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임금피크제 때문에 난리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재차 천명한 뒤 정부는 황교안 국무총리까지 직접 나서 이행상황을 점검하라 지시하고, 새누리당은 당내에 위원회까지 꾸려 이인제 의원을 대표로 선임해 사회적 합의 운운하며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니 이 나라 대부분 사업장이 하기휴가라는 오늘도 나는 심란하다. 휴가라도 이 나라는 조용히 두지 않는다. 하도 소란해서 임금피크제만 도입하면 백수투성이 청년실업 문제도, 기죽은 나라경제 문제도 다 기세 좋게 해결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지경이다. 새누리당은 아예 '임금피크제로 자녀에게 일자리를'란 구호까지 내걸었다. 부모가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이면 자녀가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니 이제 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하는 자는 자녀 일자리를 빼앗는 나쁜 부모로 취급받게 생겼다.

2. 그런데 임금피크제를 하면 정말로 청년실업이 해결되는 걸까. 인건비 총액이 고정돼 있고 그걸 매출·이익 등 기업 실적을 고려 않고 모조리 사용해야만 하는 사업장이라면 재직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총액을 줄여야 신규채용을 할 수 있다. 바로 책정된 예산대로 집행하면 되는 사업장, 매출과 이익 등 실적을 고려 않는 국가부문이 그렇다. 그리고 공기업 아닌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이 그렇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5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권고안을 발표했다. 예산 등에서 인건비 총액이 고정된 공공기관으로서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신규채용 여력이 생길 수 있는 것일 테니 신규채용을 위해서는 재직자가 퇴직하지 않는 한 임금피크제 도입이 아니라도 재직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이 절박하다면 정부 예산편성에서 신규채용에 많은 금액을 배정하면 될 일이다. 다른 모든 문제보다 심각해서 반드시 최우선으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적자예산이라도 편성할 일이다. 임금피크제를 해야 신규채용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통제하면서 말하는 청년실업 문제는 그만큼 절박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걸 말해 준다.

하지만 사업을 통해 실적을 올려 운영되는 사업장에서는 다르다. 투입과 산출, 비용과 수익을 따져 보다 많은 실적과 이윤으로 최적화해서 운영한다. 이런 사업장에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투입비용을 낮추게 되면 그만큼 비용 절감이나 더 많은 이익이 실현된다. 이때 신규채용을 할 것인지는 그것이 보다 많은 이익 등 실적을 실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 않다면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삭감하고서 신규채용은 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소득도 고용도 없는 성장이거나, 소득도 고용도 없는 정체가 나타난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노동자의 수만큼 신규채용을 하지 아니한 경우 사용자를 처벌하는 법은 없다. 그런 법을 제정하기도 어렵고 제정하더라도 위헌으로 무효가 될 것이다. "임금피크제로 자녀에게 일자리를 주자"고 외치지만, 부모가 일하나 자녀가 일하나 일자리는 고정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걸 이 나라에서 부모노동자가 스스로 하는 말이었다면 도대체가 이 나라에서는 정부나 기업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지 못하니 제 임금이라도 삭감해서 자녀 일자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호소의 말이라고 나는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헌법에 근로의 권리로서 국가가 근로자의 고용 증진을 위해 노력하도록 규정한 대한민국에서(제32조 제1항) 정부와 집권당이 내건 이 구호는 청년실업 등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에 무능하다는 걸 자백하는 말로 내게는 들린다.

3. 지난 7월1일 고용노동부는 자산총액 기준 상위 30대 그룹 주요 계열사 378개 기업 중 177곳(47%)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이 나라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대기업의 절반이 도입한 것이니 벌써 예년의 몇 배에 이르는 대규모 신규채용 공고가 붙어야 한다. 아예 신규인력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입도선매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고 있다는 보도로 뒤덮여야 한다. 임금피크제로 자녀에게 일자리가 생길 테니 기업마다 인력 확보를 위해 혈안이 돼야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런 움직임이 없다.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구호만 요란하다. 신문은 오늘도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고 권력의 말만 열심히 홍보한다. 어디 공공기관, 무슨 대기업에서 노사합의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고 보도한다. 그럼에도 광고란은 신규채용 공고가 점령하고 있지 못하다.

