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조선업계 1위 현대중공업 노사의 올해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현대중공업노조(위원장 정병모)가 26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시간 시한부 파업을 전개했다. 이를 두고 언론은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3조원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한 것을 지적하며 “노조가 적자 파업을 강행하면서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귀족노조의 배부른 투쟁이라는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이 같은 주장은 합리적 근거가 있을까. <매일노동뉴스>가 현대중공업 적자 파업 논란의 실상을 되짚어 봤다.

◇임금동결 카드 꺼낸 회사=현대중공업 노사의 올해 임금협상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노조가 지난 4월 회사에 임금요구안을 발송하자 회사는 현대중노조와 사무직 노동자로 구성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일반직지회를 대상으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으며 시간 끌기에 나섰다. 그 뒤에도 회사가 노조의 교섭요구에 불응하면서 노사갈등이 증폭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노동위원회는 7월 노조가 낸 쟁의조정 신청에 대해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고, 노조는 투표 참가 조합원 93%의 높은 찬성률로 쟁의행위 돌입을 가결했다.

임금협상의 핵심 쟁점은 임금인상과 통상임금 확대다. 노조는 임금 12만7천560원(기본급 대비 6.77%, 호봉 승급분 별도 인상) 인상과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 적용을 요구하고 있다. 2월 울산지법은 현대중공업 정기상여금 800%(설·추석 상여금 100% 포함) 전체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회사는 임금을 동결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노조의 통상임금 확대 요구에 대해서도 “최대 2조5천630억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3조2천49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3천634억원의 적자를 내는 등 영업실적이 악화돼 임금동결이 불가피하고, 통상임금 확대를 위한 추가 차입 역시 고려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적악화 진짜 원인은?=경영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회사측의 주장은 사실일까. 지난해 현대중공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의 매도가능 금융자산 규모는 4조5천226억원에 달한다. 이 중 현대오일뱅크 주식가치(장부가액)가 2조9천547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크다. 영업과 무관한 자산이다. 매각가능한 부동산 자산만도 5천797억원이나 된다. 회계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이 매각 가능한 상장주식이나 부동산을 내다 팔면 4천940억원의 매각차익을 얻을 것으로 추산했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도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회사는 “세계적인 조선·해양 경기불황으로 신규수주가 어렵고, 최근 조선·해양플랜트 자금회수 방식이 헤비테일(Heavy-tail) 방식으로 바뀌면서 계약금 비중이 줄어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차입금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며 임금인상을 위한 추가 차입이 어려운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제기된다. 차입금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현대오일뱅크나 현대상선 같은 영업과 무관한 자산을 인수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사용한 것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중공업은 2007년 이후 관계회사 등의 인수·설립·증자에 3조8천860억원의 자금을 썼고, 2010년 이후에만 3조4천400억원의 자금을 사용했다. 2010년 현대오일뱅크 인수자금으로 2조6천억원이 들었다. 문어발식 기업 확장이 차입금 증가 원인이라는 뜻이다.

한편 현대중공업이 공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보면, 매출이 8천193억원 줄었는데 매출원가는 무려 1조8천772억원 늘어났다. 그 결과 1조9천233억원의 영업적자가 발생했다. 여기서 눈여겨볼 대목은 지난해 매출원가 중 기타비용이 전년보다 2조3천755억원(43%)이나 증가한 부분이다. 기타비용의 구체적 내용은 공시되지 않았지만, 회계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이 예상손실을 미리 반영해 기타비용을 늘려 잡은 것이 지난해 영업실적 악화로 표면화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지금의 경영위기는 회사 경영진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노동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노조의 파업을 매도하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다”며 “회사는 이제라도 성실한 자세로 임금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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