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혁 공인노무사(서울노동권익센터)

얼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럽이라는 곳을 가 봤다. 12년 넘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아내가 보상처럼 얻은 2주간의 연수기회에 큰맘 먹고 가족여행을 덧붙여 따라가기로 한 것이다. 사진 속에서나 보던 그림 같은 건물들, 아름다운 풍경도 좋긴 했지만 그보다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조금은 사소한 일이었다.

산을 오르는 곤돌라를 타기 위해 표를 끊으려고 할 때였다. 표를 판매하는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일 오후였고, 사람이 붐비지 않는 시간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앞에서 기다렸다. 기다리고 있는 나를 봤는지 못 봤는지 40대쯤 돼 보이는 남자 직원이 뒤늦게 휴대전화로 전화 통화를 하며 느릿느릿 걸어오더니, 자리에 앉아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기기 시작한다. 일을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여기서는 이렇게 전화를 하면서 일을 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가 보구나 생각하며, 어설픈 영어로 표를 달라고 말을 건넸다. 그런데 그 직원이 대뜸 나에게 눈을 부라리며 화를 낸다. 자신이 통화를 하는 것이 보이지 않느냐며 이런 예의 없는 행동이 어디 있느냐는 투다. 당황해서 얼른 사과했지만, 순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무시간에 자리를 비워 두고 사람을 기다리게 하더니 중요한 통화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면 되지, 화를 낼 것은 또 뭔가. 뭔가 잘못한 기분이 드는 것도 억울했지만 그보다 나를 씁쓸하게 한 것은 나도 모르게 우선 사과부터 하고 있는 내 모습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는 괜한 부러움이 일었다. 이곳에서는 표를 파는 직원은 표를 팔 뿐 감정을 팔지는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국에서라면 이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근무시간에 통화를 위해 자리를 비워 뒀는데, 고객이 표를 끊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면, 우선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하며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아야 했을 것이다. 애초에 한참 손님이 많은 여름철 성수기에 근무지를 벗어나 사적인 통화를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상황이 벌어졌다면 빨리 일처리를 해서 입장을 시켜야 할 것이다. 가뜩이나 고객을 기다리게 만들었는데 일처리도 느리다면 고객으로부터 불같은 비난을 받거나, 상사를 불러오라는 호통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심한 경우에는 징계를 받거나 고객만족(CS) 교육을 이수해야 할 수도 있다. 사실 여름철 성수기에 관광지에서 표를 팔기 위해 고용된 직원은 대다수 계절적 필요에 따른 비정규 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심지어는 그런 사건 하나로 어이없이 해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럴 바에야 ‘죄송합니다’라는 말과 미안한 듯 웃는 얼굴로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되고 만다.

물론 노동문화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개인의 차이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나는 노동상담을 하면서 느꼈던 한국의 답답한 노동현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고 일을 하고, 사용자의 눈치가 보여 작성을 요구하지도 못한다. 임금이라도 통장으로 받았으면 다행인데 현금으로 그때그때 부정기적으로 주고 4대 보험 가입도 없어 근로사실 자체부터 입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더라도 근로계약서에는 나도 모르게 포괄임금으로 초과근무수당과 연차 수당까지 임금에 포함돼 지급되고 있다. 또 어느날 갑자기 그만 나오라며 회사가 가져온 사직서에 마지못해 서명했는데 일신상의 사유로 인한 사직으로 해고도 아니고,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법적으로 근로기준법 위반이고, 임금체불이며 부당해고지만 증거가 없거나 불리한 서면 증거들만 널려 있다. 이렇게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일을 하면서도 노동자들은 수시로 죄송해야 한다. 심지어 임금체불이나 해고를 당하고서도 사용자에게 미안해서 법적인 절차를 밟지 못하겠다는 노동자들도 종종 만난다. 이럴 때는 그저 하소연을 들어 주는 것이 주된 상담이 돼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럴 때가 노무사로서는 가장 감정노동이 심할 때인 것 같다. 서로를 죄송하게 만드는 관계가 아니라 당당하게 노동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한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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