스노조 서울본부장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추석이 되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남들처럼 두 발 뻗고 쉬어보고 싶다.

명절이 다가오면 유통업 노동자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더 힘들게 일해야 한다. 회사는 대목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초과근로를 강제하고, 이때가 되면 상품권 강매와 같은 부당한 압박도 늘어난다.

더구나 대형마트 업계 2위 홈플러스는 최근 매각이 이뤄지면서 고용불안 문제까지 겹친 상태다. 사회적 논란에도 영국 테스코 자본은 먹튀 매각을 강행했고, 회사를 인수한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는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마저 외면하고 있다.

홈플러스에 노조가 만들어진 지 올해로 3년째인데 첫해 추석에는 상품권 강매 반대 투쟁, 둘째 해는 임금인상 천막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올해는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선 상태다.

우리도 남들처럼 쉬고 싶다. 하지만 최저임금 받고 일하면서 고용까지 불안해지니 투쟁하지 않고서는 생활을 유지할 방법이 없다. 홈플러스 매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올해 받는 시급은 5천700원이다. 회사는 임금협상에서 지금보다 110원 정도 올려주겠다고 한다. 우리들이 발 뻗고 쉴 수 없는 이유다.

가족에게 월급봉투 줄 날 기다린다 

▲ 임성국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연세재단빌딩분회 조합원

연세세브란스빌딩 시설관리노동자로 일하다 올해 3월1일 해고됐다.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7명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고 200일 넘게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연세대와 연세대재단 관계자 집 앞에서 노숙농성도 벌이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삭발식을 하고 반드시 직장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했다.

복직투쟁 과정에서 연세대와 분회는 학내 시설 관리업무에 해고자들을 채용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연세대 재단이 합의를 뒤집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일하고 월급 받던 때로 돌아가는 길을 끝내 막고 있다.

복직투쟁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은 생계를 꾸리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있다. 추석 명절에도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삭발한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여 주기도 싫고 가장 노릇을 못하는 상황이 미안해 농성장을 지킬 생각이다. 7명의 조합원들이 농성장을 돌아가며 지킨다. 우리에게 명절은 없다. 추석 당일 농성장에 다 같이 모여 합동 차례라도 지낼 예정이다.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의 우리는 평생 시설관리노동자로 살아 왔다. 나이도 있고 경험도 없어 다른 곳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일하고 살고 싶다. 비정규직 얇은 월급봉투라도 집에 들고 가고 싶다.

추석 앞두고 파업, 유난히 힘들다 

▲ 마정석 코엔텍노조 위원장

추석 연휴를 앞두고 21일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벌써 4일째를 맞았다. 명절 기분을 내고 싶지만 이번마저 회사에 밀리게 되면 조합원들의 고용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 같았다. 회사는 10년 넘게 적자 경영을 한 적이 없다.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매년 흑자를 냈다. 곧 새로운 공장이 시험가동에 들어간다.

직원이 더 필요한 건 누가 봐도 틀림없다. 그런데 회사는 6인1조로 운영되는 체계를 5인1조로 줄인다고 한다. 생산라인이 자동화됐다면 이해하겠다. 하지만 설비도 노후화됐고 직원들이 꼼꼼하게 작업해야 한다. 손이 많이 가는데 인원을 줄인다는 것이다.

회사는 “지금은 흑자지만 10년 후를 대비해서 인원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3조2교대가 4조3교대로 바뀔 경우 추가 인원도 필요하고, 새 공장 가동을 위한 인원도 필요하다.

회사는 이번에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노조와 상의하지 않았다. 노사관계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 회사가 일방적으로 하기보다 노조와 대화로 풀어야 한다. 그래야 노사가 상생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을 개혁한다고 한다. 앞으로 노동자도 노조도 많이 힘들어질 것 같다. 평년에 비해 파업으로 답답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추석연휴가 끝나면 노사관계도 노동자도 좋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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