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 위원장

개인사에서도 ‘내 탓이오’인지 ‘네 탓이오’인지 가끔씩 지나온 과거를 되짚어 볼 때가 있다. 반성과 성찰이 삶의 품격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를 계기도 있는 것 같다.

최근 몇 년간 개인적으로 힘겨웠던 시기를 견디며 지천명을 맞이했다. 생의 반환점을 돌아섰으니 되돌아봐도 흉이 안 되는 시기다. 노동자의 삶을 시작하고 첫 해고를 경험한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그동안의 삶과 운동적 공과를 살펴보면 성과보다 한계와 오류로 인해 회한에 사무친다. 외람되지만 언제 이렇게 긴 세월을 살았나 싶을 정도다. 앞을 감히 내다보면, 널뛰기 같은 인생이었어도 ‘로또 당첨’ 수준의 변신이 안 되는 한 노동자의 길에 딱히 비약적인 변화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더 나빠지지 않기 위해서 과거를 통한 현재와 미래 읽기를 자연스럽게 해 봐야 하는 시기일 듯하다. 고단하게 30여년을 달려온 세월에 견주어 바꾸려 했던 세상과 시대는 얼마나 변화시켰나.

이러한 개인적 상황과 맞물려 올해 묘하게도 노동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까지 갖게 됐다. 올해 봄 최도은의 ‘노래로 듣는 노동운동사’ 강의로 시작해서 여름의 노동운동사 특강 ‘잃어버린 기억, 되살리는 투쟁’과 <매일노동뉴스>의 광복 70주년 특별좌담 사회에 이어 가을에 임흥순 감독의 역작인 ‘위로공단’ 관람까지 이어졌다.

역사 공부, 조작의 시대를 꿰뚫어 보는 법

노동자들의 투쟁하는 현장에서 노래로 함께해 왔던 최도은의 강의는 웃음과 눈물이 배어 있었다. 노동운동사 특강은 ‘노동자 역사인식과 노동운동사’(박준성), ‘식민지시대 노동운동사’(최규진), ‘전평과 해방 이후 노동운동사’(안태정), ‘80년대 이후 노동운동사’(유경순)로 구성됐으며 우리 시대 최고 강사진의 열강이 이어졌다. 요청이 많아 자료집을 추가로 제작해야 할 지경이다. 역시 역사는 어떤 관점과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맹아기, 일제강점기, 해방 전후까지 노동의 역사를 옷깃 여미며 배우는 자세로 공부했다. 스스로 사회과학적 인식을 하면서 살았던 현대사는 환희와 좌절의 상황에 곧바로 몰입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체제 한국사의 한 부문으로서의 한국노동운동사와 노동운동사를 통해 바라보는 근현대사는 관점과 입장에 따라 방향이 전혀 달라진다. 논점이 많이 생기고 그만큼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고 견해가 일치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소위 팩트부터 조작됐던 일제와 분단, 군부독재 시대를 거쳤으니 역사 왜곡은 비일비재하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는 잔재수준이 아니라 주류를 형성해 면면히 이어져 왔으니, 노동의 역사는 대부분이 ‘야사’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매일노동뉴스>가 주최한 광복 70주년 특별좌담에서는 박준성 역사학연구소 연구원과 이승원 한내 사무처장의 일갈이 이어졌다. 역사적 자료의 축적을 위한 관심과 지원 문제, 노동자의 자기 역사 쓰기 문제, 노동운동사 교육 문제 등에서 지나온 시기를 평가하고, 현재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책과 제언이 제시됐다. 문제는 여전히 실천의 영역에서 얼마나 자기 결단 속에서 사업화하느냐다.

사실 노동운동사 공부는 교과서에 없는 내용을 재인식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다. 언젠가 ‘병아리 눈물만큼’ 언급되는 노동의 역사가 교과서와 강의시간 배정에서 확연히 증가하고 중요도가 높아지는 세상을 변함없이 기대한다.

그런 측면에서 노동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특강과 토론이 이어지고 문제작이 출현하는 것은 기쁨을 배가시킨다. 유감스러운 시대의 어둠이 짙어질수록 역사적 관점을 갖고 상황을 인식하고 미래에 대해 전망해야 현실의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

노동탄압 수출국가, 현실은 얼마나 달라졌나

얼마 전 조용한 토요일 아침에 관람객이 소수였던 필름포럼에서 휴먼 아트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을 보며 위로인지 아픔인지 모를 속울음을 삼켰다.

임흥순 감독이 3년 동안 2만2천킬로미터의 기나긴 제작 여정을 통해 완성한 작품이다. 지난 40여년 동안 그 수많았던 노동자들 중 대표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애환을 담는 데만 그랬다는 것이다.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바뀌었고, 공순이와 공돌이는 미생1과 미생2라는 비정규직으로 시대의 암울한 호명을 받고 있다. 심지어 지난 시대 구로공단이 현재의 캄보디아로 장소를 옮겨 갔다. 구로공단의 노동자 탄압을 수입한 캄보디아에서는 노동자들이 공수부대의 총칼에 희생되는 참상을 겪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보편적 공감 속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명제를 눈물 흘리며 가슴에 새길 수밖에 없는 장면들이었다.

한국노동계급은 지난 30∼40년 동안 노-자관계를 얼마나 변화시켜 왔는지, 비하적 단어의 대명사였던 ‘공돌이와 공순이’가 ‘비정규직’으로 바뀐 것 말고 노동계급 내의 분절을 극복하며 단결을 확대 강화시켰는지 곱씹었다. 반동의 시대도, 부족한 나의 역정도 유감이다.

독자들께서도 박준성의 노동자 역사인식과 노동운동사, 최도은의 노래로 듣는 노동운동사, 위로공단을 통해 과거를 반추하며 변함없이 유감스러운 반노동의 시대를 재설계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현존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생산의 주역이다. 맞다. 그런데 노동자가 역사와 세상의 주인은 맞나. 맞다면 몰역사적이며 시대 역행적 상황이 지속되는 현실을 어찌할 것인가.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옛날이야기’를 읽고, ‘옛날에 얽힌 노래’를 듣고, ‘옛날을 담은 필름’을 보는 내내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다. 과거를 반추하면서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것은 역사 공부의 기본적 이유다.

올 여름 노동운동사 교육에서 들었던 얘기는 우리 시대에 내리는 준엄한 호통으로 느껴졌다. “과거 망각은 현실 배신으로 이어진다.”

‘노래로 듣는 노동운동사’, ‘노동운동사 특강’과 ‘위로공단’까지 역사를 반추하며 세 번의 각박한 계절을 맞지만 미래설계의 기회도 가졌으니 나에게는 일거양득이다. 자본천국의 시대는 유감이지만 노동이 존중받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함께 꾸는 꿈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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