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한국노총이 노사정 협상 중단을 선언할 당시 핵심 쟁점은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취업규칙 지침,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과 함께 기간제·파견근로 사용 규제완화였다. 이른바 5대 수용불가 사안이다. 뒤에는 취업규칙 지침, 일반해고 가이드라인만 의제에서 제외하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일관되게 밝혔다. 당정청이 한국노총을 “청년고용을 막는 기득권 세력”이라고 비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여당은 압박만 했지 타협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저런 소문만 나돌았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지난 26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참여를 결정했다. 복귀에 반대하는 조합원들이 회의를 막아 한 차례 유예시키기도 했다. 협상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뜻이다. 어렵사리 재개된 노사정 협상의 성공조건은 무엇일까.



노동개혁의 핵심은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 

▲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부익부 빈익빈, 청년고용 절벽, 재벌의 부의 독점과 소득 세습. 이런 것들이 한국 사회 양극화의 핵심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한마디로 이것을 바로잡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시장은 생산물 시장의 반영이므로 재벌대기업과 중소기업, 협력기업과 원·하청의 상생과 동반성장을 위한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재벌대기업 개혁과 경제민주화, 노동기본권 보장과 사회안전망 확충이 중심 내용이다.

30대 재벌대기업의 사내유보금 711조원은 각각의 경제주체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과도하게 몰린 것을 제자리로 돌려주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따라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는 아주 사소한 것이다. 말하자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워 공정한 사회와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것이 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올바른 개혁의 방향이다.

올바른 방향 설정 후 구체적인 정책대안은 제대로 된 현실 문제의 진단에서 나온다. 구체적으로 정확한 통계에 기초한 올바른 사실관계 파악과 국민적 공론화를 통해 제대로 된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추진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가장 급한 것이 기울어진 논의구조를 바로잡는 것,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 공정하게 논의하는 일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필요한 것은 조급증을 버리는 것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도 중요하다. 과정이 좋으면 좋은 결과도 예견할 수 있다. 그러나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보다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지난 4월8일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현실이 이를 웅변하고 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커다란 상처를 받고 퇴보의 아픔을 겪을 것이다.

미래 세대 위한 노동개혁 반드시 도출돼야 

▲ 김동욱 한국경총 기획홍보본부장

우여곡절 끝에 재개된 노사정 대화는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 노동개혁은 노동계와 사용자 어느 한 쪽이 이익을 얻고자 해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미래 세대들에게 보다 많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 노동개혁의 목표다. 노사는 이번 대화에 자기들의 이익 추구에만 집중하지 말고 미래 세대와 나라 경제를 생각하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여러 노동개혁 과제 중 노동시장 유연성에 특히 집중해야 한다. 물론 근로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노동시장을 유연화시켜 다양한 일자리를 확대하는 방향의 논의가 지금 더욱 시급하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들이 논의되길 기대한다. 임금피크제 등 몇 가지 이슈가 된 사항들만 논의하는 노사정 대화는 곤란하다.

정부도 타협을 이끌어 내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 강조하면서 노동개혁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대화에서 노사가 각자 이익추구에 전념하지 않도록 운동경기 심판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노동개혁의 본 목표가 달성되는 결과가 도출되도록 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중재자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교착상태 불러왔던 이슈들은 과감히 버려라 

▲ 김동원 고려대 경영대학장

노사정 협상 주체들이 지난번 협상과 같은 전략과 방법을 고수하면 또다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교착상태에 이르렀던 이슈들을 다시 꺼내 봤자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새로운 어젠다나 창의적 해법을 발굴해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지난번 협상은 주체 간 균형감이 부족했다. 주는 것은 받고, 받은 만큼 주는 것이 협상인데 협상주체 간 역지사지의 정신이 부족했다. 노사정 주체 모두 자기 조직의 구성원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과 실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자기 구성원을 설득하지 못하는데 합의에 이를 수 있겠나.

이번 협상에서 각 주체들은 상대 협상팀을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협상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경영계는 노동계 협상자들이 노동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협상안을 제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노동계는 경영계가 기업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협상안을 마련해야 한다. 협상 당사자들끼리 의견을 모았다고 해서 협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협상주체는 이를 전제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협상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재량권이 주어져야 한다. 협상 주체들이 협상용 카드로 쥐고 있는 내용들이 외부에서 공개되고 언론 등에 흘러들어가는 식이라면, 힘 있는 협상이 될 수 없다. 협상 주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논의 불가 의제만큼은 정부가 밀어붙이지 말아야 

▲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한국노총도 논의 불가사항이라고 밝혔지만, 정부가 일반해고 가이드라인과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 지침, 비정규직 문제만큼은 절대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 논의 불가 의제들을 추후 과제로 남겨 두는 식으로 속임수를 써서도 안 된다. 원론적 수준이라 해도 그 내용들이 합의서에 들어갈 경우 노동시장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의제들은 원천적으로 노사정 협상에서 제외하든지, 아니면 합의서에 포함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든지 해야 한다. 노사정위 합의가 다시금 불발되거나 한국노총의 동의를 억지로 받아 낸다면 그 후폭풍이 클 것이다.

한국노총도 이 의제를 받아서는 안 된다. 현재 노사정 협상이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되는데 한국노총도 그에 대한 부담을 지고 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바라는 대로 거기서 미끄럼틀을 타게 되면 한국노총 자체가 안팎으로 겪을 후폭풍도 엄청날 것이다. 현 수뇌부의 리더십도 견디기 힘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도 그런 점은 충분히 알고 협상에 임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현명하게 지킬 것은 지키고 현실적으로 타협할 것은 타협하길 바란다.

사실 지금 노사정 논의구도와 의제가 정부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어서 균형 잡힌 의제들이 제대로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고 하면 노동시장의 안정성과 노동기본권 강화, 비정규직 사용 제한 법제화 같은 심각한 의제들이 포함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현재 구도에서는 노동계가 바라는 의제를 강조하기보다는 나쁜 의제들을 막는 데 주력해야 할 것 같다.

노사가 안 보이는 대화, 서두르면 안 돼 

▲ 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 노사정 대화는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는 대화다. 입법절차가 임박해서 그런 부분이 있지만 노사가 너무 안 보인다. 노사가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화틀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이 주도하면서 패키지 딜을 추진하고 있다. 패키지로 합의한다면 좋지만 그러기에는 장기적으로 논의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의견접근이 비교적 이뤄졌거나 입법이 시급한 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에 대한 것을 먼저 논의하고, 나머지 과제는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예컨대 임금피크제 실시는 업종별 실태 등을 면밀히 조사한 뒤 심도 있는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제대로 된 임금피크제를 실시해 청년고용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실시계획을 보면 너무 서두른다는 감이 있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임금피크제를 하려면 실질적인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단계적인 임금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은 임금을 삭감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회안전망 확충 또한 장기적인 과제다. 시한에 쫓기는 모양새가 돼서는 안 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논의가 돼야 한다. 중장기 과제들은 한꺼번에 합의하려 하지 말고, 당사자들이 동의하고 책임감을 느끼는 방식이 돼야 실질적인 사회적 대화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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