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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대로 합시다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바야흐로 법치주의 시대다. 박근혜 정부부터 이를 강조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대통령을 직접투표로 선출하고,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가고. 이 사회 모든 구조를 움직이는 체계가 헌법과 법률이니 굳이 말 안 해도 법치는 당연히 실현돼 있는 것인데 이를 새삼 강조하는 것은 따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법대로"의 시대

법치국가인 우리나라에는 비교적 근대에 만들어진 속담 혹은 격언 같은 것이 있는데 “법대로만 살면 바보다”라는 것이다. 또 살다 보면 방귀 뀐 놈들이 성내면서 자주 하는 말로 “법대로 합시다!”가 있다. 두 가지 말의 공통점은 어쩐지 법대로 한다는 것은 어리석거나 뻔뻔한 자들의 대사 같다는 것인데, 어찌하다가 “법대로”의 의미가 이토록 훼손됐는지 모를 일이다.

이런 현상은 법원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민사재판에서 재판장은 종종 원고와 피고에게 조정을 권하면서 “조정이 안 되면 법리대로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의 뉘앙스를 가만히 살펴보면 조정은 좋은 것이고 법대로 판결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이란 의미로 읽힌다. 법대로 판결을 하는 게 사명이자 직업인 법관마저 “법대로”하는 것이 조정만 못하다고 할 정도이니, 도대체 법대로 한다는 것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노조파괴도 “법대로”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사장들이 자주 들고나오는 전술 중 하나도 “법대로 하자”인데, 이 덫을 빠져나오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근래 노조파괴 문건으로 크게 논란이 된 삼성전자서비스의 한 협력업체에서 조합원에게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징계사유는 고객 불만전화 접수와 자재허위계리 등인데 표면적 사유만 보면 모두 징계감이 될 것 같지만 실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먼저 고객 불만전화 접수. 너나없이 고객센터에 불만전화를 거는 시절이다 보니,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들에게도 하루에 1~2건씩 불만전화가 접수되는 일이 다반사다. 불만접수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역으로 불만접수를 이유로 징계를 할 경우 징계를 피해 갈 사람은 없다.

자재허위계리는 좀 복잡하지만 억울하기는 매한가지다. 휴대폰을 수리해 주고 나면 가끔 일부 고객들이 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환불을 하면 수리에 들어간 부품을 다시 분해해 회수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그러다 보면 전산상 부품수와 실제 재고 부품수에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회사 주장은 이걸 본인 돈으로 메우지 않기 위해 다른 고객의 수리 과정에서 그 부품을 사용한 것처럼 허위로 전산입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전산입력 화면을 보면 거의 비슷비슷한 알파벳과 숫자의 조합으로 이뤄진 부품 목록 탓에 이를 잘못 입력하기 십상이고, 실제로도 잘못 입력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유독 이 조합원에 대해서만 징계의 칼날을 휘두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해당 조합원의 과실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법대로(취업규칙대로)하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는 것들로, 그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은 자칫 “다 놔두고 왜 나만 잡느냐”는 식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다. 물론 실제 법리로도 형평의 원칙에 어긋나는 징계는 부당한 것이므로 이 점을 주장하며 다투게 되겠지만, 그 과정이 험난할 것임은 분명하다.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원이 금지되면서부터는 기존에 노동조합에 제공되던 각종 복지까지도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며 “법대로” 이를 철회하고 나선 회사도 적지 않다. 이쯤 되면 “법대로 하자”는 도저히 좋은 의미로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법대로”가 좋기만 한 것인가

집단이 운영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서로의 신뢰를 지키려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개별 구성원의 작은 개성들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나아갈 우려가 있으므로 결국 법과 규칙이 필요해진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거대한 사회집단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법과 규칙이 필요하지만, 상호 소통이 어렵지 않은 개별 또는 소규모 관계의 영역에서는 상호 신뢰를 통한 해결이 더 이상적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것이 “법대로 하자”는 말이 마냥 좋은 의미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현 정부와 사용자들의 “법대로” 주장은 결국 “너희를 믿지 않는다” 혹은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의미로만 읽히는, 참으로 슬픈 요즘이다.

김두현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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