분명히 이대로면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것이다. 노조 반대가 문제라고 해도 이 나라에서 노조 조직률이라고 해 봐야 겨우 10%를 넘는 수준이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완강히 반대하고 있음에도 소속 노조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의해 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기대해도 된다는 말인가. 분명히 수많은 부모가 임금피크제를 받아들일 테니 자녀들은 일자리를 갖게 될 것이라고 나는 기대할 수가 있는가.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그럴 것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새누리당의 구호가 이 나라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가 없다. 부모에게는 분명히 임금피크제가 도입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자녀에게 일자리로 나타날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의 구호는 실천 구호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일자리로 나타나지 않는 임금피크제 구호는 기망의 구호다. 그것은 임금 삭감을 위해 신규 일자리를 내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가 어렵다고 노동자 임금을 낮춰서 사용자 자본으로 하여금 낮은 인건비로 사업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감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가 침체됐으니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권력이 노골적으로 노동자들에게 강요하기 어려우니 지금 이 나라는 늙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모른다.

사실 정년연장법 시행을 앞두고 지금 이 나라는 이렇게 임금피크제로 야단이지만, 정년연장을 하지 않고 정년을 한참 앞두고 명예니 희망이니 권고니 갖가지 구실로 퇴직시켜 온 이 나라에서는 청년실업 문제도 나라경제 문제도 벌써 해결됐거나 아예 문제로 나타나지 않았어야 했다.

그러나 늙은 노동자는 조기퇴직을 당하고, 청년은 취업할 수가 없는 나라였다. 늙은 노동자를 내쫓고도 이 나라에서 기업은 그만큼 청년을 채용하지 않았다. 기업의 주체, 사용자 자본에게는 이익 등 실적이 관심이지 채용이 관심이 아니다. 실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규채용을 하겠다는 사용자 자본은 없다.

4. 오늘 이 나라에서 임금피크제 도입론은 노동자가 수준에 맞지 않게 고임금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높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그것이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와의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며,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문제라고 말해 왔다.

대기업에서 노동자는 해당 기업에서 실현한 이익 등 실적으로 임금을 지급받는다. 실현한 이익 등 실적이 노동의 임금으로 지불되지 않는다면 모두 자본의 이익으로 귀속될 것이다.

기업이 망할 정도로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사용자는 없다. 기업이 망해 일자리를 잃는 것을 감수하면서 높은 임금을 받겠다는 노동자도 없다. 대기업 노동자가 저임금을 받는다고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 노동자가 대기업 노동자와 동일한 임금을 지급받지도 않는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면 대기업의 사용자 자본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뿐이다.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개선될 것이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게 되면 그만큼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 노동자와의 임금격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그러면 이 나라에서 노동자 권리가 그만큼 향상되는 것인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도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와 동일하게 열악한 처지가 되는 것말고 무엇인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해소되지만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울고, 대기업의 사용자 자본은 웃는 일만 생겼다.

임금피크제의 구호를 가만히 들어보자. 정년연장이 시행되면 연공급 임금제하에서 늙은 노동자의 임금이 높아지기 때문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들린다. 근속에 따라 호봉 상승으로 임금이 인상되는 연공급 임금제하에서는 정년이 연장되는 늙은 노동자에게 가장 많은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부당하게 높은 임금을 지급받고, 그 부담 때문에 기업은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만히 들어보면 정말로 이 나라에서 청년실업 문제는 연공급제가 문제라고 들린다. 정말로 그럴까. 연공급의 임금제도는 근속연수가 많은 늙은 노동자가 가장 높은 임금을 지급받는다. 그래서 근속연수가 많은 늙은 노동자가 문제라고 생산성 운운하며 말하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는 신입사원의 2.8배 내지 3배에 이른다고,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높은 비율이라고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늙은 노동자를 비난할 일이 아니다. 평생 일해서 지급받게 된 늙은 노동자의 높은 임금을 부당하니까 삭감하자고 할 일이 아니다. 청년실업이 문제라면 말이다. 청년실업이 문제라면, 신입사원이 연공급 임금제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 많이 채용해서 사용할수록 생산성은 높아진다. 아예 새로운 기업을 설립해서 신입사원으로 사업을 하게 되면 낮은 인건비에 노동생산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지 모를 일이다. 오랜 근속에서 습득하게 되는 숙련노동이 필요치 않는 사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5. 사용자 자본에겐 노동자의 임금·고용 권리가 낮으면 낮을수록 투입비용이 절감되니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박수를 쳐 대며 환호할 일이다. 하지만 노동자에겐 결코 좋은 나라가 아니다.

그런데 오늘도 노골적으로 정부와 집권당은 노동자 권리 삭감이 나라 살리는 것이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이 노골적인 사용자 자본의 나라에서 노동은 사용자 자본, 사업체 기업의 종속변수다. 기업의 권익을 넘어선 노동자 권리는 없다. 임금피크제의 나라에 노동자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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