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승전보라고 했다. 타결됐다는 문자메시지에 첨부된 합의서를 받아보고서도 믿기지 않아서 나는 페이스북을 열었다. 담벼락 첫머리에 합의서와 함께 승전보라며 감격해 하는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합의서를 꼼꼼히 읽었다. 믿기 어려웠던 합의서를 승리라고 믿으며 읽는 순간이었다. 지난 23일이었다. 합의서는 사용자의 항복 선언이었다. 임금·단체협약이 아니라 특전사 경찰 출신을 특별 채용해서 기업노조로 금속노조를 탄압한 데 대한 합의로만 보자면 노조가 승리하고 사용자가 패배했다고 합의서는 명백히 쓰고 있었다. 갑을오토텍 투쟁이었다. 파업투쟁의 승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합의서는 구사대 폭력을 물리친 승리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지난해 12월29일 신규채용자 중 금속노조에서 채용 결격사유가 있다고 제기하는 자 등에 대해 즉시 채용취소하거나 7월 중 퇴사조치하고(제1항·제3항), 기업노조 위원장을 퇴사 조치하며(제2항), 이 자들은 합의서 체결시부터 해당 조치 종료시까지 휴업조치하고 회사 출근을 금지한다(제4항)고 6월23일 금속노조 위원장과 갑을오토텍 대표이사가 기명날인한 합의서는 쓰여 있었다. 이것은 갑을오토텍, 한 사업장에서의 승리였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 노조운동의 승리라고 과장해서 읽고 싶었던 합의서였다.

승리는 언제나 굳건한 투쟁의 결과다. 이를 확인하는 승리였다. 돈이든 권력이든 가진 것이 많아서 노동자가 사용자 자본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의 흔들림 없는 투쟁으로 승리는 쟁취된다. 어찌 보면 이 세상에서 자본과 권력은 그들의 힘이 흐르는 대로 위에서 아래로 약육강식이다. 계약의 자유와 민주적 정당성을 내세우며 이 세상에서 그들이 가진 힘에 법적 합리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결국 ‘태초에 힘이 있었다’로 귀결된다. 세상은 그 질서를 순리라고 법으로 못 박고 있다. 힘이 센 놈이 작은 놈을 잡아먹는 질서를 원리로 하니 법은 힘들지 않다. 하지만 노동의 전진은 그 흐름을 거스른다. 교육과 조직으로 의식적인 거부로 몸부림쳐야 겨우 운동이 되는 게 현실이다. 거기서 패배가 일상이다. 승리는 예외다. 그래서 노동의 승리가 낯설고 감격스럽다. 갑을오토텍의 합의서에서 나는 그 승리를 읽고서 감격했다.

신규채용된 특전사·경찰 출신의 노동자들이 기업노조를 통해서 금속노조의 파업투쟁에 폭력을 휘둘렀다. 노조의 파업투쟁에 용역경비들이 직장폐쇄를 한 사업장에 등장해서 노조 조합원들의 사업장 출입을 통제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지난해 말에 신규채용시에 채용돼서 갑을오토텍에서 근무해 오다가 노조가 임단협 체결을 위해 파업투쟁을 하자 노조 탄압에 나섰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2월 이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60명 중 상당수가 전직 경찰 또는 특전사 출신이고, 채용 과정에 모집책(브로커)이 중개자 노릇을 했으며, 금속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이 채용 전제조건이었다”고 금속노조는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일부 신입사원이 복수노조(갑을오토텍기업노조)를 만들어 나머지 신입사원들에게 지회 탈퇴와 기업노조 가입을 강요했다”는 폭로도 있었다. 신입사원 중 한 명이 익명을 전제로 “채용 브로커가 개입해 있고, 실제 신규채용 시기보다 3개월 앞서 전직 경찰과 특전사 출신에 대한 사전모집이 이뤄졌고, 서울 모처에서 예비 신입사원들 모임을 가졌다”는 양심선언까지 있었다. 매일노동뉴스의 뉴스로도 보도된 이상의 내용에 따르면, 신규채용 형식을 빌려 ‘노조파괴 용병’을 고용해서 사용해 오다 노조가 파업투쟁을 하자 탄압에 앞장섰다는 것이니 충격적이었다. 종래에 들어보지 못했던 노조탄압의 신종수법이었다.

