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변호사
(민주노총 법률원)

인간에게 있어 ‘암’이라는 존재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공포의 대상이며,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병이다. 특정 식품에서 발암물질이 발견됐다고 뉴스에라도 나오는 날에는 집집마다 냉장고를 뒤져 그 ‘암 유발 덩어리’를 내다 버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혹자는 암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평생 피우던 담배를 독하게 끊기도 하고, 엄선한 유기농 식재료만을 고집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여기, 발암성 있는 화학물질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는 작업현장을 마음대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바로 경상남도 양산에 있는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이들이 주로 하는 일은 폐드럼통을 수거해 세척한 뒤 모양을 바로잡고 색칠하는 것이다. 사업주에게서 받은 장갑과 면 마스크를 착용하고서 ‘특정 물질’을 사용해 세척업무를 하는데 작업 중에 어지럼증과 복통·가슴통증이 심해졌고, 세척 도중 장갑에 구멍이 나는 바람에 세척에 쓰는 물질이 두 손에 닿아 까맣게 화상을 입기도 했다.

참다못해 병원에 찾은 이들에게 내려진 소견은 ‘메틸렌클로라이드에 의한 급성중독’이었다(양산부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사업주에게 물을 때마다 대답을 회피했던 특정 물질이 고용노동부 고시에서도 발암성을 인정한 메틸렌클로라이드(디클로로메탄)였던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취급하는 유해물질에 대해 사전 설명을 듣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산업용 장갑이나 방독 마스크 등 제대로 된 보호장구도 착용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중독 진단을 받은 뒤 화상 부위에 붕대를 감고 돌아와서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할 수밖에 없었다. 치료비용 또한 다친 노동자의 몫이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해당 사업장 시정조치는 물론이거니와 작업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당장에라도 뛰쳐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 노동자들이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의해 사업장 변경에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외국인고용법에 의하면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은 취업활동 기간인 3년 내에 원칙적으로 3회를 초과할 수 없다. 다만 같은 법 제25조1항2호는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하여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시한 경우'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고용노동부 고시에는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으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사유로 명시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들은 법령과 고시에 의거해 양산고용센터에 사업장변경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양산고용센터 담당자는 고용노동부 지침상 사업장 변경에 대한 사유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현재까지도 사업장 변경에 대한 판단을 회피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불분명하단 말인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산업재해예방의무를 위반하고 유해물질에 대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업주와 계속해서 메틸렌클로라이드에 노출된 환경에서 작업하면서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 그들 사이에서 더 이상의 근로관계 유지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외국인고용법과 해당 고시가 규정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헤 사회통념상 근로관계를 계속할 수 없는 상태’에 해당함은 물론이다. 따라서 양산고용센터는 하루빨리 직권에 의한 사업장 변경을 해야 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분명한 것은 모든 인간의 목숨은 소중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벗어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분명’한 사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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