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1. 그러니까 1948년 7월17일이었다. 제헌절이 대한민국헌법이 제정됐다고 기념하는 날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헌법이 제정된 날이라는 것인지, 시행된 날이라는 것인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대한민국헌법이라 기입해서 법령 검색란을 눌러 보고서 국회의장 이승만이 대한민국 국회에서 제정된 대한민국헌법을 공포한 날이고, 시행한 날임을 알 수 있었다. 법 중의 법, 헌법이 이 나라에서 공포·시행된 날이었다. 7월17일이 조선왕조 건국일이라서 이날 공포해서 시행했다고 하는 제헌절이 지난주 금요일이었다. 새삼스럽게 이 나라 헌법이 제정된 날을 가지고 뭘 어쩌겠다고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가. 1948년 5월10일 단독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가 제정한 헌법을 기리겠다고 기념사를 쓸 일도 아니면서 말이다. 유구한 역사를 과시하기 위해서 이성계가 건국한 조선왕조의 봉건군주제를 철저히 부정한 민주공화국의 나라라는 걸 망각했다는 걸 일깨우기 위한 것도 아니다. 날마다 법을 떠들어 대며 살아가는 내가 노동법 위의 법을 기념한다는 이 날을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2.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해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해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도를 수립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해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서 제헌국회에서 “1948년 7월12일 헌법을 제정한다”고 제헌헌법의 전문에서 쓰고 있었다. 노동자권리를 위한 노동법을 생각해 온 내게는 정의인도, 사회적 폐습 타파,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 균등,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등의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전문을 놓고 보자면 대한민국이 사유재산을 보장한 자유시장경제의 나라라고 사용자 자본과 권력이 오만하게 내세울 일이 아니었다. 헌법제정권자인 대한국민은 이렇게 전문에서 대한민국을 선언했다. 정의와 균등한 민주공화국을 선언했다. 이는 제5조에서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해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의무로 명시했다.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으로 가장 먼저 제8조에서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이며 성별·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평등권을 규정했다. 재산권에 관해 제15조에서는 “재산권은 보장”되나,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하며,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못 박았다. 재산권을 대단하게 기본권 중 기본권이라고 선언했던 것도 아니다. 노동자의 기본권에 관해서는 제17조에서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법률로써 정하며”, “여자와 소년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근로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했다. 이어 제18조에서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되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 있어서는 근로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고 규정해서 노동기본권으로서 노동 3권을 보장함을 규정한 후에 이익균점권을 헌법상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규정하였다. 노동 3권의 보장을 보자면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라고 무엇보다도 자유권임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이것은 본래 이 나라의 헌법제정권자가 선언한 노동기본권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고 있다. 그 뒤 사회권적 기본권 내지 양자가 혼합된 것이라며 국가권력이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정해야만 보장이 되는 것처럼 왜곡해 온 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헌법 규정대로만 보자면 재산권을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한 것처럼 노동기본권을 노동자의 기본권으로 보장했다. 특별한 재산권이 아닌 것이다. 한편 제19조에서는 “노령·질병 기타 근로능력의 상실로 인해 생활유지의 능력이 없는 자는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규정했다. 대한민국의 기본적 경제 질서의 원리에 관해서는 제헌헌법 제6장에서 규정했다.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고”,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를 제84조에서 선언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날마다 외쳐대는 ‘자유시장경제 질서’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경제 질서를 대한민국의 헌법제정권자 ‘우리 대한국민’은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나라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로 선언했던 것이다. 이러한 경제 질서에 입각해 대한민국은 제85조에서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하고, 제86조에서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제87조에서 “중요한 운수·통신·금융·보험·전기·수리·수도·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하고, “공공필요에 의해 사영을 특허하거나 또는 그 특허를 취소함은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헤 행”하며,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 하에” 뒀고, 제88조에서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긴절한 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통제·관리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행”하도록 규정했다.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였다.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하는 경제 질서의 민주공화국이었다. 자본의 광포한 시장경제 질서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이 아니었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이라는 한계 내에서 보장되는 것이었다. 국가(권력)는 이를 위한 목적으로 자원과 시장을 규제할 수 있었고, 규제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민주공화국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오늘 아무도 대한민국은 이런 민주공화국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제헌절의 기념사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아무도 기념하지 않는다.

3. 20일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상반기에 당이 공무원연금 개혁을 이뤄낸 것처럼 하반기에는 노동개혁을 관철시키겠다”며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이 있지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반대가 있더라도 감수하고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6일 여당 지도부 면담에서 “노동개혁 등을 잘 실천해 경제도 살리고, ‘경제재도약’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 달라”고 노동개혁을 주문한 데 대한 집권당 대표의 답변이기도 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귀족론으로 각인된 노동시장 양극화의 해법이 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하는 것이라고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을 마련해 추진을 시도해 왔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열악한 권리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높은 권리 탓이고, 비정규 노동자의 고용불안은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정 탓이며, 청년의 실업문제는 중장년의 고용보장 탓이라고 규정 짓고서 높은 권리를 삭감하고 고용을 유연화해서 노동시장 양극화를 극복해야 한다며 목청을 높이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한국은 노동시장 유연성 70위, 노동시장 효율성 86위, 노사협력 142위다. 툭하면 파업하는 나라에 어느 기업이 투자를 하겠느냐"며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했단다. 노동자를 해고하기 쉬운 나라, 높은 수준의 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 파업하기 어려운 나라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일 테고, 그런 나라가 오늘 이 나라에서 집권당과 권력이 기본으로 삼는 대한민국일 게다. 그러니 너무 멀리 왔다. 감히 제헌절에 대한민국의 제헌헌법을 기념하기에는 오늘 이 나라는 너무 멀리 왔다. 근로의 권리와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나라에서 권력은 사용자 자본에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대놓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사용자 자본에게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는 노동자권리를 보장해야 할 사용자 자본은 없다. 노동자권리를 보장하지 않을 사용자 자본이 있을 뿐이다. 중소영세 비정규 노동자를 위한 개선 대책은 사용자 자본에게로 향하지 않고, 다른 노동자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에게로 향할 뿐이다. 결국 노동자를 위한다며 노동자를 죽이자는 대책만 있을 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적어도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나라와 함께 사용하지 않고서는 제헌절을 제대로 기념할 수 없는 일이다. 제67주년 제헌절을 보내며 나는 노동자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을 생각해 봤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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