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종오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2013년 6월1일 체결된 임금협정서에는 업무시작이 새벽 1시, 종료시각이 오전 9시로 돼 있었다. 그런데 같은날 체결된 단체협약에는 새벽 1시부터 오전 8시20분까지 일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어떤 회사이기에 새벽 1시부터 일을 할까. 노동자들은 서울의 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생활·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위탁받은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치우는 것이었다.

폐기물차량은 당신이 잠든 시각인 새벽 1시부터 움직이는 것이 맞다. 그래서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들의 시업시각은 새벽 1시다. 그러나 폐기물차량은 골목 구석구석을 다 돌아다닐 수가 없다. 사람이 손수레를 끌고 들어가 음식물 쓰레기를 폐기물 차량이 이동할 수 있는 큰길에 모아 둬야만 다음날 아침에 겨우 일을 마칠 수 있다. 그러니 ‘작업원’으로 불리는 손수레 끄는 사람들이 새벽 1시 이전인 저녁 6시,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각에 출근해 쓰레기들을 모아 놓고 새벽 1시부터는 폐기물차량 뒤에 올라타 그 쓰레기를 차량에 싣는 일을 했다는 것이 정확하겠다.

그럼 왜 임금협정서와 단체협약이라는 문서에 종업시각이 다르게 기재된 걸까. 둘 중 어느 것이 맞는 걸까. 결론은 둘 다 실제 근로시간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일하는 작업원들의 근로시간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돼 있다. 그럼 저 단체협약을 체결한 노동조합은 무어란 말인가. 노동자들이 저런 노동조합에 가입해 있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회사 사장의 동생이라는 자가 2002년 9월18일 설립신고를 한 노동조합이 회사와 임금협정서와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만든 문서들이니 2개가 서로 불일치하는 일이 생겼다"고 이해하자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2013년 6월1일자 엉터리 문서들을 노동자들도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아니다.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민주노총 산하노조에 가입한 뒤 회사 분회를 만들면서 단체교섭을 요구했는데, 회사가 “우리는 이미 노조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으니 당신들은 다음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나 기다리라”며 단체교섭을 거부하면서 내놓은 서류가 바로 저 서류였다. 그러니 그때 처음 봤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엉터리 서류를 보고 나서야 작업원들이 새벽 1시 이전 근로에 대한 대가인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니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임금을 안 주는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는 일하지 말고 그냥 새벽 1시부터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랬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회사가 단체협약이라고 내민 엉터리 서류의 공통점인 새벽 1시 출근시각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만 일하리라 다짐했다. 그게 법(法)대로 하는 거라 생각했다. 준법(遵法) 말이다. 그러자 회사는 골목으로 손수레를 들고 가는 일을 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불법파업'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 소송은 끝났다. 법원은 작업원들이 저녁 6시부터 일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하던 일을 어떠한 연유에도 하지 않았다면 파업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문구에 따라 근무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근무시간을 단축해 기존 청소업무에 지장을 초래했다면 준법이 아닌 파업이라고 했다.

법원은 “사실정상설”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쉽게 말해 '실제로' 16시간을 일하고 있었는데 다 같이 일을 안 했으면 그 실제시간('사실')을 따져야지 단체협약의 문구('법')를 따져 파업을 안 했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쟁의행위 책임을 일반 조합원들에게는 물을 수 없다고 하면서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고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어찌 봐야 할까. 임금을 주지 않는 사용자를 위해 잘 몰랐거나 셈이 느려서 임금을 못 받으면서 일한 '사실'이 있는 근로자가 있다고 하자. 뒤늦게 임금도 안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안 이후에도 계속 일해야 하는 것이 법(法)인가. 혼자 일을 안 했으면 임금이 체불된 근로자의 선택인데, 같이 작당해 일을 안 했으니 파업이라고 한다면 대체 단결권은 어디로 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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