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형님들! 삼촌들! 이제 물러나세요.” 무슨 청년단체가 민주노총 앞에서 이렇게 외치며 기자회견을 했다는 심란한 세상이다. 청년일자리는 임금피크제로 늙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서 만들 수 있다는 권력의 노동개혁 광고가 요란한 이 나라에서는 별일이 다 일어난다. 민주노총이 35시간 법정근로시간 단축을 말했다. 민주노총이 청년단체와 간담회에서 꺼냈다는 노동시간단축 방안이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청년유니온·알바노조 등 청년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청년실업 해법 모색을 위한 제안’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단계적인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청년고용 플랜을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현재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1단계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해 초과노동을 최대 12시간으로 제한하고, 2단계로 초과노동 포함해 1주 48시간을 넘지 않도록 강제하며, 수년 내에 법정근로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5일에는 “실노동시간을 연 1천800시간으로 획기적으로 줄이면 그만큼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기자회견을 열어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단축으로 청년고용 문제를 해결하자며 이렇게 제안했다고 나는 노동뉴스를 읽었다.

2. 그런데 주 35시간 법정근로시간이라니 공허하다. 청년이든 장년이든 이 장시간 노동의 나라에서 일자리는 노동시간단축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노동시간단축을 권력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대응책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지극히 타당한 것이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조합의 총연합단체라면 마땅히 노동시간단축을 주장할 일이다. 임금피크제 등으로 늙은 노동자의 임금 삭감이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내세우는 권력의 선전공세에 맞서 노동시간단축을 제안하고 행동해야 한다.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일자리 늘리기가 이 나라에서 일자리 문제의 해법이어야 하니 노동시간단축으로 대응하는 것은 올바르다. 그런데 주 35시간 법정근로시간이라니 정말 공허하다. 법정근로시간을 훨씬 초과한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이 세계 최장 수준의 노동시간의 나라에서는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소용없는 일이다. 기껏해야 연장수당 등 법정수당 기준의 근로시간을 단축할 뿐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이 나라에서 오늘 법정근로시간 단축 요구는 임금인상 요구이지 노동시간단축 요구가 되지 못한다. 적어도 법정근로를 초과한 장시간 노동이 판을 치는 이 나라에서는 법정근로시간이 아니라 실제로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지난번 민주노총 직선제 임원선거에서 후보 공약에 법정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겠다는 것이 있었다. 그때도 나는 그 후보의 공약이 공허하다고 했었다.

3. 법정근로시간. 누가 뭐래도 법이 정한 최장의 근로시간, 그야말로 노동제다. 그걸 이 나라에서는 50% 가산임금을 지급받는 기준이 되는 노동시간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떠들어 대도 법정근로시간이 노동제라는 것을 지울 수 없다. 그 근로시간을 초과해서는 근로할 수 없는 것이 법정근로시간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에서 법정근로시간을 정하고 있다.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해서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근로를 시키면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의 처벌을 받는다(근로기준법 제110조제1호).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 그것이 뭐라도 이를 위반해서 주 40시간을 초과해서 근로하도록 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근로기준법 제50조 위반으로 무효다. 근로기준법 제53조에서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 등으로 당사자 간에 합의하기만 하면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노동법전이 휴지 조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 간에 합의하기만 하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1주간에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시킬 수 있다는 법이 아니다. 근로기준법 제50조는 법이 정한 최장 노동시간을 법정근로시간제로, 노동제로 선언했다. 당사자 간 합의로 근로계약·단체협약, 심지어 취업규칙에서 이를 위반하는 근로시간을 정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러니 그것이 무엇이라도 당사자 간 합의로 근로계약상 근로를 제공하기로 사전에 정하는 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인 1주 40시간을 초과할 수가 없다. 즉 소정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 범위 내에서만 적법하다. 그러니 근로기준법 제53조의 연장근로시간은 이렇게 정한 소정근로시간을 전제로 한 것이다. 수많은 법원의 판결이, 온갖 노동법 교과서가 이렇게 말하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로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 1주간에 12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법을 해석하고서 판결하고 해설하고 있다고 해도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50조가 부정당해야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법정근로시간제를 부정하는 판례와 학설이 부정당해야 마땅하다. 이 칼럼난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렇게 다시 말하고 있다. 근로계약·단체협약 등으로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하는 근로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법정근로시간 제도이지 취업규칙 등으로 사용자 일방이 정한 근로시간만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근대의 법 세상에서는 원칙적으로 당사자 간 합의 없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근로시간을 정할 수가 없다. 당연히 근로계약·단체협약, 심지어 취업규칙 등 그것이 뭐라도 근로시간을 정함에 있어서 당사자 간 합의가 있어야 한다. 당사자 간 합의로 정한 근로계약·단체협약 등에서 정한 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법정근로시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근로기준법 제53조는 특별한 예외로서 당사자 간 합의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그 사유와 절차에서 특별한 예외로서 당사자 간 합의를 파악해야만 한다. 법해석에서 조문 간에 모순이 있다고 예외로 원칙을 송두리째 부정해서는 안 된다. 예외규정은 원칙규정이 일반적인 법·규정으로 존재하도록 해서 원칙이 전면적으로 훼손하지 않는 그야말로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에 더해 연장근로로 12시간을 할 수 있고, 그리고 노동부는 한술 더 떠 휴일근로는 이와 별개로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사실상 노동시간의 한도가 없는 그야말로 무제한의 노동시간으로 운영해 왔다.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50조를 휴지 취급해서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던 것이다.

