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주
공인노무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얼마 전 서로 바쁘게 사느라 연락이 뜸했던 친구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반가운 마음에 급하게 문자 내용을 확인해 봤다. 공공기관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보낸 “잘 지내지?”로 시작하는 문자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 기관은 그동안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별다른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었는데, 최근 신임 원장이 취임하면서 취업규칙에 대한 대대적인 개정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그 내용 중 정규직 연구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시키고 평가제도를 도입해 일정 점수 미만인 자는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삽입시키겠다고 하면서 근로자들에게 서명을 받겠다고 하고 있어. 노조는 없고, 어떻게 해야 할까?”

한마디로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취업규칙 개정에 대한 상담이었다. 필자는 그 뒤 친구와의 통화에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해당하고, 법적으로 유효한 개정이 되기 위해서는 과반수노조 또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사측이 개별적으로 동의를 받거나 투표에 개입할 수 있으니 개별서명 형식의 동의는 절대 하지 않도록 하고, 근로자들끼리 회합을 한 후 꼭 찬반을 묻는 무기명 투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친구는 “그런데 설명회에서 사측은 ‘문구는 이래도 사실상 대부분 재계약된다’고 설명하고, ‘특별한 문제가 있는 사람만 해당된다’는 식으로 설득하고 있다”며 “그 말을 믿는 동료들도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푸하하" 큰소리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짜로 ‘웃기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말하는 그 ‘특별한 문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만들 수 있고,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으며, 사실은 아주 ‘특별하지 않은 문제’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절대 속지 마라”고 했고, “노조가 필요하다”는 요지의 상담을 몇 차례 진행했다. 며칠 후 친구로부터 근로자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했고, 투표가 예정된 당일 사측에서 해당 조항을 개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필자는 "고맙다"는 친구의 말에 “이제 시작이야. 늘 긴장해야 해”라는 독한 말을 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뒤에야 그간 나누지 못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친구와의 통화 후 정부와 사측은 노동자를 보다 쉽게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쉼 없이 내달리고 있다는 점을 각인하게 됐다. 그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제는 근로조건 결정권 당사자인 근로자의 의사가 왜곡되고,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현실에 이르렀다.

최근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하면서 근로자 과반의 집단적 동의를 받았다고 하는 사업장들에서 이뤄진 행태를 보면 이는 보다 명백해진다. 개별 근로자들을 압박하고, 그러면서도 동의서 내용에는 근로자들이 집단적·자율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는 내용을 직접 적어 주고, 그 이후 동의를 받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집단적 동의인 듯, 집단적 동의 아닌, 집단적 동의 같은’ 것이다. 근기법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느슨한 해석에서 비롯된 사측의 농간이다. 여기에 속지 않는 방법은 하나다. 노동자들이 ‘집단’이 되는 것이다. 사측의 ‘웃긴’ 이야기에 눈물 흘리지 않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