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명 한신대 교수(민교협 상임의장)

사회보장정보원. 일반인들에게 약간 생소한 이름이다. 이전의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이 올해 7월1일 이름을 바꿔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기관은 소위 정부 3.0시대를 대표해 보건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고 복지정보를 관련기관과 국민에게 제공해 원활한 복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업무를 한다. 사회보장원은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꽤나 중요한 공공기관이다.

그러나 이름은 바꿨지만 정보개발원 시절에 범한 오점을 그대로 갖고 있다. 2012년 말 비정규직으로 뽑은 상담원 42명을 계약만료를 하루 앞두고 무참히 해고해 버린 일이다. 사회보장원은 국민에게 보건과 복지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방자치단체와 사회복지시설을 연계해 효과적인 복지업무가 이뤄지도록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해 왔다. 저소득층을 포함해 국민이 복지서비스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렇게 중요한 업무를 함에 있어 상담원들이 일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담원들은 제대로 된 업무지식을 가지고 지원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기민하게 제공해 주는 일을 해 왔다. 그들에게는 많은 교육과 훈련이 요구된다. 그에 대한 시간투자도 많았다. 시민을 상대로 상시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그만큼 회사에서 그들에게 합당한 대접을 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비정규직이었던 상담원들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재계약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회사 경영책임자도 계약이 지속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소위 재계약에 대한 기대권이 노사 양측의 신뢰 속에 형성된 것이다. 현행법대로 하자면 그들은 재계약과 더불어 당연히 정규직인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야 했다. 2012년 12월6일 회사측은 근로계약종료 통보서를 보내면서도, 일종의 요식행위일 뿐이라고 변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는 노동자들과의 신뢰관계를 싸늘하게 저버렸다. 같은달 28일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 공고를 내면서, 계약종료 통보를 받은 사람 중 42명을 갑작스럽게 해고해 버렸다.

노동자를 경악시킬 만큼 사회보장원의 전신인 정보개발원의 해고 과정은 크게 잘못된 부분이 있다. 첫째, 계약해지 통보 과정에 문제가 있다. 실질적 계약만료는 12월31일이었는데, 해고통지는 사실상 하루 전날인 12월28일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공기업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아무런 대책 없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몬 것이다. 12월6일 계약만료통지를 이미 했다고 주장하나, 그들은 이 행위를 재계약 기대권을 전제로 한 일종의 요식행위, 즉 재계약을 위해 형식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그야말로 사측은 공공기관답지 못하게 힘없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기만적인 행각을 벌인 것이다.

둘째, 2015년 1월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판결을 했다.

“기간제법 시행 이전부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된 경우 갱신기대권이 인정되고, 기간제법 시행 후에 평가절차 등을 통해 그러한 정당한 기대권을 제한할 수 있으나, 평가가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경우 갱신거절은 효력이 없다.”

사측은 평가 기준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재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담원들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선업무를 담당해 왔지만,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설명 없이 거리로 추방돼 버렸다.

그간 사회보장원측은 이전부터 해고된 노동자들에게 계약제로 신규입사하라고 종용했다. 2012년 해고 시기에는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으로, 그 이후에는 1년짜리 계약직으로 말이다. 다시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비정규직 인생’의 원점으로 회귀하라는 것이다. 생존 때문에 몇 명은 굴욕을 감내하고 재입사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 명의 노동자가 끝까지 남아 1천일 가까이 노동조합을 지키며 싸우고 있다. 그들의 요구는 간명하다. 비정규직 재입사가 아니라 회사측이 잘못을 인정하고 올바로 복직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원칙 있게 복직해 법에 보장된 최소한의 권리나마 지키고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다.

사회보장원은 복지사회의 질적인 향상을 기하는 공기관으로서 과거에 힘없는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범한 그들 스스로의 오점을 깊게 성찰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싸움도 9월23일이면 1천일을 맞는다. 참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이다. 무엇 때문인가.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은 가장 소박한 원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원칙 있게 그들의 일자리로 돌아가 자부심을 가지고 '복지 대한민국'을 향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보장원은 미래 복지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공공기관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고된 노동자들의 이유 있는 항변을 외면한 채 과거의 오점을 덮어 버리기 위해 발버둥친다면, 그들 스스로 가장 처참한 자가당착에 처할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공공기관으로 사회보장원이 바로 서려면 과거의 오점을 깨끗이 씻고 비정규직 문제를 원칙 있게 해결해 함께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모델을 보여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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