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던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이 발표됐다. 고용노동부와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의견을 모았다. 상생고용, 상생협력, 상생촉진, 파트너십 구축 같은 그럴싸한 단어들이 동원됐지만 아무래도 핵심은 임금피크제다. 법정 60세 정년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야 하는 경제부처들의 바람이 대책에 투영됐다. 당장 정부 입김이 미치는 공공기관, 대기업·금융회사들은 임금피크제와 더불어 성과급제 도입 ‘선도’ 대상이 됐다. 재계도 이래저래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을 볼 때 노사 모두 환영하지는 않는 듯하다. 노동시장 개혁 대상이 된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었다.

정부 청년고용·정년연장 두 마리 토끼 잡으려면 돈 써라

▲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본부장
정부 발표의 핵심은 공공부문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민간까지 확대시키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공공부문은 정부에 의해 총인건비 통제를 받는다. 청년연장으로 인해 퇴직자가 발생하지 않으면 신규고용이 안 되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발생한 돈으로 신규채용을 하겠다고 한다.

장년층의 임금을 깎아서 청년고용을 창출하겠다는 대책은 국민이 보기에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정년연장의 취지를 훼손시키는 대책이다. 특히 정부 대책대로 신규채용을 확대하려면 공공부문에서는 고령노동자의 임금을 엄청나게 깎아야 한다.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정년연장 대상자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17일 경영평과 성과급을 재원으로 장기적인 청년고용 대책을 세우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성과급 예산으로 1만7천여명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일자리 보다 2~3배 이상 많다.

지금 정부는 노동자의 임금을 깎기 위해 칼날을 휘두르고, 기업들에게는 각종 혜택을 주겠다고 한다. 노동자에게 채찍, 기업에게 당근을 주는 대책을 반복하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위해 정부는 인건비를 증액시키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정년연장과 청년고용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하면서 돈은 한 푼도 안 쓰려고 한다. 고령자 임금 일부로 청년일자리를 찔끔찔끔 만드는 것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좋은 정책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

금융당국까지 동원한 임금체계 개편 받아들일 수 없어

▲ 김지현
금융노조 정책본부
노동정책국장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악 시도를 공식화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도 해결 못하는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가 경제 살리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 국민을 하향평준화해 재벌들의 뱃속 채우는 것에만 급급하다. 정부가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성과주의 확대를 선도하겠다고 했는데, 임금체계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지 정부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정부가 임금체계 변경을 민간부문으로 확산하기 위한 선도 업종 중 하나로 금융을 꼽았다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임금체계 개편을 선도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을 통해 임금피크제 도입 확산을 독려하겠다고도 했다. 노동과 관련이 없는 금융당국까지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 있을 때마다 매번 금융산업을 지목해 시험대로 올려놓는 구태를 반복하겠다는 건데 답답한 일이다. 금융당국까지 동원한 강제적인 임금체계 개편은 받아들일 수 없다. 정부가 기어이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밀어붙이겠다면 금융노조는 총력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임금피크제는 강제, 비정규직 대책은 생색

▲ 강훈중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장
한국노총은 누차 임금피크제는 강제가 아닌 노사자율로 시행하고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기준 완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의견을 묵살하고 제1차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청년고용을 위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고 하는데, 이를 도입한다고 해서 기업들이 갑자기 투자를 하고 고용을 창출하지는 않는다. 지금도 대기업들은 59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 두고도 투자에는 소극적이다. 임금피크제는 결국 재벌대기업과 대주주들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다. 또한 기업마다 사정이 다른데, 단지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것은 명백한 연령차별이다.

진정 임금피크제가 고용창출에 효과적인 제도라면 정년이 65세인 교수와 60세인 공무원들부터 선도적으로 도입해 모범을 보여라. 그 성과를 확인한 뒤 일반 노동자에게 권장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나 비정규직 보호 강화 대책 역시 미흡하다. 대·중소기업 간 납품단가 협상에서 대등성을 확보하고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에 대해서는 실효적 제재를 강화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상시·지속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확립도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율개선을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생색내기용이 아닌가 의심된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강행에 맞서 현재 진행 중인 총파업 찬반투표를 압도적으로 가결하고 대정부 투쟁에 나설 것이다.

정부와 사용자의 협공에 맞닥뜨린 노동현장

▲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정부는 올해 안에 기어이 노동시장 구조개악 정책을 마무리 지을 태세다. ‘쉬운 해고, 낮은 임금, 비정규직 확산’을 낳을 각각의 정책들은 추진 시기가 분산되고 일부는 애초 추진계획에서 다소 늦춰졌지만, 정책 강행방침이 더욱 구체화된 만큼 위협은 더 가깝게 다가왔다. 그에 따라 1차 추진계획이 발표됐다. 핵심은 60세 정년제 도입에 대비해 임금삭감 방안(임금피크제)을 단체협약에 넣게 하고, 이를 위해 노동자 동의 없이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이 가능하도록 정부지침으로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특히 공공부문을 먼저 짓밟고 민간에도 중점관리 사업장을 정해 정부가 직접 현장을 관리하겠다는 계획은 노사자율 원칙을 무시한 부당한 지배개입이다. 이에 따라 현장은 올해 당장 정부와 사용자의 협공에 맞닥뜨리게 된다. 중앙과 현장을 아우르는 노동계의 저지 투쟁 전선이 절실하다.

정부는 떡하니 ‘상생’이라는 명분을 갖다 붙였지만, 이는 노동자의 ‘희생’을 은폐하는 포장에 불과하다. 현재 노동시장 위기는 누구의 위기인가. 비정규직과 실업은 노동자의 고통이다. 반면 기업은 고용불안과 저임금 토대 위에서 고용 없는 성장을 구가했다. 그럼에도 노동자에게 더 희생하라니…. ‘세대 간 상생고용지원제도’도 못마땅하다.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은 연관성이 없다. 정부가 소개한 두산인프라코어와 LG화학 사례도 거짓말이었다. 청년실업은 거시경제 상황과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 탓이다. 그럼에도 해고는 해고대로 시키고 임금피크제로 임금도 깎고, 신규인력 필요가 생기면 값싼 비정규직으로 채운 뒤 정부지원금까지 꿀꺽할 수 있는 게 상생고용지원제도다. 그러니 기업은 표정관리 중이다.

비정규직 보호 가이드라인, 고용경직 심화

▲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고착화와 60세 정년제 시행으로 인한 청년 고용절벽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 의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후속 조치 계획을 구체화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방안들로는 정부의 바람대로 노동시장 내 다양한 주체들 간 상생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 노동시장 개혁을 달성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60세 정년제 시행을 앞두고 임금체계 개편의 안정적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취업규칙 변경 절차 및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 문제는 근로자들의 자발적 양보가 없는 한 정부의 지침만으로는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정부가 노동시장 내 상생 촉진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 마련의 경우 그 무게중심이 정규직 전환에 쏠리고 있다. 고용경직성 심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 능력의 저해를 초래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이는 현재 우리 노동시장이 당면한 가장 심각한 두 문제인 청년고용과 이중구조 문제 해소에 완전히 역행하는 것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궁극적으로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정부는 여기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좀 더 현장에 와 닿을 수 있는 방안들을 고민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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