4. 이 지경인 나라에서 민주노총은 노동시간단축을 말하고 있다. 이 법정근로시간제를 망각한 나라에서 1단계로 휴일근로를 근로기준법 제53조의 1주간 12시간의 연장근로에 포함해 1주간 52시간으로 하고, 2단계로 이를 1주간 48시간으로 단축하며, 마지막으로 법정근로시간을 주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할 것을 민주노총은 제안했다. 그러나 법정근로시간에 관해서 이 지경인 상태에서는 노동부 등 권력에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12시간 내에 포함하라고 요구할 일도 아니다. 법을 위반한 노동부의 해석은 무시하면 된다. 1주가 7일이라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노사정이든 뭐든 참여해서 노동자권리를 양보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당사자 간 합의로 1주간에 12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근로기준법 제53조다. 이에 대해서는 노동제인 40시간 법정근로시간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폐지하라고 외쳐야 한다. 원칙을 죽이는 예외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행동할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폐지 없이도 행동으로 말할 일이다. 근로기준법 제53조는 분명히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당사자를 대표해서 노조가 합의하지 않으면 쓰레기통에 처박혀야 할 법이다. 사용자가 연장근로에 관해서 합의하자고 하면 합의해 줄 수 없다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는 법이다. 이렇게 노조가 합의해 주지 않으면 될 일인데 그걸 하지 않고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고 그 연장근로를 단축하는 법을 만들라고 주장하고, 법정근로시간을 35시간으로 단축하라는 투쟁을 하겠다고 말하는 건 노조가 당장 행동으로 할 수 있는 걸 외면하고서 하는 변명으로 들릴 수 있다. 민주노총이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실노동시간을 연 1천800시간으로 획기적으로 줄이면 그만큼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노동시간단축 제안은 2013년 기준 연간 노동시간이 2천163시간인 이 나라에서 확실한 청년일자리 대책이 될 수 있다. 굳이 법 개정을 요구할 일도 아니다. 연간 1천800시간은 주 40시간에 연차·주휴일 등을 포함한 휴가·휴일을 법대로, 협약대로, 취업규칙대로 사용하기만 하면 된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 안팎에 불과하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다. 노동조합이 조직돼 있는 사업장만이라도 법정근로시간을 넘어선 연장근로에 관해 사용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매정하게 합의해 주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에 따른 노동조합의 일을 하면 된다. 종전대로 임금 등 노동자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교섭·쟁의 등 노조의 일을 하면 된다.

지금 이 나라에서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노동자권리가 높아서가 아니다. 이렇게 보는 자는 사용자 자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장시간 노동의 나라에서는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세계 최장수준의 노동시간의 나라에서 일자리 부족은 일자리를 위한 노동조합의 일인 노동시간단축을 위한 노동조합의 행동이 부족해서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자권리 삭감 없이 쟁취하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행동 없이 외치는 주 35시간 노동제의 구호는 공허하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