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놓고 벌였던 노사정 협상이 결국 타결됐다. 협상 과정도 그렇지만, 타결 이후에도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노총이 논의 불가사안이라며 버텼던 일반해고 요건 완화와 취업규칙 변경지침 완화가 합의문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장기과제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해석은 분분하다. 새누리당은 합의에 담긴 내용에 더해 친기업적 법안을 내놓았다. 비정규직 규제완화도 들어갔다. 한국노총은 발끈했다. 야당도 입법 불가를 외쳤다. 민주노총은 23일 파업을 벌일 계획이다. 합의는 됐으나 갈등은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노사정 합의 이후, 과제는 무엇인가.


정부·여당 입맛 맞는 정책 추진 급물살, 후속 협의 회의적 

▲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그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정당성이 있는지 의심받아 왔다. 이번 합의도 형식적으로는 사회적 합의지만 합의라는 조건을 충족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소수 대기업 10% 노동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 아니고 취약계층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한국노총이 서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가 든다.

지금의 노사정위는 정부가 주도하기 때문에 산술적 균형 논리로는 정부 정책의 거수기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비정규직·청년·여성을 대변할 수 있는 기구로 모양새를 다시 갖춰야 한다. 논의 의제도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심각한 불균형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전기를 마련하자는 정도는 돼야 사회적 대타협의 의미를 갖는다. 노사정이 다시 기간제·파견 사용기간·범위 확대를 포함한 비정규직 관련 법·제도 개선과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을 만드는 후속논의에 착수한다고 하던데, ‘협의’하기로 합의한 이상 이견이 좁혀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노사정 합의문을 보면 일반해고·취업규칙 문제도 엄청나지만 기간제·파견 등 정부·여당이 자신들 입맛대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노동시간단축이나 탄력적근로시간을 비롯해 노사가 지난 10여년 동안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사안도 통째로 다 내 줬다. 대법원에서 판결대로 파견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합법화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런 사람들과 협의해서 무엇을 더 보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후속협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회의적이다.

추상적인 합의내용 구체화해 2단계 합의 필요 

▲ 박지순 고려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존 노사정 논의 틀을 깨지 않고 노사정이 합의를 이뤄 낸 것은 성과다. 다만 합의에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2단계 합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합의 정신을 살리면서 각론을 구체화해야 한다. 특히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청년고용 촉진 관련 내용은 합의 내용이 다소 추상적이고 실효성에도 의문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대화 계획만 합의된 것이지 구체적인 내용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그간 논의된 것을 토대로 신뢰와 책임을 갖고 노사정이 마무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근로시간단축이나 통상임금 범위처럼 제도의 불확실성이 있는 부분들은 빨리 해결해야 한다. 이미 상당히 의견접근이 됐다. 다른 과제와 묶어서 처리할 것이 아니라 준비가 되는 대로 사안을 분리해 빨리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 다른 내용과 묶어서 처리하다 보면 어렵게 이뤄낸 타협을 좌절시킬 수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나 사회안전망 관련 합의는 신속하게 입법해야 한다. 그리고 난 다음 비정규직 문제나 일반해고 관련 합의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

노사정 합의 정신 이어 가려면, 정부-경영계가 믿음 보여야 

▲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

이번 노사정 대타협은 노사정 각 주체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노동개혁의 원칙적인 방향에 공감하고 큰 틀에서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1998년 2월 IMF 외환위기 직후에 노사정위원회가 발족되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던 이래 18년 만에 다시 어렵게 내딛은 발걸음인 만큼 불씨를 잘 살려야 할 것이다.

노동개혁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정 간 충분한 협의를 통해서 함께 만들어나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 세부적인 정책과 구체적인 쟁점에 있어서는 이후의 논의를 통해서 조율하고 협의해서 내용을 채워나갈 수 있도록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놓은 만큼 이번 대타협이 앞으로의 사회적 대화를 이어 가는 본격적인 시작이 되어야 한다.

노사정 간의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특히 정부와 경영계가 노동계에 먼저 믿음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통해 청년실업을 해결하고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최저임금 계층 보호를 위한 적극적 정책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기업 역시 구조개혁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겪게 될 피해를 최소화하고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분명한 결단의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환노위 야당 의원 역대 최강, 반드시 막아 낼 것  

▲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한국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하는 사람들, 노동자들이 믿고 있는 것은 “힘들지만 열심히 일하면 그래도 먹고살 수는 있다”는 일종의 신뢰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노사정 야합은 2천만 노동자들에게 ‘쉬운 해고, 낮은 임금, 비정규직 확대’로 한국 사회 근본 시스템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마저 붕괴시켰으며 희망을 강탈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5대 주요 입법안이 전혀 새롭지 않다. 전경련과 경총 그리고 그들의 이익을 지켜 주는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가 끊임없이 추진하고자 했던 방향과 대부분 일치한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한국 사회의 다수 평범한 직장인들을 임금노예로 만들려는 시도를 막아 낼 것이다. 정부와 여당의 노동개악 밀어붙이기의 공이 국회로 넘어왔다. 그 어느 때보다 노동계를 위한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때다. 19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국회의원들이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모두 노동 분야에 대한 식견이 높다. 정부와 여당의 5대 악법을 기필코 저지해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겠다.

국회 내 사회적 대화기구와 최고임금제 추진하자  

▲ 심상정 정의당 의원

새누리당이 지난 16일 노사정 합의 하루 만에 5개 노동법률 개정안을 당론으로 발의했다. 그러면서도 노사정 합의에 미치지 못하거나 심지어 반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타결할 때 강조했던 약속과 협의는 헌신짝처럼 쉽게 버려졌다.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합의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노동개혁을 군사작전 방불케 하는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는 자체가 비정상 중의 비정상적인 일이다. 청년고용 확대와 진짜 노동개혁을 위해 3가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응급조치가 필요하다. 정기국회 제1호 법안으로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한다.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서는 정부가 강력한 정책의지를 가지고 솔선수범하고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전제돼야 한다. 공공기관과 300인 이상 대기업이 매년 정원의 5% 이상의 청년 고용을 의무화하고 공기업과 대기업에서 연내 20만 청년일자리를 만드는데 협조해야 한다.

다음으로 진정성 있는 고통분담을 위해 고위직 연봉자에 대한 최고임금제가 도입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며칠 전 청년일자리펀드 조성을 제안했고 1호로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개인의 선의에 의존하는 일회성 및 전시성 대책으로 청년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고위직 연봉자 임금에 대해 상한을 두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

마지막으로 진짜 노동개혁과 실효성 있는 청년고용대책 마련을 위해서 국회 내 사회적 합의기구가 구성돼야 한다. 국회는 1천800만명에 달하는 노조 밖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책임질 의무가 있다. 노사정 등 이해당사자들은 물론 그동안 노사정위에서 배제돼 온 비정규직과 청년들, 그리고 시민사회까지를 두루 포함한 사회적 대타협기구가 구성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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