합의 사실이 뉴스에 보도되고서 다음날이었다. 그러니까 24일, 저녁 식사를 하고 PC를 켰더니 이런 제목의 기사가 포털 뉴스에 올라와 있었다. <나의 갑을오토텍 입사 동기들, 참 이상했다>는 제목에 끌려 나는 합의서를 읽을 때처럼 기사 내용을 빠짐없이 읽었다. 전직 경찰관·특전사 예비역 등 60여명을 채용해 노조 파괴 의혹을 산 갑을오토텍이 신입사원 채용을 취소하기로 했다며, 6월23일 임태순 갑을오토텍 공동대표와 전규석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은 ‘채용 결격사유가 있는 52명에 대해 즉시 채용을 취소한다’는 데 합의하고서 금속노조 조합원들도 파업을 풀고 현장에 복귀했다로 시작된 뉴스(시사인)는 지난해 12월 전직 경찰관 등과 함께 채용된 ‘진짜’ 신입사원의 눈으로 이번 사태를 재구성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나는 신입사원이다. 지난해 12월 자동차 부품회사 갑을오토텍에 입사했다. 출근을 해 보니 동기들이 이상했다. 나보다 연배가 훨씬 위였다. 대부분 삼촌·아버지뻘로 보였고, 또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신규채용자 60명의 평균 연령은 47세였다. 나이든 동기들은 서로 아는 것 같았다. 여느 직장의 새내기들과는 달리 데면데면한 게 없었다. 첫날부터 그들끼리 모여 담배를 피웠고 신입 교육 도중 웃고 떠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가운데 상당수가 특전사·경찰 출신이었다”고 시작한 기사는 이들이 금속노조에 맞서서 기업노조를 조직했고, 금속노조의 파업투쟁에 폭력을 휘둘렀다고 폭로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업노조 팀장과 ‘진짜’ 신입사원의 서로 달랐던 믿음의 말까지 소개하고 있었다.

“자본의 논리로 보면 우리(기업노조)가 이길 수밖에 없다.” 기업노조 팀장이 했다는 말이다. 자본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나를 포함해 금속노조에 가입했던 신입 6명은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두렵다. 그래도 난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갑을오토텍에 특전사·경찰 출신들과 함께 채용됐지만 그들과 달리 금속노조에 가입한 ‘진짜’ 노동자가 한 말이다. 민주노조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모두 노동자이지만 하나는 자본의 논리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자신의 눈으로 바라봤다. 그것이 다른 믿음을 갖게 했고, 다른 선택과 행동이 돼서 나타났다.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의 세상살이를 읽을 수 있었던 저녁 뉴스였다.

사실 모두가 승전보라고 환호했던 갑을오토텍의 합의서를 읽고서도 나는 마냥 환호하진 못했다. 합의서에 파업투쟁 과정에서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책임 면제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별도합의서가 있는 것인지. 노조파업투쟁에 관한 노사합의서를 수도 없이 읽어 왔던 변호사로서의 괜한 걱정일 게다. 그러다 엊그제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 노조 조합원들이 대거 징계를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양우권은 노조를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다 해고되고 징계받으며 혼자 버티다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파업투쟁이 있었고 노사합의로 양우권 문제는 타결됐다. 그런데 그 뒤 그 파업투쟁에 참가했다고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다른 사내하청업체 소속 조합원들이 징계를 당하고 있다. 이런 일이 갑을오토텍에서 감히 일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승리를 쟁취해 낸 갑을오토텍의 금속노조 조합원들은 이런 일을 저지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금속노조에 가입했던 신입 6명은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른다. 솔직히 두렵다. 그래도 난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고 말했던, 갑을오토텍에 특전사·경찰 출신들과 함께 채용됐지만 그들과 달리 금속노조에 가입한 ‘진짜’ 노동자의 믿음을 갑을오토텍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갖고 있는 한 말이다.

갑을오토텍 사태는 노조가 투쟁으로 물리친 승전보로 기록됐다. 그러나 노조 탄압이 부당노동행위로서 불법이고 범죄라고 법이 정하고 있는 한 그것은 노조가 죽어라 투쟁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들은 폭력을 휘두른 범죄자들이었다. 그들을 노조 탄압을 위해서 신규채용해서 폭력을 행사하도록 했다면 사용자도 범죄자였다. 그러니 법을 집행하는 국가권력이 범죄자들을 체포하고 처벌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갑을오토텍에서는 경찰도 검찰도 고용노동부도 그들의 폭력을 저지하거나 노조 탄압을 막지 않았다. 그래서 갑을오토텍은 노조의 투쟁과 그들의 폭력이 맞서는 전장이었다. 그리고 노조와 조합원들은 마침내 내가 쉽게 믿지 못했던 합의서로 폭력 탄압을 물리쳤다. 무법의 세상에서 거둔 값진 믿음이 쟁취해 낸 승전보라고 6월23일 갑을오토텍의 합의서는 쓰여 있었다. 2013년 12월18일 통상임금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어 갑을오토텍은 이렇게 다시 이 나라 노조운동사에 기록됐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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